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른들이 내어주던 수수께끼 가운데 이런 게 있다. “무섭고 더럽고 불쌍한 건 무엇인가?” 무서우면서 더러운 건 억지로 생각해 내면 알 수 있을 듯한데, 불쌍한 것이라니. 더럽고 불쌍한 것도 찾으려면 찾겠는데 거기에다 무섭기까지 하다면 그게 무엇일까. 무서움, 더러움, 불쌍함은 도무지 한데 어울릴 수 없는 느낌들이다. 이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
웃긴데 슬픈 경우는 있을까. 누군가 길을 가다가 똥을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팔을 부러뜨렸다고 치자. 길을 가다가 똥을 밟고 넘어지면 그건 좀 웃기는 상황이다. 그런데 팔이 부러졌으니 슬픈 일이다. 그 누군가가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슬픈 생각은 조금밖에 들지 않겠지만, 만약 그 누군가가 친한 친구라면 좀 많이 슬플 것이다. 친구의 슬픔은 곧 내 슬픔이기도 하니까. 이런 상황을 놓고 웃긴데 슬프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는 웃긴데 슬픈 상황이 뜻밖에 많다.
‘웃프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 주변에 웃기면서 슬픈 기묘한 상황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대략 2012년 전후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웃긴다는 것은 어떤 상황을 보자마자 생기는 1차 느낌일 것이다. 코미디 방송이나 영화를 보면 심층적인 것까지 분석하기 전에 웃음부터 먼저 빵빵 터진다. 당연하다. 그런데 그 이면에 깔린 메시지가 슬프게 만들 수도 있다. 슬프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에 생겨날 것이다. 2차 느낌이다. 그런데 1차 느낌과 2차 느낌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을 한마디로 말해버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것이고, 그래서 ‘웃프다’라는 말을 쓰나 보다.
영화 <국제시장>은 나에게 웃픈 영화였다. 화면에는 억지스러운 장면과 대사가 줄을 이었다. 정주영, 이만기, 앙드레 김 같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주역들이 느닷없이 등장할 땐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깔깔 웃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한국전쟁에서 용케 살아남았고, 이어 독일 파견, 베트남 파병 등을 겪으며 굴곡진 삶을 살아낸 우리네 아버지의 신산했던 삶을 읽어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영화 보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 하느라 혼이 쏙 빠졌다. 웃픈 영화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 보니, ‘그건 비극 영화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을 조국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헌신한 아버지세대에 주어진 우리들의 보답은 너무나 터무니없다. 그것마저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아버지세대를 생각하면, 그저 눈물밖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웃픈 우리나라 현실이다.
어릴 때 어른들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며 놀리곤 했다. 아이들을 놀려서 울게 해 놓고는 잠시 뒤 맛있는 과자를 사주거나 재미있는 말로 웃긴다. 그러니 울다가 웃을 수밖에. 아이들을 그렇게 놀려놓고는 “엉덩이에 털 난다”며 재미있어 하곤 했다.
‘웃프다’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르지 못한 말이다. 하지만 나날살이에서 널리 쓰일 만한 말이다. 학자들이 책상에 앉아 화학약품 섞듯이 이것 저것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언중(言衆)들이 평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니 생명력이 끈질길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우스운데 슬픈 이야기가 아주 많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현실을 풍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노라면, 처음에는 깔깔대며 웃게 되지만 잠시 후 씁쓰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개그큰서트에서 한창 인기를 끌던 ‘렛잇비’라거나 ‘민상토론’, 또는 요즘 ‘1대1’에 나오는 출연자들의 우스개는 웃기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어둡고 슬픈 면을 풍자하고 있으니까. 웃다가 울면 엉덩이에 털 난다던데….
어느 지역 경찰청 엘리베이터 안에 누군가 똥을 누고 갔다. 경찰청 엘리베이터 안에! 범인을 찾기 위하여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뒤졌다. 그랬더니 평소 장이 약한 한 간부가 엘리베이터에서 실례한 것이 확인되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이야기다. 그 간부의 배 아픈 사연은, 충분히 슬프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경찰청 같은 부서 소속 유부남 간부와 미혼인 행정직 여직원이 늦은 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애정행각을 하는 장면도 포착된 것이다. 웃기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는 쌨다.
한 국회의원이 퇴근 후에 문자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업무를 지시할 수 없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이 그것이다. 이에 대하여 많은 노동자들은 “당연한 일을 법으로까지 만들어야 하는 게 웃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웃프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가수 이승환이 새 음반을 980장 한정 수량으로 냈다. 값은 1만 1000원이었다. 그런데 어느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이 음반이 2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이를 본 이승환은 “사지 마세오, 이런 데서. 제가 (음반을) 더 찍을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승환 팬들은 “누군가 웃돈 받고 팔게 하려고 만든 게 아닌데…. 웃프다”라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웃긴 일은 그저 웃기기만 하고, 슬픈 일은 그저 슬프기만 하면 좋겠다. 웃다가 슬퍼지는 현실은 마뜩잖다. 한 가지 감정에 충실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웃다가 우는 일은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대로 울다가 웃기는 일은 어떨까. 그건 웃프다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할까.
201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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