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쯤 진주시 평거동에 있는 어느 콩나물 해장국 집에 밥을 먹으러 갔다. 차 댈 곳이 마땅찮았다. 큰 길가에 대어도 되겠지만 틈이 좁았다. 식당 옆 주차장에는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서 있었다. 그중 한 대 앞에 내 차를 댈 만한 맞춤한 공간이 있었다. 내가 그 차 앞에 차를 대고 밥 먹는 사이에 그 차 주인이 나타난다면 내 차를 빼 주어야 하게 생겼다. 차 주인이 내가 가려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지 아니면 다른 건물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차 댈 곳이 영 마땅찮았으므로, 나는 그 차 앞에다 차를 대었다. 차에는 내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니 ‘급하면 연락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콩나물 해장국 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그 차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나 정확히는 알 수 없었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잠시 후 콩나물 해장국이 나왔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해장국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차가 신경 쓰여 좀 빨리 먹느라 입천장을 데었다. 그 와중에 몇몇 손님이 밥을 다 먹고 나갔다. 그들 중 차 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일단 전화가 올 때까지는 기다려 보자 싶었다. 전화기는 밥상 오른쪽에 두고 신호가 울리기만 하면 집어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밥을 거의 다 먹어 갈 때까지 전화는 오지 않았고, 식당으로 들어와 내 차 번호를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마지막 국물을 들이켜기 직전까지는.
“4844 차주 있습니까?”라는 남자 어른 목소리를 들은 것은 마지막 국물 한 방울을 숟가락으로 뜨려는 찰나였다. “예!”라는 대답소리와 함께 차 열쇠를 들고 튕기듯 일어나 신발을 신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답소리가 하도 커서 마주앉아 얌전히 밥을 먹던 사람이 깜짝 놀랐다.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다른 손님들도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런 눈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차 앞으로 가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어른 두 사람이 기분 좋은 얼굴로 나를 바라 보며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식사하는 데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좀 기다렸는데, 시간이 조금 바빠서 미안합니다”라는 말도 했다. 그들은 자기 차에 당도하자마자 나를 불러낸 것이 아니라, 콩나물 해장국 한 그릇 먹는 데 얼마나 걸릴까 싶어 기다리고 있다가, 생각보다 늦어진다 싶어 나를 찾은 것이다. 상대방 처지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몇 번이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 마음이 푸근해졌다. 따끈한 해장국도 몸을 풀어주는 데 한몫했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너그럽고 포근하게 해준 그 두 남자의 웃는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차를 빼주고 나서 해장국 국물을 마저 먹으려고 자리에 앉자, 마주앉은 사람이 하는 말, “아무리 차를 빼달라고 해도 그렇게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는 사람은 처음 봤다.” 좀 우스꽝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고 지나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총알처럼’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수철 튀는 것처럼 달려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남의 차 앞에다 자기 차를 대어놨으면 전화 소리에도 신경 써야 하고 전화를 받으면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개 전화를 하는 사람은 바쁘니까. 바쁘지 않더라도 차를 운전해 어디론가 가야 하니까. 그리고 대개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받는 사람은, 자기 차 때문에 다른 차가 못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면서도 차를 댄 것이니까. 이건 또다른 배려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은 넓은 편이 아니다. 집집마다 차가 한 대씩이라도 모두 주차하지 못할 정도로 좁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은 주차선 안에 차를 대고,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남의 차 앞에 이중 삼중으로 주차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아파트 바깥 길가에다 댈 것이다. 출근으로 바쁜 아침 시간에 내 차 앞에 차를 대어 놓은 것을 보면 먼저 이맛살부터 찌푸리게 된다. 전화를 했는데 신호가 한두 번 가는 동안에 용케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마음이 좀 풀린다. 전화를 받고 곧장 달려나오는 사람을 보면 찌푸렸던 이맛살을 금방 풀게 된다. 말로 하든 손짓으로 하든, ‘미안하다’는 뜻을 전해오면 오히려 “이른 아침에 잠을 깨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이웃사촌이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잦다. 나는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 대어 놓는 몇몇 차들 주인은 아주 나쁘다고 생각한다. 밤늦게 귀가하여 어쩔 수 없어 이중 삼중으로 차를 대어놓을 것이면, 연락처를 잘 보이는 곳에 분명하게 적어둬야 할 것이고, 다음날 새벽이든 아침이든 전화가 오면 즉시 받아야 할 것인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몇 있다. 나는 그들을 ‘요주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중 삼중 주차를 밥 먹듯 한다.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차를 빼달라고 전화해도 한번에 받는 법이 절대 없다. 늦게 들어왔으니 늦잠을 자겠거니 싶다. 대여섯 번 전화한 적도 많다. 전화를 받았다고 해도 바로 나오는 경우는 절대 없다. 미적미적 꾸물꾸물 느릿느릿 기어나온다. 나무늘보 같다. 그러고서도 미안하다거나 하는 눈짓이나 손짓이나 말씀은 아예 하지 않는다. 양심에 털 난 사람임에 분명하다. ‘배려’라는 말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같다. 아침부터 짜증내기 싫고 화내기 싫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한 대 패 주고 싶을 정도다. 저런 사람과 한 아파트에 사느니 이사를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큰소리로 싸울 수도 없고. 화를 내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참는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양심에 털 난 요주의 인물들 몇몇을 보고 겪다가, 콩나물 해장국 집 옆 주차장에 차를 댄 마흔 대여섯 쯤의 두 남자 어른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들이 기다렸을 시간은 길면 5분, 짧으면 3분쯤 되지 않았을까. 그들도 밥 먹은 뒤 어디론가 바삐 갈 일이 있지 않았을까. ‘누가 내 차 앞에다 이렇게 주차를 했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허허 웃으면서, “금방 식사하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좀 기다려도 안 나와서…”라며 오히려 미안해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 또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 다시 만난다면 소주라도 한잔 권하고 싶다. 살면서 ‘배려’를 배운다.
2017.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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