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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사람에게 ‘가성비’라는 말을 써도 되나

by 이우기, yiwoogi 2016. 7. 11.

6200원을 주고 소맥탕탕을 샀다. 옥션에서 샀는데 배달료 2500원이 더 들어갔다. 8700원인 셈이다. 3개를 한꺼번에 샀으니 굳이 따진다면 6900원 짜리다. 생긴 게 단순하고 사용법은 더 간단하다. 소맥탕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실 때 거품 내는 도구이다. 소주를 섞지 않아도 그냥 맥주에 거품을 내는 데도 요긴하다. 거품 맛이 아주 그만이다. 건전지는 쓰지 않는다. 병따개 기능도 있다. 자석이 있어서 냉장고에 붙여놓기에도 좋다. 나무젓가락이든 쇠젓가락이든 끼워넣기만 하면 끝이다. 누구든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여러 모로 쓸모 있는 연모이다. 쓰임새를 생각하면 오히려 가격이 싼 편이다. 이런 때 가성비가 좋다고들 말한다. 가격에 비하여 성능이 우수하다, 탁월하다는 뜻이다.


 

가성비. 나에게는 낯선 말이다.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니 ‘cost performance ratio’라고 해 놓고 ‘[경제] 비용 대() 성능비()’라고 풀어놓았다. 경제용어라는 뜻이다. 외국에서도 쓰는 말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쓰는 모양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이 경제전문용어, 컴퓨터전문용어, 화학전문용어 따위들을 일일이 다 수록하지는 않을 터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찾아보니 가성비 갑! 보쌈도 11만원 미만으로 즐기세요라는 게 보인다. ‘30대 에코 세대, 가성비 좋은 아파트 관심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다. ‘치킨 '가성비'은 어디?...값은 비슷한데 중량 2배 차이’, ‘"양도 많고 맛도 좋고"커피도 '가성비'’, ‘부산*경남 소비자, '가성비' 선호 뚜렷처럼 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아는 사람은 그 뜻에 맞게 이미 널리 쓰는 말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일까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말이다.

 

아무튼 가성비라는 말은 나에게는 신조어이다. 잘 만들어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말을 쓸 때 조금은 조심해야 할 듯하다. 앞서 말한 소맥탕탕, 아파트처럼 어떤 사물을 놓고 가성비라는 말을 쓰는 건 괜찮겠지만, 사람에 대해서 쓰는 건 좀 곤란하겠다 싶다. 가령, ‘노히트 노런 보우덴, 가성비 뛰어난 선수? 연봉 살펴보니라거나 결승타 1위 이대호선발 출전 드문데 '가성비는 최고'’라는 말은 문제다. 이 기사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우덴이나 이대호 선수가 연봉은 적은데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가성비라는 말을 사람에게 쓸 수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이다. 축구 선수가 골인 넣고 야구 선수가 홈런 치는 것을 성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골인 넣고 홈런 치는 것을 실력이라고 하는 게 맞다면 그 실력과 성능은 동일한 것일까. ‘능력이라고 해도 될 듯한데, 그것을 성능이라고 바꿔 말해도 될까. ‘워싱턴 포스트 한국 MLB 선수들, ‘가성비에서 최고”’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면 한국 선수들이 대체로 연봉은 적은데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알겠는데, ‘가성비라고 하는 게 맞을까. 괜찮을까. 의문은 자꾸 생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이다. 가격은 다 아는 말이다. ‘성능은 무엇인가. 성능은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이다. 소맥탕탕도, 아파트도, 커피도 모두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도 물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여기에서 가성비라는 말을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이유를 깨닫는다.

 

가성비라는 말은, 돈은 적게 들이고 효과를 크게 거두려는 일반 사람의 심리 속에서 아주 널리 쓰이고 있다.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 가성비를 따지는 태도일 것이다. 가성비라는 말을 대체할 말을 나는 찾지 못하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쓰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 말을 너무 무분별하게 쓰는 바람에 사람에게조차 가성비를 들이대는 것은 삼가야겠다. 사람을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2016.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