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세일 페스타(Korea Sale FESTA)’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름도 얄궂은 이 행사 덕분에 지난 주말 백화점 매출이 지난해보다 10% 늘었다고 한다. 전국 거의 모든 유통업체들이 대대적으로 물건값을 깎아준다. 가령 이마트몰에서는 3000여 개 제품을 최대 60%까지 깎아준다고 한다. 관련 정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말에도 현장 점검을 나갔다고 한다. 장관이 주말에 현장에 나가면 여러 사람 피곤하다는 것은 일단 논외로 치자. 중국 관광객도 엄청 늘어날 것이라고 호들갑이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가 무엇인가. 나는 모르겠다. 그래서 누리집에 올려놓은 대로 옮겨본다. “2016년 9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33일간 진행되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대규모 할인행사에 외래 관광객 맞춤형 행사와 한류문화축제가 한데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글로벌 쇼핑관광축제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015년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를 한층 더 발전시킨 행사로 정부와 유통, 제조, 관광, 문화업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사”이다.
그럼 페스타(FESTA)는 무슨 뜻일까. 잔치, 축제 즉 페스티벌을 가리키는 다른 외국어인 줄 알았다. 이를 테면 이탈리아어이거나 아프리카 소말리아어인 줄 알았다. 누리집에 올려져 있는 뜻을 옮겨 본다. “‘FESTA’에는 ‘축제’라는 기본의미뿐만 아니라 ‘Festival(축제)’, ‘Entertainment(한류)’, ‘Shopping(쇼핑)’, ‘Tour(관광)’, ‘Attraction(즐길거리)’가 모두 어우러진 쇼핑관광축제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들의 말 지어내는 재주에는 손오공도 못 따라가고 홍길동도 못 이길 것이다.
지난해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말을 보면서 참 남의 나라 것에서 잘도 베껴 써 먹는다 싶었는데 올해는 한술 더 떤다. 이것도 창조경제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말해보자. 페스타라는 말에서 축제, 한류, 쇼핑, 관광, 즐걸거리를 생각해 낼 한국사람은 얼마나 될까.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이라고 별 수 있을까. 물론 궁금하면 누리집에서 찾아보면 알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지나치게 제맘대로 말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 즐걸거리를 가리키는 ‘어트랙션’이라는 단어는 몰랐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가 한류라는 말인지도 이번에 알았다.
이 행사를 알려주는 누리집에 가보면, 이렇게도 써 놓았다. ‘2016 쇼핑관광축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여기에 ‘한국’이라는 말 하나만 넣어주면 금상첨화이겠다(그래도 아쉬우면 ‘코리아’라고 해도 되겠지). 이 말을 더 크게 써 놓고,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외국인을 위하여 영어나 중국어로 조그맣게 써 놓아도 되지 않은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중국 관광객이 25만여 명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 자기 나라 연휴기간을 맞이하여 놀러 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코리아 세일 페스타 홍보 덕분에 우르르 몰려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외국인 관광객ㆍ쇼핑객을 위하여 이 행사를 알리는 누리집을 영어, 일어, 중국어(간체중문, 번체중문)로까지 친절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외국인을 위한 마련은 충분한 것 아닌가.
이런 국가적인 행사를 보면 문득 1981년 전두환 독재 시절 열린 ‘국풍81’이라는 행사가 떠오른다. ‘국풍81’은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열린 대규모 문화 축제이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가 ‘민족문화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국학에 대한 관심 고취’라는 명분 아래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주최한 관제적 성격의 문화축제이다. 이때 ‘국풍’이 일본말 ‘신풍’에서 따온 것이라 하여 말이 많았다. ‘국풍82, 83’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속내를 알 만하다. 민족문화 계승 같은 것은 말짱 말장난일 뿐이고 군부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도의 문화정책의 하나였다고 비판받았다. 가수 이용이 이 행사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다.
지난해 정부 주도로 열린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Korea Black Friday)’라는 것도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흉내내어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진행한 할인 행사이다. 정부가 메르스로 침체된 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해 2014년까지 외국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했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의 대상을 내국인까지 확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메르스로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것은 그저 명분일 뿐이고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게 많은 사람의 비판적인 눈길이었다. 그러니까,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던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 지난해에는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해괴한 이름의 행사로 탈바꿈하였고, 그것이 올해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고 하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2016 쇼핑관광축제’ 기간에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면 값비싼 물건을 싼값에 사서 횡재했다고 콧노래 부를 사람은 누구일까. 제조업체, 유통업체를 비롯하여 원하는 수준의 소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비록 물건 값을 크게 깎아준다고는 하여도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균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리면서 원하는 만큼의 소비를 해오던 사람들은 이번 축제 기간이 반갑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이런 행사와는 무관하게 살아간다. 이런 행사를 하는지조차 모르는 국민이 더 많을 것이고, 이번 기회에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원하는 만큼 살 만큼 형편이 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정말 그런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너도나도 쇼핑과 관광을 즐길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백화점 매출뿐만 아니라 전통시장, 동네 구멍가게, 동네 빵집, 동네 커피숍 들의 매출도 한번 생각해 주면 좋겠다.
둘째, 정부에서 이런 행사를 대대적으로 할 깜냥이 된다면, 쌀값 문제부터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쌀값 문제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쌀값은 농업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밥을 먹는 모든 한국사람들의 생존과 관련한 문제이다. 농민 백남기 씨의 사망도 이 문제에서 출발한 비극 아닌가. 농민단체들은 쌀값 보장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고 집회를 열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문제가 커질지 모른다. 먹고사는 문제이니까. 생존권 투쟁이니까. 보도에 따르면 올해 쌀값은 벼 40kg 가격이 3만 3000원이라고 한다. 1990년 가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분노한 농민들이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들이는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쌀값 문제 해결에 쏟아준다면 어떨까. 정말 그렇게 할 수 없었을까. 정말 쌀값 문제는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노동문제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 파업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는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인가. 우리 정부에는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셋째, 우리나라에서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 차원의 행사 이름을 이렇게 개념없이 지어도 되는 것인가 싶다. ‘지구촌시대, 글로벌시대, 국제화시대, 한류, 유커’ 다 좋다. 외국인 관광객을 꼬시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우리만의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화 관광 자원’, 좀 어려운 말로 ‘콘텐츠’라고 해 두자. 그것을 포장하는 행사 이름은 그다음 문제이다. 먼저 우리 국민을 위하여,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우리 말로 멋진 이름을 지어 놓고, 그다음 외국인을 위하여 번역한 말을 붙여주는 게 순서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 정부나 지자체가 하는 행사들을 보면 모든 게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비롯해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코리아 그랜드 세일’ 같은 이름의 행사는 누가 주체이고 누가 주인인지 모를 행사이다. 이름부터 제대로 지어야 하지 않겠나. 아니, 이런 행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지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행사를 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나.
사족: 입만 열면 '안보위기', '북핵위기', '사드배치', '안보상황 엄중' 따위를 외치면서 마치 곧 전쟁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돌아서서는 정부가 주도하여 대규모 쇼핑관광축제를 연다고 하면 지나가던 소가 웃지 않겠나. 하긴 소라고 하여 웃음이 나오겠나. 여물 먹여줄 농민들이 죽어날 판인데...
2016.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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