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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아재개그’와 ‘부장님개그’

by 이우기, yiwoogi 2016. 6. 17.

국어사전에서는, ‘아재아저씨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사전의 정의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한다. 나에게 아재는 아저씨보다 훨씬 다정하고 가까운 말이다. 어릴적 시골에서 살 때 무슨 까닭이었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자주 싸웠다. 싸웠다기보다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고성이 터지는 것은 기본이고 마루에서 마당까지 밥상이 날아가고 주먹다짐까지 나올라치면 우리는 옆집 아재에게 달려갔다. 아재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좀 어렸고 우리 집과 친하게 지냈을 뿐 친척은 아니었다.

 

아재, 우리 아부지 좀 말려 주이소!, 우리 옴마 좀 살려 주이소!” 울먹이는 우리 표정을 본 아재는 눈 깜짝할 새 신발을 신고 우리 집으로 내달렸다. 아재가 드러누워 있던 방 구석에서는 커다란 전축이 눈물 젖은 두만강을 내뿜고 있었다. 그 전축이 없었으면 우리 집 고함소리를 듣고 일찌감치 달려왔을 터였다. 아재는 무슨 수를 쓰는지 아버지 화를 가라앉히고는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형님, 또 와이라십니꺼?” 이 말은 그즈음 우리가 자주 듣던 말이다. ‘’.

 

13살에 진주로 이사오니 집주인 아저씨가 있었다. 아랫방에 세 들어 살던 우리에게 집주인 아저씨는 감히 마주 바라보기 어려운 존재였다. 주인 아저씨는 자영업을 하는 젊은 분이었는데, 당시 주인집 아이가 서너 살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저씨는 무섭게 생기지도 않았고 고함을 지르며 부부싸움을 하지도 않았으며 우리에게도 고운 말씨로 다정스레 말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아재라고 부를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아재와 아저씨 사이의 간극을 그때 이미 알아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더 철이 들면서 우리는 아재와 아저씨를 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재는 5촌 또는 7촌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저씨는 친척 아닌, 이웃에 사는 남자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재는 가깝고 다정하고 부담없고 격의없는 분을 가리키는 말이고, 아저씨는 딱딱하고 멀고 형식적이고 조심스런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재는 대체로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였지만 아저씨는 나이는 크게 상관없었다.


 

아재개그가 유행이다. 가령,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이라고 물었을 때 딸기시럽(실업)’이라고 대답하는 말장난을 가리킨다. ‘고등학생이 싫어하는 나무는?’이라는 질문에는 야자나무라고 답한다. ‘오리를 생으로 먹으면?’ ‘회오리이런 식이다.

 

아재개그의 특징은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지만, 잠시 뒤에 웃음이 터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왜 웃기는 말인지 모르다가 집에 가서 잠잘 때 갑자기 생각나서 빵 터진다고도 한다. 아재개그를 처음 듣는 자리에서는 서로들 얼굴만 빤히 바라보는 상황이 연출되는데, 분위기가 썰렁해진다고 하여 썰렁개그라고도 하는가 보다.

 

이런 우스개를 아재개그라고 하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아재 구분법이 한때 유행했는데, 말하자면 유행에 둔감하고 젊은이들의 은어(隱語)를 해독하지 못하며 분위기 파악이 더딘 사람을 얼렁뚱땅 묶어서 아재라고들 했다. 그런 아재가 주위 사람을 웃겨보려고 툭 던진 농담이나 우스개란 아무래도 재미없었을 것이고 그런 것을 유추하여 아재개그라는 말을 지어냈을 것이다. 그래도 아재개그라는 말에는 어쩐지 친근함, 다정함, 부드러움, 가까움 같은 게 느껴진다. 아재니까.

 

이 아재개그를 부장님개그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부장님이나 아재나 연령대로 치자면 어슷비슷할 테지만 아재와 부장님이 던져주는 느낌은 천지차이다. 부장님은 직장 상사이다. 여차하면 나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고 연봉을 높이거나 낮추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할 수도 있는 분이다. 따라서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하기 어렵고, 어지간하면 비위를 맞춰 주어야 하는 존재이다. 두렵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때로는 무섭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아재와 정반대의 이미지로 각인될 수도 있다. ‘과장님개그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대체로 부장이 과장보다는 높은가 보다. 부장이 없고 과장만 있는 회사도 있고 그 반대인 회사도 많다. ‘팀장님개그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팀장은 더 젊은가 보다.

 

부장님이 툭 던진 우스개는 전혀 웃기지도 않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짐짓 크게 웃어보여 주어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웃기지 않는데도 웃어주어야 하는 게 부장님개그이다. 부장님이 내놓은 우스개도 아재가 내놓을 그것과 다르지 않다. 가령 부장님이 부산 앞바다의 반대말은?’이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고 치자. 그럼 부장님이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부산 엄마다라는 정답을 일러주겠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으려는 찰나 누군가 그냥 크게 웃어준다. 깔깔깔, 하하하 하고. 만일 그가 아재였다면 말똥말똥 눈만 뜨고 있어도 되었겠지만.


 

아재우스개, 썰렁우스개, 부장님우스개라고 하지 않고 죄다 개그라고 붙인 건 좀 아쉽다. 말장난, 언어유희 이런 말을 붙였을 법도 하건만. 하지만 아재개그라는 말이 아재우스개라는 말보다 더 입에 감긴다. 아재개그, 썰렁개그, 부장님개그가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아재개그라는 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아재는 늘 아버지보다는 덜 무섭고 큰형님보다는 더 든든한 존재였으니까. 비록 한 세대만큼 나이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할아버지보다는 훨씬 가깝고 사촌이나 육촌보다는 훨씬 더 어른이었으니까. 뜬금없지만, 우리 시대 모든 아재들에게 손뼉을 쳐 드리고 싶다.

 

2016.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