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사가 8월 19일 보도한 내용이다. “19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현재 운영 중인 모바일 앱인 'M건강보험'을 개편해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이하 시범사업) 시행 시 참여 환자가 이를 이용해 혈압·혈당 정보를 의사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다른 언론사가 보도한 내용이다. “전남은 대구에 본사가 있는 한국가스공사 소속이지만 김소희를 전남 소속으로 등록해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신문이 보도한 내용이다. “헬싱키는 10년 안에 차량 소유권이 필요 없게 한다는 계획이다.”
정책브리핑에 나오는 내용이다. “원하는 정보를 검색 후 결과를 바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고, 신청부터 자료를 받을 때까지 수동 승인 처리하던 것을 자동 처리하도록 하여 정보활용 이용절차도 간소화한다는 계획이다.”
한 방송국의 기자가 읽은 원고를 옮겨 놓은 것이다.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협치를 조례로 제도화함으로써 협치를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런 언론 보도를 보고 듣고 있으면 눈과 귀가 갑자기 꽉 막혀 꺽꺽, 켁켁 소리를 내게 된다. 입에 들어온 달콤한 사탕이 갑자기 밤송이가 되어 입 천장을 찌르는 것 같고, 조수미보다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던 사람이 갑자기 쇠 긁는 소리를 내는 것 같고, 무지개보다 아름다운 그림이 갑자기 암흑 천지로 변해버리는 것 같다.
바로 ‘…한다는 계획이다’ 때문이다.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쓰니 따라 쓰는지도 모르겠다. 신문이나 방송은 으레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교육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투는 신문, 방송 말고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50년째 밥먹고 살고 있는 나는, 우리말과 글에 대하여 비교적 관심이 높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다는 계획이다’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괴하고 망측하고 억측스런 말투로 보이고 들린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그러니 눈만 뜨면 이런 글이 보이고 귀만 열면 이런 말이 들리지 않겠나. 내가 잘못된 것인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진지한 고민은 천천히 하기로 하고, 이렇게 문제를 드러내는 까닭을 일단 말해야겠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전문가들이 나서서 좀 도와주면 더욱 좋겠지. 나는 말과 글에 관심만 많을 뿐 전문가는 아니니까.
맨 뒤에 보기로 든 다음 문장을 보자.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협치를 조례로 제도화함으로써 협치를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이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를 뜯어 보면, ‘서울시는…계획이다’가 된다. 서울시=계획! 이렇게 된다. ‘지자체 최초로…강화한다는’은 ‘계획’을 꾸며주는 말들이다. 이게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참말로 이상해서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협치를 조례로 제도화함으로써 협치를 더욱 강화할 계획입니다.”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서울시는…강화할 계획이다’가 된다. 주어는 ‘서울시’이고 서술어는 ‘강화할 계획이다’가 된다. ‘서울시=강화할 계획’의 관계가 아니라 서울시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고상한 문법 용어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이렇게 해야 정상의 문장이 된다.
“헬싱키는 10년 안에 차량 소유권이 필요 없게 한다는 계획이다.”라는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헬싱키=계획’처럼 썼다. “헬싱키는 10년 안에 차량 소유권이 필요 없게 할 계획이다.”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되고 주어와 서술어도 자연스럽게 호응한다.
‘…한다는 계획이다’를 찾아보면 많은 언론사가 이 말을 쓰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느껴진다. 아예 안 쓰는 곳도 있는 듯하지만, 죄다 뒤져보지 않았으니 장담할 수는 없다. 계획이라는 말 대신에 ‘…한다는 방침이다’를 쓰기도 한다. 원리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민에 대하여 전문가가 속시원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201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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