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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득템’ 이겨라, ‘횡재’ 이겨라!

by 이우기, yiwoogi 2016. 7. 19.

몇 해 전 허영만의 만화 <식객> 27권 한 질을 샀다. 사고 싶었는데 값이 만만찮아 한참 동안 망설였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중고서점을 뒤졌다. 헌책의 상태는 최상이라고 되어 있어서 누군가 한번쯤 읽은 책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책값이 10만 원이었다. 새 책 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앞뒤 재지 않고 주문했다. 며칠 뒤 책이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책이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페이스북에 득템했다고 썼다.

 

득템은 얻을 득()자와 영어의 아이템를 합성한 말로, 아이템을 얻었다는 뜻이다. 영어 아이템(item)의 원래 뜻은 물품, 품목, 사항, 재료이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갑옷이나 무기 따위의 도구나 장식용 의류, 액세서리 따위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이 아이템을 얻었을 때 쓰는 말이 득템이다. 주로 10, 20대 젊은층에서 널리 쓴 듯하다. 그러다가 게임뿐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어떤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주로 갖고 싶었던 것,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 새로운 상품 등을 남들보다 싼값으로 또는 쉬운 방법으로 얻었을 때 득템했다고 쓴다. 내가 <식객> 새 책 27권을 10만 원에 산 건 득템에 해당한다.

 

누군가 국립국어원에 득템이 은어(隱語)인가, 유행어인가 물었더니 국립국어원은 유행어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유행어란 비교적 짧은 시기에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나 구절신어의 일종으로 해학성풍자성을 띠며 신기한 느낌이나 경박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유행어는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게 대부분이다. 인기 연예인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나 연속극 대사 같은 게 유행어로 분류되곤 하는데, 그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진다. 하지만 득템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득템이 일반적인 단어 형성법(합성원리)에 맞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은 합성어라면 어근끼리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말인데, ‘득템의 경우, ‘은 명사 ()’으로 본다면 어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은 어근이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문법, 어법에 맞지 않는 조어(造語)이다. 사전에 정식으로 올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때 유행하고 말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다른 유행어보다는 훨씬 오래갈 것 같다.

 

대개 50살 넘은 사람들은 횡재’(橫財)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횡재는 뜻밖에 재물을 얻는다는 뜻이다. 득템과 뜻이 완전하게 일치하는 말은 아니지만, 바꿔 써도 괜찮은 말이다. 가령 이런 기사를 보자. “여자골프 최이진, 홀인원 한방에 2억여 원 '횡재'”(연합뉴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최이진 선수가 홀인원으로 2억 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를 부상으로 받았다는 이야기다. 이 기사의 제목을 다른 언론에서는 이렇게 썼다. “최이진, 홀인원에 2억여 원 BMW 자동차 '득템'”(스포츠투데이) 이렇게 놓고 보면 횡재=득템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좀 다른 경우도 있다. “두산중공업 160억 횡재?13년 법정투쟁 결정체”(에너지경제) 이런 기사에서는 횡재득템으로 고쳐 쓰기가 좀 곤란해 보인다. 반대로 핸드백리빙용품 득템하세요’”(영남일보)와 같은 기사에서는 득템횡재로 고쳐 쓰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득템이라는 말이 앞서 말했듯이 주로 갖고 싶었던 것,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 새로운 상품 등을 남들보다 싼값으로 또는 쉬운 방법으로 얻었을 때쓰는 말이라면 이는 곧 횡재 아닌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소중한 어떤 물건을 갖게 되었을 때, 열심히 노력해도 가지기 힘들었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 우리는 횡재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득템=횡재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을까. 다만, 온라인 게임에서 갑옷이나 무기 따위의 도구나 장식용 의류, 액세서리 따위를 얻는 것을 가리킬 때는 횡재라고 하면 완전히 이상한 말이 되어버린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밖의 횡재를 하는 일이 간혹 생긴다. 흔히 이런 경우를 가리켜 재수 있다고도 한다. 횡재를 할 운수를 횡재수라고 한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심심풀이 운세 같은 데를 보면 횡재수가 보인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날 횡재할 운수가 있다는 말이니, 듣고 보면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손금에도 횡재수 손금이라는 게 있나 보다. 요즘은 손바닥에 영어 알파벳 ‘M’자 모양의 손금이 있으면 횡재수 손금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득템이라는 말이 횡재라는 말과 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엔, 횡재가 밀리고 있는 것 같다. 나이로 따져서 50살 넘어가면 횡재라는 말을 쓸 듯하고, 그 밑으로는 득템이라는 말을 쓸 듯한데 실제로는 50살 넘은 어른들도 득템이라는 말을 곧잘 쓰고 있다. 횡재라고 말해야 할 때 득템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득템의 물결이 더 세지고 넓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다시 <식객>과 같은 좋은 책을 싼값에 산다면 나는 횡재했다라고 쓸 것이다.

 

2016.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