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등 미는 기계가 있다.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해결하는 기구이다. 스위치를 누르면 3분 정도 돌아간다. 회전하는 때수건 앞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버팅기면 등판의 때가 밀리면서 시원해진다. 너무 오랫동안 밀거나 자세가 불량하면 살갗이 벗겨져 따가워지기도 한다. 아무튼 누가 발명했는지 몰라도 참 잘 만들었다 싶다. 이 기계가 없을 땐 모르는 사람이라도 옆 사람과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좀 비인간적인 기계이기도 하다. 경기도 안산 목욕탕에는 이 기계가 없었다. 경남에만 있다는 말도 있었다.
‘나이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등 미는 기계와 씨름을 하고 있다. 나는 탕에서 그를 바라보며 그가 볼일을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등을 밀고 나서 배를 들이댔다. 3분이 지나자 다시 스위치를 누르고는 엉덩이, 허벅지까지 등 미는 기계로 해결했다. 이번에는 양쪽 팔을 들이댔다. 자기 손길이 닿지 않는 등을 위한 기계인데, 좀 심하다 싶었다. 어디 몸이 불편해서 이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면 목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인가 싶어졌다. 10분이 다 되어 간다. 10분은 긴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목욕하는 시간이 겨우 40~50분에 불과하다면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고 있다. 나와 눈이 몇 번 마주쳤다. 그는 내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눈치챘을 것인데 모른 척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앉는 의자에 올라서서 장딴지를 등 미는 기계에 갖다내는 게 아닌가. 몸이 불편하여 그러고 있는 게 아님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아무리 생각하고 양보하여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비록 목욕탕에 자기 혼자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좀 지나친 것 같았다. 나는 탕에서 천천히 나와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너무 오래 쓰시는 것 아니에요?”
“뭐라고?” 그는 기계소리와 탕 안의 소음으로 인하여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듯했다.
“너무 오래 사용하시는 것 아니냐구요?” 나는 엷은 웃음을 띠며 점잖게 말했다.
“그래서 왜!” 그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저씨. 이게 등 미는 기계이지 팔다리까지 다 사용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하면 안 되지요!” 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뭐라고!! 바쁘면 먼저 하든지…. 여기에다 등을 밀건 발바닥을 밀건 내 마음이지 웬 참견이야!”
“아니, 그건 아니지요. 여기 등 미는 기계라고 써 놨잖아요!” 내 목소리도 조금 올라갔다.
“내 75년 동안 목욕하면서 이런 소리를 처음 듣겠네! 누가 어디를 밀든 무슨 상관이야? 아무 데나 밀 수 있는 게지!”
“아, 됐어요, 됐어. 다 하셨으면 제가 좀 할게요.”
그는 별 재수 없는 일을 다 당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75살이나 드시면서 공중도덕 하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의 면상을 잠시 바라보아 주었다. 눈싸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75살이라는 게 좀 미심쩍을 정도로 그는 젊어 보였지만 어쨌든 나보다 25살이나 많은 어른 아닌가. 애써 외면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니까. 딴에는 동네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긴 했다. 그 짧은 찰나에.
등 미는 기계가 작동하는 3분이면 아무리 등짝이 넓은 사람이라도 충분한 시간이다. 부족하면 한 번, 두 번 더 스위치를 누른다고 하여 항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양 팔, 양 다리, 뱃가죽, 장딴지, 발바닥까지 이 기계로 해결하는 모습은 참 보기 싫다. 버스를 탈 때처럼 그 옆에 서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분명 목욕탕 안에는 자기 등 밀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맨 먼저 든 생각은 ‘내가 1분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도 등 미는 기계를 충분히 사용하고 기분 좋게 목욕을 마쳤을 텐데, 괜히 시비를 걸었구나’이다. 그래서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다음 하게 된 생각은 ‘75살이나 되도록 정말 무엇을 배우고, 그의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가 하는 말 “여기에다 등을 밀건 발바닥을 밀건 내 마음이지 웬 참견이야”는 “대통령 한번 뽑았으면 그만이지 왜 하야하라고 하는가?”라는 말로 바뀌어 환청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무리 해도 바뀌지 않는 고집불통, 난공불락 늙은이의 전형이 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목욕을 하면서 다른 사람은 등 미는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보았다. 보통 때 같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일이다. 내가 나오기까지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등 미는 기계를 사용했지만 그 누구도 한 번 이상 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다. 75살이라는 그 노인네도 오늘만이라도 좀 유심히 관찰했더라면 무엇인가 깨달은 바가 있지 않았을까.
사소한 일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혼자 있어도 몸 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말이다. 나 같은 장삼이사야 이 경지에 이르기에 애초에 걸러먹었지만, 75살쯤 되면 세상 이치는 다 알 만한 나이이고,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을 자초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왜 일은 그렇게 번지고 말았을까. 그는 목욕탕에 혼자 있을 때면 정말 발바닥까지 등 미는 기계로 씻는 것일까. 그러고서도 조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일까. 그걸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혼자 있을 때는 더 막되고 잡된 장난도 저지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대통령도 관저에 혼자 있을 때 별의별 짓을 다 저지르는데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음 등 밀 사람이 조금 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특별한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것도 못 기다려주고 못 참아주는 성격이란 얼마나 옹졸하고 조급한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다.
70살 넘어서면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바꾸기 불가능할 것이다. 내 나이인 50살만 넘어도 평생 지녀온 철학을 바꾸기 어렵지 않은가. 이인제나 조태호 같은 철새 정치꾼들은 빼고. 선친께서도 나와 그렇게 많은 정치적 논쟁을 벌이면서도, 더구나 너무나 뻔한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대며 공박하는데도, 절대로 신념을 바꾸지 않지 않았던가. 그걸 내가 왜 몰랐을까. 그 노인도 별 희한한 놈의 새끼 때문에 기분을 잡쳤다며 하루 종일 자기 자식이나 마누라에게 주절거리고 있겠지. 목욕탕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 하나 가지고 하루 종일 참 많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그 노인네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2016. 12. 18.
(사진은 네이버 블로그 '홍대그녀'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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