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 기사 제목에 ‘혼밥’이라는 말이 큼지막하게 나와 있었다. 지난해 <경상대신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혼이 담긴 밥’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짓기에 혼이 담긴 밥이라고 했을까. 그 밥을 먹으면 만병이 다 낫겠다 싶었다. 그 밥을 짓는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낭만적인 상상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여지없이 박살났다. 혼밥은 ‘혼자 먹는 밥’이라고 한다.
요즘 대학생이나 직장인들 중 혼자 밥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실 혼자 밥을 먹을 경우는 많다. 집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다. 대학생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는 간혹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에는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다. 가보면 나처럼 혼자 밥 먹는 동료가 보인다.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는다. 처음부터 약속하여 같이 밥 먹으러 간 사이 같다. 혼자 먹고 있는데 동료가 와서 앉기도 한다.
혼자 밥을 먹으면 좋은 점은,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무엇을 먹을지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근처 국숫집이나 돼지국밥집에도 혼자 곧잘 간다. 아무렇지 않다. 일을 하다 보면 끼니 때를 놓치기도 하고 다른 볼일을 본 뒤끝이어서 누구와 약속을 정하기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러면 두말없이 아무데나 가서 혼자 밥을 먹는다.
그런데 간혹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왜 그런가.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고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할 까닭은 없다고 본다. 뭐 어때? 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여럿이 밥을 먹으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시간이 아까워 혼자 밥을 먹는다. 이건 문제다.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겠다거나 일을 더 하겠다고 하는 건 좀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럿이 밥을 먹으려면 평소에 대인관계가 좋아야 하고 늘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관계에 약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어려워하는 것, 이건 어쩌면 ‘병’일 수 있다. 여럿이 모이면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게 조금 귀찮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과정을 즐기는데 반대로 그런 과정을 딱 질색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미련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 이것도 문제다.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혼자 밥 먹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 까닭을 까뒤집어 놓고 보면, 이런저런 문제가 보인다.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드러난다.
경상대신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가천대 식품영양학과 이영미 교수 외 3인은 대학생 1000명의 식행동을 분석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혼자 식사에 대한 남녀대학생의 인식 및 식행동 비교’ 논문을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혼자 밥을 먹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남들과 밥을 함께 먹기 위해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또 혼자 밥을 먹을 경우 식사를 대충하게 되고 인스턴트식품을 주로 먹게 된다는 답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944호)
시간을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슬픔, 아픔, 고통, 고독 같은 걸 느낀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할까. 자녀가 귀한 집에 외동으로 태어나 온갖 보살핌 속에 자라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동료를 경쟁자로 의식하여 밥을 먹으며 편안하게 나누는 대화마저 거북해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시간을 조정하기 어려울 만큼 정말 정신없이 바쁜 직장인도 떠오른다. 이런 것을 떠올리는 것, 그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실제 직장인들의 경우 혼밥의 이유에 대하여, 자리를 비우면 눈치 보여서, 일이 많아 자리를 아예 비울 수 없어서, 돈을 절약하려고, 남는 점심 시간을 활용하려고, 동료들과 식사 자리가 불편해서, 메뉴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맨 마지막 이유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모두 반갑지 않은 이유들이다.
깜짝 놀랄 이야기도 듣는다.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워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혼자 먹는 게 뭐 어때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밥 먹는 것은 이런 이유 저런 까닭으로 싫고, 그렇다고 혼자 밥 먹는 것을 보이는 것도 싫으니 차라리 화장실에서 대충 때운다? 실제 이런 일이 있을까마는 참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렇게 혼자 밥 먹기를 즐기는 사람, 또는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된 사람들을 가리켜 ‘혼밥족’이라고 한다. 널따란 식당에서 각자 밥상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자기 밥상과 옆에 놓인 스마트폰에만 눈을 꽂은 채 밥을 먹는 사람들이 혼밥족이다. 혼밥족은 점점 늘어나는가 보다. 술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어울려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을 마시기보다 혼자 조용히 고독을 씹으며 술을 마시는 사람을 ‘혼술’이라고 한다. 이런 말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 주변에 혼밥족과 혼술족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혼여’, 혼자 영화 보기를 즐기는 사람을 ‘혼영’이라고 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혼밥’은 슬픈 유행어이다. ‘혼술’도 마찬가지로 슬픈 신조어이다.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며 즐겁고 맛있게 먹어야 할 밥을, 어쩔 수 없이 또는 스스로 즐기면서 혼자 먹는다는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도 슬프고, 스스로 즐긴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바람직한 건 아닌 듯하다. 혼밥은 우리 시대의 슬픈 낱말로 남을 듯하다.
사족. ‘혼자’를 ‘솔로’라고 하고, ‘밥’을 ‘푸드’라고 하여 혼자 먹는 밥을 ‘솔로 푸드’라고 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자 홀로 독(獨), 먹을 식(食)을 갖고 와서 ‘독식’이라고 하지 않은 것도 아주 다행이다.
2016.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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