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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만능접두사 ‘개’의 탄생, 이 말의 운명은?

by 이우기, yiwoogi 2016. 7. 11.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했다. 아랫집, 옆집, 윗집에서 서라운드 입체 음향으로 짖어대는 멍멍개 말고. 요즘 학생들이 쓰는 말 가운데 접두사로 쓰는 가 자꾸 귀에 거슬렸다. 먼저 방송인 정재환 님이 자신의 블로그 한글나라’(http://blog.daum.net/jhistory)에 정리해 둔 것을 가져와 본다.

 

접두사 -’의 용법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보기)개꿀, 개떡, 개살구, 개철쭉.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보기)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보기)개망나니, 개잡놈.

 

이때 명사’(이름씨) 앞에 붙어서 접두사 노릇을 한다. 국립국어원은 에 대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망나니, 개잡놈처럼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결합한다고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정도는 대개 아는 사실이다. 문법적으로는 가 명사 앞에 붙는 접두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고민이 깊었나. 위의 세 가지 용법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한 가 지천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 주로 내가 만나는 대학생들은 개대박, 개좋아, 개짱, 개맛있어, 개이뻐라는 말을 쓰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조사했더니 개구리다, 개멍청하다, 개싫다처럼 부정적인 데서는 물론이고 개부럽다, 개여신, 개재미있다처럼 긍정적인 표현에까지도 가리지 않고 쓴다고 한다. 개간지, 개매너, 개안습, 개폐인도 있다. 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등 가리지 않고 가 들러붙는다. 만능이다. 기존 문법이 파괴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이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터넷 신조어로서 매우, 정말로라는 뜻으로 쓰이는 접두사 개-와 이득이 함께 쓰인 파생어이다. 이를 줄여서 ㄱㅇㄷ이라고도 사용된다고 해놓았다. ‘를 넘어서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가 나온 것이다. ‘캐감동이란 말이 보인다. ‘캐고생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창의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부 언론은 젊은이들의 말이 점점 험악해져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나는 문법이 이렇게 쉽게 파괴되는 것을 걱정하는 편이지만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결과로 새로운 문법이 정리된다고 믿는다. 그건 나쁘거나 나쁘지 않거나 하는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다. 말이 가진 속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는 이러한 일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혼자 비분강개한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아주 많이 너그러워졌다. 아무튼 이런 가 자꾸 귀에 거슬린다. “이건 분명히 문제다라고 일러주고 싶은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 캐를 이렇게 쓰는 이들은 저희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 받으며 즐겁게 노는가 보다. 카카오톡에서, 문자메시지에서, 페이스북에서, 블로그에서, 인스타그램에서 새로운 말을 창조해놓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말을 거의 쓰지 않는 세대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놓고 보란 듯이, 아니면 비밀리에 즐겁게 말장난을 하고 노는가 보다. 남들이 라고 말할 때 를 붙인 말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는가 보다. 참 자알들 논다.

 

다음 아고라에서 어떤 이는 이런 세태를 짧게 언급해 놓고는 이렇게 썼다. “몇 십 년 후엔 국어학자들이 신종접두사 를 국어사전에 등재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십 년이나 기다릴 게 있을까. 이런 문제에 대하여 조선일보는 또 이같은 거칠어진 언어 표현은 청소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많다. 차명호 평택대 피어선심리상담원장은 접두사 -’의 지나치게 빈번한 사용은 사회에 대한 불만부정 심리의 표출인 동시에 나는 이 정도는 우습게 본다는 힘의 과시와 정서 파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기존 문법을 파괴한 의 용법이 그대로 굳어질 것인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이 말을 쓰는 사람의 나이가 대개 10~20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표준어 대접을 받아 사전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한때 유행하던 신조어 접두사인 , , , 따위가 요즘은 에 밀려 자취를 감춰가듯이, 도 다른 그 무엇이 나타나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래도 기분은 얄궂다. 지나가는 학생들이 개이득이다!”라거나 걔는 개이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참 묘해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학생 때 부모들이 쓰지 않는 우리들만의 은어나 비속어를 쓰지 않았던가 생각해 본다. 부모들은 우리가 쓰는 은어, 비속어를 들으며 요즘 젊은 것들 쓰는 말 보면 참 한심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돌이켜 본다. 은어, 비속어를 쓴다고 하여 장차 나쁜 사람이 될 것도 아니고, 고상한 표준어로만 생활한다고 하여 장차 바른생활 사람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음을 우리는 안다. 말의 운명도 얄궂기는 마찬가지다. 기껏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전달되면서 쓰임을 인정받았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마는 말이 부지기수이니. 결론은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2016.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