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지’이다.
아침 라디오에서 ‘동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어머니’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새알 빚어 팥죽 끓이던 어머니가 떠오른 것이다. 어머니 팥죽을 먹어본 게 몇 해 전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라는 노래 가사는 이렇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 안을 때 모순 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버리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나의 어깨동무 자유로울 때 우리의 다리 저절로 덩실 해방의 거리로 달려가누나. 아아, 우리의 승리 죽어간 동지의 뜨거운 눈물. 아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싸워 나가리. 어머님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널리 알려진 노래이다. 주로 대학가, 노동현장의 시위ㆍ집회 현장에서 불렀다. 집회 마친 뒤 뒤풀이하던 막걸리집에서는 젓가락 두드리며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의 핵심 낱말은 ‘사람 사는 세상’과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이다. 치열한 싸움의 현장에서 부르던 노래 치고는 굉장히 서정적이다.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이상에 대한 열망과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이라는 지극히 감성적인 시어 덕분이다. 맨 끝 ‘어머니 해맑은 웃음의 그날 위해’라는 대목을 부를 때는 가끔 목울대가 따끔거리기도 했다. 그 찰나에 짜글짜글한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어머니가 해맑게 웃을 수 있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별것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무런 구김살 없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다.
결국 생각은, ‘어머니는 어떨 때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데로 옮아간다.
어린 아이가 아파 병원 갔을 때 병원비 없다고 이 병원 저 병원 구걸하듯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세상. 조금 더 큰 아이가 학교 가고, 학원 가는 사이에 누구에게 유괴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조금 더 큰 아이가 성적 때문에 비관하여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세상. 조금 더 큰 아이가 대학 입학을 위하여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니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똑같이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 더 큰 아이가 군대에 끌려가서 이유도 모르고 과정도 모르고 결과도 모르는 채 주검으로 돌아오지 않는 세상. 그만그만한 나이의 아이가 무시무시한 정부기관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 채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 서른 넘은 아이가 취업을 못 하여 뭘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밤낮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 즈음의 아이가 맞춤한 배필을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며 꼭 제 닮은 아들 딸 낳아 웃으며 사는 세상. 조금 더 큰 아이가 또다시 자신의 자녀를 위하여 목숨 걸고 일하고 사생결단으로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리하여 동짓날 팥죽 끓여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 다함께 모여 새알 건져 먹으며 내년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
어머니가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꼭 올 것이다. 지금 정부 아래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고 기다리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두려움 없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동짓날 아침, 팥죽보다 먼저 이 노래를 떠올리게 된 이 세상은, 분명 정상이 아닐 것이다. 내 사고(思考) 또한 정상은 아닌 듯하다. 서글프고 우울한 아침이다.
2016.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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