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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너무합니다

by 이우기, yiwoogi 2016. 7. 29.

가수 김수희의 노래 가운데 너무합니다라는 게 있다. 가사는 이렇다. “마지막 한 마디 그 말은/ 나를 사랑한다고/ 돌아올 당신은 아니지만/ 진실을 말해줘요/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 날 울리지 말아요/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호소력과 감성 충만한 김수희 목소리에 애절한 가사가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1983년에 나온 노래라고 하니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보다. 그 시절 산울림의 청춘등과 함께 많이 부르고 들은 노래이다. 김수희가 출연하는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만큼 인기있었다.


 

이 노래에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결정타는 마지막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라는 부분이다. “너무합니다라는 가사 속에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다.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라고 말하는 이의 흉리는 어떠할까. 실제 이별의 아픔을 겪은 연인들이라면 이 가사에 감정이 이입되어 흐느껴 울지도 모른다. 사랑이야기는 오래 전의 이야기라며 짐짓 모른 체하는 황혼의 어른들도 이 부분에서는 가슴이 찡해질지 모른다.

 

너무하다다른 사람에게 섭섭한 행동 따위를 정도에 지나치게 하다는 뜻이다. ‘(좋지 않은 일이나 행동이)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라는 뜻도 있다. 비슷한 풀이이다. 여기서 너무정해진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라는 뜻이다. ‘너무너무하다의 뜻풀이를 놓고 보면 이 말을 긍정적이거나 좋은 일에 쓸 수 없다. 그건 반칙이다. ‘너무는 아무리 좋게 봐도 어느 정도를 넘어선 것이니까.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이 말 자체에 한계를 넘어섰다는 뜻이 들어 있으니까.

 

다음은 바르게 쓴 보기이다. 너무 더우면 심장도 타격, ‘폭염, 급성심정지 위험 증가 너무 밝아 위험한 자전거 전조등 끝나지 않은 담합 과징금, 건설사들 "너무합니다" 하소연 "너무합니다~" 왜 우리팀에만 그런 판정을

 

그런데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반칙을 저질러 왔다. ‘너무 기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 너무 맛있다, 너무 사랑한다처럼 써왔다. 아무리 기뻐도 너무 기쁜 건 오히려 기쁘지 아니함만 못한 것이고, 아무리 예뻐도 너무 예쁘면 차라리 예쁘지 아니함만 못한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너무가 아무렇지 않게 너무많이 쓰였다. 남의 글을 고치는 사람들은 너무를 문맥에 맞게 정말, 매우, 아주, , 굉장히, 무척, 엄청나게, 대단히, 많이등으로 고치느라 너무 고생했다. 이 말들은 보통을 (조금 또는 많이) 넘어선 정도라는 뜻으로 정해진 정도나 한계를 넘어선 건 아니다.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내용에 쓸 수 있다.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이 너무라는 말을 쓰면 자막에서는 정말로 나오는 모습도 너무 많이 봤다.

 

다음은 잘못 쓴 보기이다. '더블유(W)' 한효주, 누리꾼들 "연기 너무 잘해서 더 좋음"부터 "인생드라마" '원티드' 이재균 "좋은 작품 출연 너무 감사" 종영 소감 이범수 "'슈퍼맨' 출연? 소을·다을이 너무 좋아해미리 가자고 보채기도" '끝사랑' 지진희 "딸 이수민, 너무 예쁜데 눈을 못 마주치겠다" (여기에 보기로 든 것은 국립국어원이 너무를 긍정적인 뜻으로도 쓸 수 있도록 허용한 뒤에 나온 것임)

 

그러던 중 국립국어원은 2015615너무의 뜻을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에서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 변경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게 그것 같지만, 앞 풀이에서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것이고, 바뀐 풀이에서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젠 너무를 굳이 부정의 뜻으로만 봐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앞서 말한 너무 기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 너무 맛있다, 너무 사랑한다처럼 써도 된다는 말이다. 우리 국민들의 말글살이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을 국립국어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립국어원을 국어연구소라고 불러주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말로, 중용(中庸)의 중요성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너무이다. ‘알맞게, 적당하게, 적절하게, 흡족하게가 아니다. 과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했는데, ‘를 어떻게 긍정적인 표현에 쓸 수 있겠는가. 저수지에 물이 지나치게(너무) 많이 모이면 넘치게 되고 못둑은 무너지고 만다. 길고양이 개체수가 지나치게(너무) 많으니 각종 부작용이 생긴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너무한) 사랑도 가끔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된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 말에 대해서만큼은 국립국어원이 너무한 판단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대로 긍정적인 서술이거나 중립적인 서술에서는 정말, 매우, 아주, , 굉장히, 무척, 엄청나게, 대단히따위를 쓰면 된다. 그러잖아도 개념없이 제멋대로 잘못 쓰이던 너무에 해방의 꼬리표를 달아줬으니 이제 아주 날개 단 듯 더 많이 쓰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우, 아주, , 무척같은 부사들은 점점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건 재앙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016.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