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vocal)이라는 말을 자주 보고 듣는다. 요즘 일요일 오후마다 엠비시(MBC) 문화방송에서 방송하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보컬’이라는 말이 수십 번 나온다. 사회자도 이 말을 수시로 하고 화면 자막에도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나는 이 말을 잘 모르겠다. 대강 무슨 뜻인지는 헤아리겠는데 흐리마리하고 애매모호하다. <복면가왕> 무대의 객석에 앉아 있는 판정단들은 다 이 말을 알아들을까,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모두 보컬의 정확한 뜻을 알고 있을까. 보컬의 뜻을 찾아 떠난다.
영어 사전에서는 이 말의 뜻을 다섯 가지로 풀이해 놓았다. ‘가창의, 목소리의, 목의, 시끄러운, 드러내다’가 그것이다. 영어에서 이 말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 또는 동사이다. 다섯 가지 뜻 가운데 <복면가왕>의 사회자가 말하는 것은 앞 세 가지와 연관 있는 듯하다. ‘외래어’이니 국어사전에도 그 뜻이 있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노래 부르는 일을 악기 연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어 놓았다. ‘보컬리스트’는 ‘팝 그룹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고 설명해 놓았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냥 ‘가수’ 같다. 가수란 무엇인가.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위키백과에서 검색해 본다. ‘보컬은 음악의 성악/노래를 부르는 역할 또는 이 일을 하는 사람(가수, 성악가)을 가리키는 음악 용어이다’라고 나온다. 가수, 성악가라는 말로 바꿔 쓸 수도 있다는 단서를 찾았다. ‘이 용어는 주로 ‘록밴드의 보컬’ 등과 같이 대중음악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vocal이라는 말은 singing이라는 말과 함께 팝뿐만 아니라 클래식계에서도 사용된다. 차이는 vocal은 목소리, singing은 노래라는 개념으로, vocal cord는 성대라는 뜻이 된다’라고도 설명해 놓았다. 역시 상수들이 곳곳에서 웅크리고 앉아 나같은 하수를 기다리고 있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라고 했다. 이 설명을 보면 보컬은 ‘목소리’라는 뜻에 가깝다. 위키백과 설명을 종합해 보면 보컬이라는 말은 가수, 성악가, 목소리라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
이제 국립국어원으로 가볼 차례이다. 국립국어원은 2001년 8월 1일부터 11월 30일 사이에 열린 제107~121차 회의에서 순화한 외래어를 쓰도록 언론기관에 권장한 적이 있다. 이때 국립국어원은 가령 ‘개런티’는 ‘출연료’, ‘더그아웃’은 ‘선수 대기석’, ‘더빙’은 ‘(말)입히기’, ‘모닝콜’은 ‘깨움전화/기상전화’로 바꿔 쓰도록 권장했다. ‘보컬’은 ‘목소리’로 순화하도록 했다. 보기글도 올려 놓았다. ‘이현우의 묵직한 보컬이 가슴 깊이 다가오는 ‘헤어진 다음날’…’ 이렇게 나와 있다. 여기서 보컬을 목소리로 바꿔 쓰라는 뜻이다. 위키백과와 국립국어원에서 공통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보컬’이 ‘목소리’라는 것이다. 국어사전의 풀이도 감안하면 ‘가수’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럼 이제 나날살이(특히 언론)에서 쓰는 ‘보컬’을 ‘목소리’ 또는 ‘가수’로 바꿀 수 있을지 알아본다.
에스비에스(SBS) 서울방송에서 매주 월요일 깊은 밤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에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라는 게 있었다. 이것을 <목소리 전쟁: 신의 목소리>로 바꾸면 어떤가. 뜻은 충분히 통한다. 목소리라는 말이 두 번 나오기 때문에 방송 제목으로는 별로다. 그러면 <가수 전쟁: 신의 목소리>라고 하면 어떤가. 좀 어색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방송국에 제목을 바꾸라고 항의할 필요는 없다. 8월 15일 마지막회를 방송했다.
‘보컬 트레이너-발성연습하는 앱’이라는 것이 있다. ‘보컬 트레이너-더 나은 노래’도 있고 ‘보컬 알아보기’라는 것도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이름이다. 죄다 ‘목소리’로 바꾸면 더 알아보기 쉽다. 이외에 여러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더 찾아본다.
◐ ‘너목보3’ 코드보이 메인보컬 나로, 일본 아이돌로 출연→여기서는 목소리 또는 가수로
◐ ‘노래싸움-승부’ 임형준ㆍ김희원 ‘반전보컬’→여기서는 목소리로
◐ ‘복면가왕’ 서은광 “탈락 아쉬움無…보컬로서 무대 행복”→여기서는 가수로
◐ ‘너목보3’ 다비치 강민경, 中시절 보컬 선생님 등장에 화들짝→여기서는 목소리 또는 음악으로
◐ ‘프듀101’ 보컬트레이너 김성은, 신곡 ‘헤이츄’ 발표..첫 앨범→여기서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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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아, 김주나 쇼케이스 깜짝등장 “날 이을 섹시한 보컬”→여기서는 가수로
대체로 이러하다. ‘보컬’을 ‘목소리’ 또는 ‘가수’로 바꿔 써도 뜻이 통한다. 이해하기 더 쉽다. 100% 만족한다고 하기는 어렵기도 하다. 가령 ‘비투비, 보컬 유닛 ‘비투비-블루’ 결성…19일 첫 싱글’에서 ‘보컬 유닛’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가수’쯤 되려나….
음악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 이를 테면 가수, 악단, 평론가 들은 ‘가수’, ‘목소리’라는 말보다 ‘보컬’이라고 말하는 게 더 쉽고 편한가 보다. 보컬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다가오는가 보다. ‘보컬 그룹’이라고 하면 그게 무엇인지, ‘실력파 보컬’이라고 하면 그게 어느 수준의 누구를 가리키는지, ‘보컬 선생’이라고 하면 그 선생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보컬 라인’이라고 하면 그게 어디에 있는 무슨 선인지, ‘보컬 트레이닝’이라고 하면 무엇을 훈련시키는 사람을 가리키는지, ‘명품 보컬’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가수를 가리키는지 쉽게 이해하는가 보다.
하지만 나는 어렵고 또 어렵다. 보컬이라는 말이 신기루 같고 안개 같고 구름 같다. <복면가왕>을 보면서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앉았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성주는 ‘보컬’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있겠지.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보컬이면 그냥 보컬이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어떡해? 하늘이 그냥 하늘이고 물이 그냥 물이듯이, 보컬은 그냥 보컬이야!”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예….” 밖에 더 있겠나. 속으로는 ‘그래요, 하늘이면 하늘이라고 해야지 왜 스카이라고 하는데요? 물이면 그냥 물이지 왜 워터라고 하는데요? 네?’라고 묻고 있지만.
201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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