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다음날 특별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어 뒹굴거리다가 영화 보러 가기로 하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다. 잠시 후 예약을 확인시켜 주는 카톡 문자가 온다. 그래서 문득 전화기를 보게 되었는데 오전 내도록 소리를 줄여놨던 터라 들리지는 않았지만 문자메시지가 몇 개 와 있었다. 대부분 누군지 알 수 있는 번호이다. 이름이 바로 나오니까. 얼른 답변을 보냈다. 몇몇 무의미한 문자에는 답을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하나는 누군지 도무지 모르겠는 번호이다. 이름이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했지만 마음을 설레게 하는 내용이었다. “오늘 저녁 6시 30분 우리집으로 식사하러 오세요.” 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누굴까. 오전 10시 21분에 온 문자메시지를 오후 3시가 되어서야 확인한 것은 미안했지만 무척 반가운 초대임에 틀림없었다. 그날 저녁에 바로 식사하러 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다. 게다가 한두 번씩은 서로 집을 방문하여 식사를 하곤 하는 사이임에 틀림없다. 머리에 몇 사람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서 이렇게 번호만 뜰 리가 없다. 누굴까. 그새 번호가 바뀐 사람이 있을까. 궁금증이 뭉게구름처럼 증폭되어 갔다.
이 초대를 받아들이자면, 4시 10분에 시작하는 영화 관람을 포기해야 했다. 6시 20분쯤 끝날 영화를 본다면 이 저녁식사 초대 시간을 7시 정도로 늦춰야 한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일 수밖에 없는 초대였다. 함께 영화를 볼 아내는 머리 감고 화장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다. 결국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문자를 보냈다. 3시 28분이었다. “죄송하지만, 저에겐 없는 번호여서 뉘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6시 30분까지는 거기가 어디이든 갈 수 없습니다만...”
그렇게 양해를 구해 놓고 극장으로 갔다. 영화관에 입장한 시각은 4시 10분인데, 광고를 보는 사이에 문자가 다시 왔다. “죄송합니다. 잘못 전송했습니다.” 4시 15분이었다. ‘그럼 그렇지, 잘 아는 사람이 문자를 이렇게 보낼 리가 있나’ 싶었다. 생각의 날갯짓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 보낸 초대 문자를 봐도 그렇고, 뒤에 보낸 죄송하다고 하는 문자를 봐도 참 얌전하고 깔끔하다 싶어진 것이다. 비록 잘못 전송된 것이지만 초대는 장난이 아니었고 사과하는 데에도 진심이 담긴 것으로 보였다. “네... 연휴 잘 보내세요.^^”라고 답장을 보내주었다.
딱 두 마디뿐인 그의 문자메시지를 보면서 그의 나이를 짐작해 보았다. 40대에서 50대 사이로 보였다. 그 아래라면 초대하는 문자에 장난이 좀 섞일 것 같았고 그보다 위라면 문자로 초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몇 가지 더 상상해 보았다. 가까운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 정도이면 아내들과(문자를 보낸 이가 남자라고 짐작하고)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낼 것이다. 나 또한 동네 친구, 선배, 후배들과 그렇게 지내니까. 설날 다음날 지인을 초대하려면, 친가와 본가를 이미 다녀왔거나 어떤 이유로 가지 못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서로 잘 이해할 만한 사이일 것이다. 저녁상엔 설 음식과 막걸리 또는 소주가 놓이지 않을까. 극장에서 영화 시작하기 전에 잠시 동안 펼쳐진 상상의 날개는 점점 더 넓어져 갔다.
초대 받은 사람은 또 얼마나 기쁠까. 초대 받는 사람 또한 설날 다음날을 무료하게 보내어야 할 처지인 게 분명하다. 연휴의 중간이니까 마음 놓고 한잔 해도 될 만할 것이다. 초대한 집에 찾아가서 하하, 허허 웃으며 얼굴이 벌개지도록 마셔도 서로 흠 되거나 결례 될 것은 없다. 그런 사람이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유안진의 수필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듯,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지근거리에 살고 있다는 행복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비로소 나의 잘못이 보였다. ‘아차!’하는 각성의 바늘이 허벅지를 찌른다. 저녁식사 초대 문자메시지가 오전 10시 21분에 정상적으로 전달되었더라면 두 친구가 약속을 조정하고 확정하여 더욱 멋진 자리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자 보낸 사람은 ‘이 친구가 왜 대답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섯 시간 동안 궁금해하거나 오해하고 있었을 것이고, 초대 문자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그런 저간의 사정도 까맣게 모른 채 다른 궁리를 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혹시 내가 문자를 보낸 오후 3시 반 이전에 다른 약속을 정하고 그곳으로 가버렸다면 이들 두 사람의 저녁식사는 어긋나고 말았을 것 아닌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지 못했다 한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문자를 잘못 보낸 사람의 책임이다. 하지만 내가 좀더 일찍 문자를 확인하고 답변해 주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지 아니할 수 없다. 영화 시작 직전이라 이러쿵저러쿵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연휴 잘 보내세요”라고 보낸 문자메시지 속에는 그런 미안함 같은 게 들어갔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답을 보내주어야만 그가 잘못 보낸 문자 때문에 내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는 마음도 전해질 것 같았다.
설 연휴 나흘 가운데 세 번째 날 받은 저녁식사 초대는 이렇게 어긋났다. 어긋났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잘못 연결된 것이다. 영화 보고 집에 와서 아내와 함께 먹을 상을 내가 차렸다. 설 음식 가운데, 갖가지 나물을 잘게 썰어 넣고 소고기 장조림도 잘게 썰어 넣고 산적 같은 전들도 몇 가지 곁들이고 달걀도 두 개 부쳐 넣고 참기름도 넣고 고추장도 넣은, 비빔밥을 만들었다. 하다 보니 좀 많아졌다. 과일주도 한잔 곁들였다. 아내에게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로부터 초대받았다 여기고 나 혼자 마음속 만찬을 즐겼다. 그러니 문자를 잘못 보낸 그에게 감사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설 연휴의 잔잔한 추억이다.
201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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