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감정은 빠르고 깨달음은 느리다

by 이우기, yiwoogi 2017. 1. 30.

설 연휴 셋째 날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저녁 620분쯤이다. 어두웠고 비도 조금 내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 위험을 겪었다. 늦지 않은 시간인데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어서 서두를 까닭이 없었다. 진주시 인사동 부산교통 본사 앞 삼거리에서 신호를 위반하는 차를 받을 뻔했다. 직진 신호를 보고 앞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반대 차선에서 차 한 대가 좌회전하면서 내 앞을 지나간 것이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기에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제법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어서 바퀴가 미끄러졌을 텐데도 다행히 사고는 모면했다. 0.1초 만에 욕이 튀어 나왔고, 분노가 치밀었다. 짜증이 올라왔다.

 

집에 돌아오는 동안 나쁜 운전자를 저주했다. 어디 가다가 혼자 개울에 처박혀 죽으라는 둥, 큰 트럭에 받혀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둥 험악한 말들을 내뱉었다. 기분이 조금 풀렸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화가 아주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혹시 그 나쁜 운전자가 타고 있는 차의 번호를 확인할 수 있을까 싶어 지난해 12월에 달아놓은 블랙박스 저장장치(메모리카드)를 빼왔다. 컴퓨터에 연결하여 당시의 파일을 찾았다.

 

블랙박스는 자기가 사고라고 인식하는 순간으로부터 앞 10, 10초 합하여 20초를 따로 저장해 둔다. 물론 일상적인 운전 과정도 모두 저장한다. 차 안의 소리도 동시에 녹음한다. 과속방지턱을 빠른 속도로 넘어갈 때도 띵동경고소리가 들리고 급정거를 할 때도 띵동경고소리를 낸다. 도로가 울퉁불퉁하여 차가 좀 흔들려도 경고를 보낸다. 설 연휴 셋째 날 저녁에 일어난 사고 위험의 순간에도 경고소리를 내었고, 그 시점 앞뒤 20초가 따로 저정되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동영상을 살펴보았으나 가해자가 될 뻔한 그 차의 번호는 확인할 수 없었다. 아주 정밀하고 훌륭한 장비를 동원하지 않는 한 그 차를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색깔만 대강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페이스북에다 블랙박스 동영상을 올리며, 채 가라앉지 않은 울분을 토했다. “개보다 못한 그 운전자에게 한마디한다. ‘부디 조심히 운전하거라. 어지간하면 신호와 차선은 지켜라. 그래도 꼭 사고를 낼 것 같으면 너 혼자 개울에 처박혀 죽어라. 애매한 사람 애매하게 다치거나 죽게 하지 말고. 설이니까 이 정도 해둔다.’”라고 혼잣말을 올렸다.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저주스런 말이 쏟아져 나왔다. 동영상을 되풀이하여 보는 동안 다시 화가 올라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제풀로 지쳐갔다.

 

텔레비전에서 설 특집 영화 <스플릿>을 보았다. 내기 볼링을 하는 사람들과 통제불능 볼링천재를 둘러싸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그냥 주인공과 악역을 맡은 주인공은 브레이크 없는 갈등과 대결을 이어나간다. 결국 악역의 주인공은 목숨을 잃는다. 반대편에 섰던 그냥 주인공은 바퀴의자(휠체어)를 타고 남은 삶을 살아야하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중간중간 서로 화해하고 대결을 멈출 수 있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들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냥 주인공의 처지에서 보면 행복한 결말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적인 영화이다. 볼링 공은 마루에 한번 던져지고 나면 핀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다. 몇 개를 쓰러뜨리느냐 하는 것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볼링 공은 마치 두 주인공의 멈출 수 없는 대결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알았다. 제동장치! 브레이크! 이것이 있어야 한다. 한번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숨쉬고 살아내어야 하는 우리의 삶은 볼링공을 닮았다. 종국에 이르러 몇 개의 핀을 쓰러뜨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간에 멈추지 못한다는 것은 똑같다. 여행, 독서, 영화감상, 휴식 같은 것으로 쉰다고 하지만, 실제 우리 삶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달려가는 것이다. 질주하는 것이다.

 

만약 아슬아슬한 교통사고 위험 앞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시속 60로 달리던 자동차가 제동장치의 도움으로 크게 감속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고가 났을까. 나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자동차에서 가속 장치보다 멈춤 장치를 밟는 페달이 훨씬 더 크다.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멈추는 것은 달리는 것보다 중요하고, 달리고 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멈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설 연휴 셋째 날 저녁 영화 잘 보고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아슬아슬한 장면은 꿈에도 나타났다. 여러 형태도 변주하면서 꿈자리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것은 사뭇 다르게 인식되었다. 분노나 짜증 같은 게 그만큼 가라앉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곱씹어 봄으로써 멈춤의 중요성을 깨달으라는 계시로 다가왔다. 올 한해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려보고 방어운전, 조심운전, 안전운전을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인생에서도, 비록 시속 0로 멈출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여야 한다는 것을 각성하게 해준다. 볼링공은 마루에 한번 던져지고 나면 회전하는 힘과 속도의 힘에 의하여 끝까지 달려가지만, 우리네 인생은 회전하는 힘과 속도의 힘, 그리고 그 방향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으니 그것을 늘 잊지 말라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항상 늦게 찾아온다. 감정은 머리에서 나오고 깨달음은 가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튀어나오고 깨달음은 한참 뒤 뜸이 돌아야 먹는 밥처럼 더디다. 더디지만 제대로 된 밥이다. 밤새 교통사고 위험의 순간과 영화의 장면이 뒤엉긴 꿈을 꾸고 난 뒤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깨달음을 처음 인식하는 건 아니다. 잘 알다가도 까먹고 평범하고 나른한 일상 속에서 쉽게 잊어버린다. 깨달음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무감각해지기 전에 한번씩 뒤통수를 치면서 찾아온다.

 

일상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던져주었지만 그 신호위반 차량 운전자에게 감사할 생각은 없다. 하여,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동영상과 위험 당시에 가진 생생한 분노의 글을 내리지 않기로 한다. 그 자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충분히 많은 욕을 들어야 하니까.

 

2017.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