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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먹방’과 ‘쿡방’

by 이우기, yiwoogi 2016. 6. 10.

먹방이 유행이다. 처음 먹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원래 신조어, 유행어는 처음엔 잘 모르니까. 그러다가 그 말의 뜻을 알고 유래를 알고 나서는 재미를 붙여 더 자주 쓰게 된다. 나중에는 표준어로 대접받는 말도 생겨난다. 말의 인생이다. ‘먹방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먹물을 뿌린 듯 캄캄한 방이라는 뜻으로, ‘불을 켜지 않아 몹시 어두운 방을 가리킨다고 한다.

 


지금 말하는 먹방은 이것이 아니라, ‘먹는 방송의 준말이다. 영어로는 푸드쇼또는 쿡쇼라고 하는 모양인데, 영어를 그대로 가져와 쓰지 않고 쉽고 재미있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낸 게 기특하다. 다행이다. 굳이 나누자면 푸드쇼는 음식을 먹는 것에 치중하고, 쿡쇼는 요리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 같다. 먹방이라는 말 말고 쿡방이라는 말도 쓰고들 있는데 아마 이런 차이에 주목한 듯하다. 대개 쿡방은 먹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므로, 그냥 먹방이라는 말 하나로도 충분한 것 같다. 먹방에서 진화하여 쿡방이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요리 방송또는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겠는데, 이 말들이 먹방이라는 말을 이겨내기는 어려울 듯싶다.

 

초등학생이나 칠순 노인들도 먹방이라는 말을 한번만 설명해 주면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쿡방이라는 말은 최소한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쉽게 알아들을 것 같고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노인들에게는 꿀밤으로 들릴지 모른다. 주먹으로 가볍게 머리를 쥐어박는 일을 꿀밤이라고 하는데, 노인들에게 쿡방이라는 말을 가르치려 들다가는 꿀밤 한 대 맞기 딱 좋을 것 같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먹방에 대하여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200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에서 널리 쓰이는 신조어이다. 처음에는 아프리카TV를 비롯한 인터넷 방송에서 방송자가 먹으면서 소통하는 방송이 인기를 끌었으며, 후에 매체나 방송계에서도 쓰이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즐겨보는 먹방으로는 티브엔(tvN)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방송하는 집밥 백선생과 에스비에스(SBS)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에 방송하는 백종원의 삼대천왕이 있다. 둘 다 백종원이 나온다. 그의 방송은 일단 재미있다. 어떤 요리이든 그가 만드는 대로 따라하고 싶고 어떤 음식이든 그가 먹어본 것을 직접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코미디티브이에서 방송하는 맛있는 녀석들도 즐겨 본다. 뚱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네 명의 개그맨, 개그우먼이 나와서 먹어대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지 어떻게 하면 즐겁게 먹을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먹을지 하는 것을 내기라도 하듯 그냥 먹는 프로그램이다. 제이티비시(jtbc)에서 방송하는 냉장고를 부탁해도 많이들 보는 모양이다. 이 프로그램들이 이른바 먹방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여섯시 내고향이나 생생정보’, ‘경남아 사랑해같은 프로그램에서도 현지에서 생산하는 싱싱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장면을 빠뜨리지 않는다. 황금 레시피, 가격 파괴점과 같은 제목을 붙여 전국 방방곡곡의 맛집과 값싼 집을 소개하기도 한다. 가히 먹방 열풍이라고 할 만하다.

 

먹방을 보고 있으면 일단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 먹는지 알게 된다. 누구든지 간단한 재료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평소 주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사람도 용기를 내어보게 되고 요리에 좀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 고급스러운 요리에 도전해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먹방을 보고 있으면 전국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알게 된다.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서면 가까운 맛집을 찾아가보게 된다. 이래저래 사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으로는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난 3월에 나는 이렇게 썼다.

 

요리 또는 음식 프로그램이 던져주는 많은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2014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은 23800달러로 대략 2548만 원 정도이다. 세계 33위였다. 2016년엔 더 올랐겠지. 평균적으로 봤을 때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살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 반면 20161월 청년실업률은 2000년 이후 1월 청년 실업률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있다. 또한 지난해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949만 명이 창업했고, 793만 명이 폐업해 자영업 생존율이 16.4%에 불과했다는 소식도 있다. 자영업의 창업 대비 폐업률은 85%에 달한다. 10명이 창업하면 9명은 문을 닫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시대에 음식 또는 요리 프로그램이 좀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을 권유하는 프로그램, 재벌 2세들의 낯 뜨거운 막장 드라마보다야 건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대한민국의 먹방이 인기있는 이유에 대하여 장기적인 경제 침체로 한국인들의 심리에 널리 깔려 있는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요리보다는 재미에 치중하고 있는 이런 방송들을 보면서 대리만족한다는 것이다. 또 우아하게 식사할 시간이 없는 한국인들이 먹방쿡방’(요리방송)을 보면서 눈요기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중앙일보)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좀더 씁쓸해진다.

 

2016.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