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이 낀 사흘 연휴를 즐기기 위하여 제주도에 찾아간 관광객이 제법 많은가 보다. 제주도에 가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하는데 둘 다 날씨를 잘 살펴야 한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인하여 발이 묶이는 관광객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빠지지 않고 나온다. 이번 연휴에도 날씨 때문에 항공기가 늦어지거나 아예 운항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던가 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갑작스런 일까지 염두에 두고 제주에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개천절 아침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난생 처음 보는 어떤 낱말 때문에 눈이 번쩍 뜨였다. ‘윈드 시어 특보’라는 말을 텔레비전 뉴스 화면에서 본 것이다. 내가 좀 무식하긴 하지만 ‘윈드’는 알겠더라. 바람 아닌가. 바람으로 인한 특보라는 것도 어림짐작으로 눈치채겠다. 그러면 ‘시어’는 무엇일까. ‘윈드 시어’는 무엇일까. ‘윈드 시어’가 무엇이기에 항공기 발이 묶이는 것일까. 도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특보까지 하는 것일까. 특보는 ‘특별보도’의 준말이니 뭔가 엄청난 일 아닌가. 재해, 재난 이런 말이 얼른 떠올랐다. 궁금함을 이길 수 있겠나. 특히 말과 관련된 것이니...
기상청 누리집에 가본다. 한참 동안 찾아 헤맸다. 최근 발표한 기상특보도 뒤져 보고, 검색창에서도 찾아본다. 통합검색에도, 기상백과에도, 뉴스ㆍ공지에도, 게시판에도 윈드 시어라는 말은 없다. 이 말이 한 낱말인지, 두 낱말인지 몰라서 이리도 해 보고, 저리도 해봤지만 기상청에서는 윈드 시어라는 말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기상 특보에 나오는 ‘돌풍’이라는 말에 눈길을 한참 동안 줄 뿐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찾아내었다. ‘특보기준’이라는 곳에 들어가니 ‘윈드시어’라고 한 낱말로 나와 있는데, ‘윈드시어 탐측장비로 탐측이 된 경우, 이륙 및 착륙 시 항공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15KT이상의 정풍 또는 배풍이 변화 할 경우’에 이 특보를 발령한다고 되어 있다.
누리집에서 검색하니 뉴스 보도에는 이 말이 줄줄이 나온다.
• 인천국제공항 윈드시어 특보…“항공기 안전운항 유의” (아시아투데이)
• 종일 비와 안개가 이어진 인천공항에는 돌풍까지 풀어 기류가 급변하는 윈드시어특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졌습니다. (케이비에스)
• 어제저녁 6시 10분쯤 기류가 급변하는 윈드시어 특보와 강풍특보가 내려지면서 인천공항 항공기 운항이 무더기로 지연된 겁니다. (와이티엔)
• 제주공항 윈드시어 특보 발효...귀경객 ‘북새통’, 지연운항 속출 (헤드라인제주)
• 제주공항 강풍·윈드시어특보…여객기 결항·지연 이어져 (연합뉴스)
• 제주공항, 윈드시어로 일부 운항 차질 (제주일보)
더 찾아보니 ‘윈드 시어(wind shear)’라는 말은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서, 흔히 ‘난기류’라고 한다. ‘시어(shear)’라는 말은 원래 ‘큰 가위’라는 뜻이라는데 어쩌다 이 말이 ‘윈드(wind; 바람)’라는 말과 붙어서 ‘난기류’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깎다, 자르다’라는 뜻에서 파생한 것일까. 아무튼...
어느 분의 블로그(http://www.hansfamily.kr/1060)에서 옮겨 본다. “윈드시어.. Windshear.. 관련 업무를 시작하면서 처음 들었던 생소한 용어다. Wind(바람)라는 단어에 Shear라는 용어가 결합된 새로운 용어인데, Shear 의미가 ‘낫으로 베어내다, 가위질 하다, 뚫고 나가다, 가로질러 나가다’ 등인 것으로 볼 때 바람(Wind)이 정상적으로 불지 않고 변형을 일으키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실제 항공기 조종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윈드시어다. 윈드시어를 만나면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기 힘들어 항공기를 마음대로 조종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제 좀 알겠다. 한참 걸렸다. 대충 그러저러한 뜻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짐작한 것과 완전히 동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자세히, 정확히 알고 나니 속은 시원해졌다.
기분은 씁쓸하다. 온 국민이 다 아는 말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비행기 한두 번 타본 사람은 다 알아듣는 말을 나만 혼자 모르고 지내온 것일까. 기상청에 대한 원망도 생긴다. 다른 특보는 다 우리말이다. 태풍, 뇌전, 대설, 강풍, 운고, 저시정, 호우, 황사. 한자어이긴 하지만 우리말이다. 유독 ‘윈드시어’만 낯선 외국어이다. 영어겠지. 한 낱말처럼 적어 놓은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윈드 시어를 대체할 우리말은 없었던 것일까. ‘난기류’, ‘돌풍’, ‘순간돌풍’과는 아예 다른 말, 다른 상황일까. 길가는 사람들에게 ‘윈드 시어’라는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어보고 싶다.
국립국어원은 뭐라고 할까. 순화어 및 표준화 용어로 ‘급변풍’이라는 말을 버젓이 올려놓았다. 국립국어원이 조금만 더 부지런하다면, 아니 자기의 책무를 조금만 더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기상청에 공문 한 장쯤은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기상청에서 말하는 윈드시어는 풍향이나 풍속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급변풍’으로 고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려줄 수 없을까. 덩달아 언론사에도 낯선 외국어를 자꾸 사용하지 말고 국민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바꾸어 써 달라고 할 수는 없었을까. 이런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있는 게 국립국어원 아닌가.
그래도 스스로 노력한 덕분에 앞으로 뉴스에서 ‘윈드 시어’라고 나오더라도 알아먹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언론사들도 양심은 있는지 윈드 시어라는 말 다음에 묶음표를 해 놓고 ‘난기류’라고 표기하는 데가 아직은 제법 있다. 그냥 난기류라고 쓰는 데도 아직은 많다. 같은 언론사에서도 이 말과 저 말을 섞어 쓰고 있다. 이런 조금 양심적인 표기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개천절 아침에 컴퓨터 켜 놓고 한참 동안 씨름한 결과 배우게 된 내용은 좀 씁쓸하다.
2016.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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