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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자괴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by 이우기, yiwoogi 2016. 11. 21.

윤동주의 서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윤동주의 떨림이 전해져 온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뇌를 이보다 잘 표현한 글이 있을까 싶다. 빼앗긴 나라의 국민으로서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조차 부끄러웠던 윤동주의 마음은 광복 후 우리의 마음을 후벼 팠다. 일제에 부역한 이들은 물론이고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엎드려 살았던 지식인들의 정신세계에 일침을 가했다. 일제 앞잡이들은 오히려 큰소리치며 우익인사로 탈바꿈한 놈이 많긴 하다. 아무튼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아니었던가. 역사 속에는 부끄러움 때문에 목숨마저 던져버린 사람도 아주 많다. 명예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했던 선비의 정신이 윤동주의 부끄러움으로 되살아난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중국 전국시대 철학자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君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공명정대하여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仰不愧於天 俯不於人 二樂也)],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군자의 두 번째 즐거움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 사람에게 공명정대하여 부끄럽지 아니한 것이다. 하늘에 부끄럽거나 사람에게 부끄럽다면 군자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군자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 가운데 하나가 부끄러움이다. 맹자도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부끄러움에서 찾은 것일까.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던 시절이었으니, 부끄러움이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데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알 수 있겠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한마디하면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고 말한 뒤 이 말을 따라하는 게 유행이 되었다. 풍자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자괴감(自愧感)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대통령 말은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괴롭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처지가 되어 본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느라 했는데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를 가지고 촛불시위를 하고 하야하라고 하고 탄핵하겠다고 하니 좀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괴로워 미칠 지경이다.’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죄를 지었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대통령의 담화를 들으면서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억울하다가 아닐까 싶었다. 그다음은 괴롭다였을 것이다. 실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부끄럽다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다면 일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긴 우리나라 대다수 정치인들이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긴 알던가.

 

어쨌든 대통령의 이 말을 따라하는 국민이나 언론이 꽤 많다. 초등학생도 따라하고 연예인들도 따라하게 됐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자괴감이라는 말을 잘못 알고 쓰는 것 같다. 앞서 말한 대로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상황이 아니라 화나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당황스럽고, 황당한 경우에도 자괴감이라는 말을 갖다 쓰고 있는 것 같다. 자괴감이라는 말에서 괴롭다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몇 가지 보기를 찾아본다.

 


-수능 끝낸 고3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느껴” (경향신문)

-“내가 박근혜 하야이런 말 하려고 말하기 배웠나 자괴감” (서울경제)

-‘개콘-민상토론유민상 내가 이러려고 개그맨됐나 자괴감폭소 (뉴스엔)

-크라잉넛 이러려고 말 달렸나 자괴감 들어” (한겨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부정적 방법으로 명문 사학 이화여대에 입학했다는 것을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화나고 억울할 것이다. 욕부터 튀어나오지 않았을까.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때는 이러려고 공부했나, 분노 치밀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갓 말을 배운 어린이가 박근혜 하야라는 말을 하게 됐을 때는 부끄러움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이런 말 하려고 말하기 배웠나, 자존심 상해라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말 달리자라는 노래로 유명한 크라잉넛도 마찬가지로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일 것이다. 개그맨 유민상은 이런 경우 참 웃긴다고 말함 직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다음 백과-한국사 인물 열전에 나오는 윤동주에 대한 기사를 읽어본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는 윤동주를 일제 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생전에 그는 유명 시인도 아니었고 독립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던 열혈청년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100여 편의 시는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진실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순수하고 참다운 인간의 본성을 되새기게 함으로써이다. 그것은 부끄러움이라는 시어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윤동주의 삶과 시를 기억하는 것은 그 부끄러움 덕분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자괴감과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자괴감이라는 말을 자기 마음대로 엉뚱하게 써버린 때문에 부끄러움이라는 말이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것 같다. ‘분노, 억울, 당황, 황당수치스럽다, 모멸감, 자존심 파괴, 웃기는 일이라고 말해야 할 때에도 자괴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통령이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온 국민의 말글이 어지럽혀져 버렸다. 이런 일을 보면 화나고 황당하다. 저런 사람이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니 전세계 사람들에게 많이 부끄럽다.”

 

2016.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