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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우리말 높임법은 안녕하십니까?

by 이우기, yiwoogi 2016. 8. 21.

말을 할 때 상대방을 높여주는 것을 높임법이라고 한다. 전문가처럼 말하자면 어떤 대상에 대한 높임의 태도가 표시되는 문법 기능이라고 한다. 높임법에는 객체높임법, 상대높임법, 주체높임법 이런 게 있다고 한다. 그런 것까지 다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말하려고 하자면 10분에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을까. 경어법, 존대법, 대우법, 경양법, 공대법이라는 말도 쓰는가 보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어렵다고 할 수밖에 더 있겠나. 그래도 꼭 생각해 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어서 주절주절 늘어놓아 본다.

 

호명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런저런 일을 잘하여 기관단체장으로부터 상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 상을 주는 행사는 시상식이다. 시상식에 가보면 사회자가 이렇게 말한다. “호명하시는 분은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호명은 부를 호(), 이름 명()이어서 이름을 부른다는 뜻이다. 깊이 생각해 볼 것 없이 호명하는사람은 사회자이다. ‘호명하시는분도 당연히 사회자이다. 그런데 상을 받기 위하여 앞으로 나가야 할 사람은 호명된사람이다. ‘호명받은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높여 말하자면 호명되신 분은이라고 하거나 호명받으신 분은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만약 호명하시는 분은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면 사회를 보는 사람 본인이 앞으로 나가야 맞다. 그런데 중간에 묘하게 존칭을 뜻하는 ‘--’가 들어가고 보니 애매해진 것이다. 이것은 높임법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호명하시는이라는 말 때문에 모두 어리둥절 얼렁뚱땅 속아넘어가는 것같이 보인다. 사회자는 상 받는 사람을 높이고 싶었을까, 상 주는 사람을 높이고 싶었을까. 모르겠다. 결국은 자기를 높인 꼴이다.

 

내가 아시는 분

 

이런저런 자리에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그럴 때 내가 아는 동생은이라거나 내가 아는 어떤 놈은이라고 하거나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이라고 말한다. 뒷담화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 이야기의 소재가 된 사람이나 누가 나이 많고 적은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꼭 내가 아시는 어떤 분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 마주앉아 듣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주 간혹 이야기의 소재가 된 사람이 워낙 고명한 분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말이다. 이 말도 아시는이 말 때문에 말하는 나 스스로를 높이는 꼴이 되어 버렸다. 무조건 아무데나 ‘--’를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주앉아 듣는 사람을 높이고 싶다면, 스스로를 낮추면 된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이렇게!

 

내리실게요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12일을 보면 배우들이 버스에 타고 있는데 피디나 작가가 , 도착했습니다. 내리실게요라고 말한다. 방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 연예인을 깨울 땐 일어나실게요라고 말한다.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는데 간호사가 말한다. “체중을 재겠습니다. 체중계에 올라서실게요라고 말한다. “혈액을 채취하실게요라는 말도 한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은, ‘, 이 사람들이 나를 높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연예인으로서, 환자 고객으로서 대접받는다는 생각도 하겠지. 그런데 가만히 뜯어보면 참 웃기는 표현이다. 제대로 말하자면 , 도착했습니다. 내려 주십시오라거나 내려 주세요”,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게 맞다. ‘주십시오’, ‘주세요라고 말하여도 얼마든지 높임의 뜻이 담겨 있다. “내리실게요라고 말하면 말하는 피디나 작가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들 히히 웃으며 넘어가고 있다. 병원에서도, 히히 웃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없이 말하고 듣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체중계에 올라서 주십시오”, “올라서 주시기 바랍니다”, “혈액을 채취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맞다.

 

되도록이면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춰야만 한다는 의식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 사로잡힌 나머지 ‘--’를 마구잡이로 넣는 것 같다. 은연중에 직업병처럼 된 것이다. 상대는 곧 고객이니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제대로 잘 써야 한다. 말하는 사람도 그냥 대충 말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냥 대충 받아들이고 있으니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놓고 보면 정말 부끄럽고 민망한 표현이 주변에 늘렸다. 찻집에서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고, 가게에서 잔돈은 500원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옷가게에서 손님 몸에 맞는 사이즈(크기)는 없으십니다라고 말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말을 제대로 잘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16.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