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음식점을 가리켜 ‘맛집’이라고 한다. 이 말은 국립국어원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맛집은 화려한 장식과 커다란 간판으로 손님을 유혹하지 않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제발로 찾아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가 된다. 맛집은 큰길 가에 있기도 하지만 후미진 골목 안에 숨어 있기도 한다. 어떤 맛집은 시장통 안에 꼭꼭 숨어 있어서 한번 가본 사람도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2대, 3대로 이어가는 맛집도 알고 보면 주변에 많다. 아무튼 맛집이라는 소문을 들으면 꼭 가보고 싶어지고 먹어보고 싶어진다. 인지상정이다.
맛이 뛰어나면서 값도 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대개 점심으로 5000원이면 싼 편이고 8000원이면 좀 비싼 편이다. 1만 원 넘어가는 점심이라면 오랫동안 망설일 것이다. 그래도 맛집이라면 한번은 꼭 먹고 싶어진다. 이런 맛집에서 음식을 그만 먹고 싶을 때까지 얼마든지 자꾸 더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뷔페에서처럼 맛있는 음식을 무한정 계속 먹을 수 있다면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하긴 5000원도 하지 않는데, 무한정 자꾸 주는 곳도 더러 있긴 하지.
요즘은 맛도 있으면서 음식을 무한정으로 계속 더 주는 음식점이 많이 늘었다. 이른바 ‘무한리필’이라고 한다. 가령 삼겹살 1인분에 8000원이라도 하자. 3명이 3인분을 먹고 나서 더 먹고 싶으면 배부를 때까지 계속 더 먹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2만 4000원 내놓고 10만 원어치를 먹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간혹 텔레비전에서, 정말 무한리필인지 시험한다면서 씨름선수 너덧을 투입하여 양껏 먹게 했더니 30인분 이상을 우습게 비우는 모습도 나오긴 했다. 나처럼 먹는 양이 적은 사람이야 거기서 거기이겠지만 덩치가 큰 사람들은 무한리필은 그야말로 ‘천국’의 다른 이름 아니겠는가. 삼겹살, 소고기, 장어고기, 월남쌈, 스테이크, 소곱창, 육회, 연어 등 무한리필 앞뒤에 붙는 음식들은 제각각 맛과 영양을 자랑하는데다 가격도 만만찮은 게 대부분이다. 그것을 무한리필해 준다니…. 그래서 “무한리필은 무조건 옳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리필(refill)이란, 비어 있는 그릇에 내용물을 다시 채우는 것 또는 그러한 서비스를 가리킨다. 리필이 하도 널리 쓰이니까 ‘리필하다’는 동사가 생겨났다. ‘리필용’처럼 영어와 한자가 붙은 새로운 말도 나왔다. ‘다시 채워쓰다’ 또는 ‘그러한 물건’이라고 한다. ‘리필제품’이라는 말도 있다. ‘어떤 제품에서, 용기는 그대로 두고 내용물만 바꾸어서 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말도 덩달아 생겨났다. ‘리필족’이란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면 서비스로 한 개씩 주는 빵을 5~6개 달라고 하고, 둘이 가도 요리와 음료는 하나로 하며, 음료도 그 하나로 계속 리필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맛집에서만 무한리필이 유행하는 건 아니다. 가령 컴퓨터 프린트 잉크의 경우 한번 새것을 사 썼는데 잉크를 계속 넣어주는 것을 무한리필이라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무한리필 식당들이 외식시장을 교란시킨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리 있는 말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고 맛있는 것을 무한정 더 준다는데 마다할 까닭이 없겠다.
‘리필’은 영어이다. 외국어이다. 외래어로서도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외래어란 외국어가 한국어 속에 들어와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을 가리킨다. 리필은 비록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널리 두루 쓰이기는 하지만 아직 외래어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 말에다 ‘-하다’를 붙여 새로운 용어를 파생시키고, 한자말을 덧붙여 또다른 단어를 자꾸 만들어내는 건 괜찮은 일인가. 괜찮다, 괜찮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새로운 말이 자꾸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말을 대신할 우리말은 없을까. 리필 대신 ‘다시 채움’, ‘보충’이라는 말을 써본다. “얘, 그 고깃집은 삼겹살이 무한리필이래! 우리 거기 갈까?”→“얘, 그 고깃집은 삼겹살을 무한정 다시 채워준대! 우리 거기 갈까?”, “얘, 그 고깃집은 삼겹살을 무한정 보충해 준대! 우리 거기 갈까?” 아니면 “삼겹살을 무한정 더 준대!”라고 해도 되겠지. 어떤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기 무한리필’이라고 식당 안에 붙여 놓은 것도 ‘고기는 무한정 더 드립니다’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고기는 마음껏 더 드세요’라고 해도 좋겠고. ‘수유역 무한리필 소곱창’이라는 신문 제목은 ‘수유역 무한보충 소곱창’으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건대 삼겸살 무한리필 맛집’이라는 제목은 ‘건대 삼겹살 끝없이 다시 채워주는 맛집’이라고 하면 어떤가. 나는 그런대로 쓸 만하다고 본다. 길이가 길어지거나 명사형으로 똑 부러지지 않아 말맛이 덜할 수는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쓰다 보면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6. 7. 26.
(사진은 인터넷 여기저기서 모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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