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엊저녁 취중에서였지만 큰형과 한 약속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길을 나섰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어 있었다. 아버지 산소는 지난 6월 큰형 혼자 잔디를 한번 깎은 덕분에 비교적 깔끔하고 깨끗했다. 큰형은 둘째아들과 왔다. 이 녀석은 군복무 중이던 지지난해 용케 이때쯤 휴가를 와서 힘깨나 쓰고 갔다. 지난해에도 역시 운 좋게 시기가 맞아 공군장병 덕을 톡톡히 보았었다.
나는 집 베란다에 있던 왜낫 하나, 호미 하나, 갈퀴 하나씩 챙겼다. 아버지 상석 모퉁이에 끼워 불을 붙여드릴 담배 한 갑, 라이터 하나도 챙겼다. 하지만 큰형의 짐은 아주 많다. 우선 일을 끝낸 뒤 절할 때 필요한 소주와 안줏거리, 술잔, 젓가락이 빠지지 않는다. 커다란 박스에는 우리가 먹을 맥주와 안주도 있고, 그러자니 당연히 얼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큰형의 자태가 위대해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 것은 예초기를 어깨에 매고 온다는 사실이다. 예초기에 딸린 부속품도 많다. 기름 반 말을 담아 왔고 새로운 날도 두 개 보인다. 이런 것들을 분해하고 조립할 때 쓸 장비도 있다. 본격적으로 예초기를 쓸 때 필요한 모자, 안경 따위도 빠지지 않는다. 큰형의 짐은 정말 많고 복잡하다.
그렇게 셋이 모여 아버지 산소 '벌초'를 한다. 올해 처음이 아니어서 조금 익숙한 풍경이다. 약골인 나는 베어놓은 풀을 갈퀴로 모아 버리거나 예초기의 날카로운 칼날이 접근하지 못하는 돌틈새 또는 나무들 사이의 잡풀을 낫으로 베는 게 고작이다. 예초기는 큰형과 조카가 번갈아가며 울러맨다. 갈퀴질 몇 번 하고도 헥헥거리는 나와는 달리 평소 운동, 등산, 자전거 타기로 단련되어 있는 큰형이나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카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부럽다.
어릴 적 아버지 따라 벌초하는 데 따라간 적이 있다. 내가 열 살 남짓이었을 터이니 대략 40년 전이다. 아버지 짐바리 자전거 뒷자리에 올라앉아 어딘지도 모르고 무엇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간 날이 벌초하는 날이었던가 보다. 어른들은 조선낫 두어 자루씩을 가지고 모여서는 하루 종일 풀을 베었다. 묘지 하나를 깔끔하게 깎아내고 나면 상석에 막걸리 한 잔 놓고 밤톨 서너 개 놓고는 절을 하였다. 그렇게 하루종일 풀베기 작업을 하였다.
이렇게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하고 산소를 돌보는 것을 성묘(省墓)라고 한다. 묘를 살핀다는 말이다. 주로 설날, 한식, 추석에 한다. 추석을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앞두고 잔디를 깎고 무덤의 잡풀을 베고 다듬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을 벌초(伐草)라고 한다. 오늘 큰형과 조카, 내가 함께 한 일은 벌초이면서 성묘라고 할 수 있다.
'벌초'할 때 쓰는 기계는 ‘예초기’(刈草器)라고 부른다. ‘예초’는 풀을 베다는 뜻이다. 이상하다. 벌초기라고 해도 될 텐데 다들 예초기라고 부르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말할 때는 "벌초하러 가자"고 하지 "예초하러 가자"고는 하지 않는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하나는 우리말이고 하나는 일본말에서 왔다고 한 것 같은데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풀을 베는 것은 다 같은데 행동을 가리킬 때는 ‘벌초’라고 하고, 그 일을 할 때 쓰는 기계는 ‘예초기’라고 하니 우스꽝스럽다.
‘예취기’, ‘제초기’라는 말도 쓰인다. 가령 풀을 벨 때 쓰는 기계를 사기 위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한다면 ‘벌초기’, ‘예초기’, ‘예취기’, ‘제취기’ 다 통용된다. 국립국어원은 예초기와 예취기를 이렇게 구분해 놓았다. ‘예초기와 예취기가 모두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어 모두 쓸 수 있다. 다만 예초기는 일반 명사로 일상 생활에 쓰이지만, 곡식이나 풀 따위를 베는 기계를 의미하는 예취기는 농업 분야의 전문 용어로 등재되어 있다.’ ‘예초기는 풀을 베는 데 쓰는 기계’이고 ‘예취기는 곡식이나 풀 따위를 베는 기계’라고 한다. 설명치고는 좀 무책임하다. 아무튼...
벌초기에서 ‘벌’은 오히려 ‘벌목’(伐木)이라는 말에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예초에서 ‘예’는 작은 풀을 베는 것을 가리키고 벌목에서 ‘벌’은 큰나무를 베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만약 그렇다면 벌초라는 말보다는 예초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추석명절 앞두고 날잡아 벌초하러 가서는 예초기로 풀을 베고 있으니 뭔가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한번 생각해 본다. 손톱을 깎는 행동은 ‘손톱깎기’이고 손톱을 깎는 연모는 ‘손톱깎이’이다. 먼지를 떠는 행동은 ‘먼지 떨기’이고 먼지를 떨 때 쓰는 연모는 ‘먼지떨이’이다. 담뱃재를 떠는 행동은 ‘재 떨기’이고 그 담뱃재를 모아 두는 그릇은 ‘재떨이’이다. 그렇다면 풀을 베는 행동은 ‘풀베기’이고 풀을 벨 때 쓰는 도구는 ‘풀베이’가 될까. 이럴 때는 풀을 베는 행동과 풀을 벨 때 쓰는 도구를 함께 ‘풀베기’라고 해도 될 듯하다. 이 비슷한 용례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숙제로 남겨둔다.
2016.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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