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질문-답변하는 곳’에 어떤 사람이 질문하였다.
“회사에서 팸투어를 간다고 하는데 팸투어의 뜻이 뭐죠? 일종의 여행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팸투어라고 불리는지, 팸투어라고 불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지금 다니고 있는 우리 회사가 팸투어를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의 질문은 꼭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찾아본 적은 없지만,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어디에서 온 말일까. 왜 이 말이 널리 쓰일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참으로 막연히 ‘팸’에서 ‘패밀리’를 떠올렸고, 가족들이 가는 여행, 또는 가족과 같이 잘 지내보자 하는 뜻으로 기획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다른 기사 검색하다가 이 말을 발견하고는 마침내 작정하고 이곳저곳 뒤져보니 이런 질문을 누군가 올려놓은 것이다. 참 고맙다. 고마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질문하신 분보다 좀더 똑똑하고 친절한 어떤 분이 다음과 같이 답변을 올려놓았다.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
항공사나 여행업체,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급업자들이 자기네 관광상품이나 특정 관광지를 홍보하기 위하여 여행사 또는 관련 업자들, 유관 인사들을 초청하여 관광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초청되는 사람들은 기사화하기 위해 기자들이 포함되기도 하고, 홍보에 도움이 되는 유관인사들도 있으며 아울러 상품개발을 위해 여행 업자들이 초청되기도 합니다. 이 ‘Fam’은 ‘텔레비전’을 ‘테레비’로, ‘에어컨디셔너’를 ‘에어컨’, ‘매스커뮤니케이션’을 ‘매스컴’, ‘리모트 컨트롤러’를 ‘리모콘’ 등으로 줄여 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만든 단어입니다.
일단 두 분께 감사의 인사부터 올려야겠다.(질문-답변 있는 곳: http://goo.gl/nOSsVZ)
시간을 내어 ‘Familiarization’이라는 영어의 뜻을 찾아본다. 첫 번째 뜻은 ‘친하게 함’이고 두 번째 뜻은 ‘통속화’이고 세 번째 뜻은 ‘친하게 하기’라고 나온다. ‘Tour’는 ‘관광’, ‘여행’이라는 말이다. ‘패밀리어러제이션 투어’는 우리말로 그대로 옮겨 보자면, ‘(어떤 여행지, 관광지, 축제, 행사 등과) 친해지기 위하여 하는 여행’쯤 되겠다. 막연히 짐작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퍽 다행이다. 말과 글은 정확한 뜻을 모르더라도 감각적으로 대강의 뜻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팸투어’가 유행이다. 아주 풍년이다.
‘국토부 어린이 기자단, 공주시 도시재생선도지역 팸투어’(일요신문), ‘나주시 ‘관광 나주’ 이미지 심는 팸투어 활성화’(한성일보), ‘산청군, 코레일 관계자 초청 팸투어’(경남매일), ‘여수시, 트래블리더 초청 팸투어 실시’(전라닷컴), ‘합천군, 한국관광공사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 진행’(경남일보), ‘세종시 팸투어, “싱싱장터와 함께 떠나는 첫 번째 여정”’(서울일보), ‘경북도, 중국인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 실시’(신아일보), ‘창녕군, 블로거기자 초청 팸투어 실시’(아시아뉴스통신), ‘해남군,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팸투어 개최’(통합뉴스), ‘울산시 남구도시공단, 일본 여행사 관계자 초청 팸투어’(국제뉴스), ‘함안군 맛·멋 알리기 '블로거 팸투어'’(경남도민일보)…
주로 지방자치단체가 팸투어를 많이 마련하는가 보다. 자기 동네에 관광객을 많이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야겠지. 초청하는 대상은 대개 기자, 블로그 운영자 들이다. 이들이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 뒤 사진 찍고 기사 써서 인터넷에 올리게 되면, 그것을 보고 다른 관광객들이 꼬여들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도 팸투어를 한 뒤 써 놓은 글과 사진을 보고 놀러갈 곳을 정하는 일이 잦다.
팸투어 행사를 마련하는 사람이나 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꼬집어서 ‘이런 뜻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무슨 말인지는 알 것이다.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이 말을 잘 모를 것 같다. 팸투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듣고 보고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쉬운 말로 바꿔본다. ‘사전 답사’라는 말이 알맞을 것 같다. 내 생각이기도 하고, 검색하면 바로 이렇게 나온다. ‘답사’라고 하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먼저 떠오른다. 답사라는 말 속에 어쩐지 대학의 국문학과 학생들이 가는 문학 답사, 사학과 학생들이 가는 문화유적 답사의 현장 그림이 숨어 있는 듯하다. 사전에서는 답사를 ‘실제로 어떤 일이나 사건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곳에 가서 보고 조사함’이라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사전 답사’에서 ‘여행’을 붙여 ‘사전 답사 여행’이라고 해 본다. 앞서 말한 국문학과 사학과 학생이 된 듯한 느낌은 덜하다.
다시 생각해 본다. 가령, 함안군에서 함안군의 맛과 멋을 알리기 위해 ‘블로거 팸투어’를 했다고 치다. 블로그 운영자들이 몰려가서 함안군 관계의 안내에 따라 유명 관광지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 배부르게 잘 먹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보고 듣고 느끼고 먹은 것에 대하여 자기의 블로그에 올릴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놓고, 블로그 운영자들이 함안군을 ‘사전 답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전 답사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쩐지 좀 어색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같지는 않다. 뜻도 잘 모르는 팸투어, 패밀리어러제이션 투어라는 말보다야 백 번 낫지만, 뭔가가 께름칙하게 남아 있는 듯하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과거에 없던 재미있는 여행 방법이 생겼다. 내 돈 별로 들이지 않고 초청한 기관ㆍ단체에서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니며 열심히 사진 찍고 설명 듣고 사주는 맛난 밥 먹고… 그러고 나서 보고 느낀 것을 사진과 함께 적당하게 편집하여 인터넷에 올리거나 신문ㆍ잡지에 실어주면 되는 ‘이상한 여행’이다. 이상하지만 참 좋다. 일단 돈이 안 들고, 알아서 좋은 곳을 안내해 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겠나. 그런데 이런 여행을 뭐라고 하지? 알고 보니 이런 여행 방법은 외국에서 배워온 것이다. 그럼 외국에서는 뭐라고 하지? 패밀리어러제이션 투어라고 하더라. 너무 길지 않나? 아, 일본에서는 팸투어라고 하더라. 그래? 그럼 우리도 팸투어라고 하자. 이런 과정을 혼자 상상해 본다.
생각하는 김에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래, 복잡하게 패밀리어러제이션 투어라고 하자니 너무 긴데다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일본에서 쓰는 대로 팸투어라고 따라하자니 자존심이 상하는구만. 원래 있던 우리 말 가운데 적당한 말은 없나? 완전하게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전 답사’ 또는 ‘사전 답사 여행’이라고 하지 못할 까닭이 뭐 있나. 기자들이나 블로그 운영자들, 또는 여행 관련 업체 사람들이 여행 자체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여행이 아니라, 나중에 보고서이든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든 기사이든 무엇이든 공짜 여행에 대한 표시를 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사전 답사라고 하지 못할 까닭이 뭐 있나. 그래, 그럼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사전 답사 여행’이라고 하자. 좀 길게 느껴지면 ‘여행’을 버리고 그냥 ‘사전 답사’로 하자… 굳이 '사전' 답사라고 할 건 또 뭔가. '답사 여행'이라면 충분하겠네.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더 고민해 봐야겠다.
2016.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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