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비교적 자주 사는 편이다. ‘진주문고’에 직접 가서 사기도 하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사기도 한다. 진주문고는 서점 이름이 ‘책마을’이던 때부터 들락날락했다. 서점이 지금의 갤러리아 근처에 있다가 평거동으로 이전한 것이나, 지금의 롯데시네마 건너편 지하에 분점을 내었다가 문닫은 이야기 들을 대강 기억한다. 사실은 경상대 앞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알라딘은 2002년 3월 경남일보 노동조합 일 할 때 <노동소법전 2002>를 산 것을 시작으로 하여 요즘까지 비교적 자주 이용한다. 아무튼 서점은 참 고맙고 소중한 곳이다.
책은 주로 밤에, 집에서 읽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에도 바깥 나들이를 하지 않으면 주로 책을 보는 편이다. 책을 사는 건, 읽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사는 족족 다 읽지는 못한다. 출판사에서 그럴싸하게 신문광고를 해 놓으면 거기에 꾀어 일단 사 놓고 본다. 신문 기사에서 소개하는 책 가운데서도 구미가 당기는 책은 산다. 그렇게 산 책이 거실에 꽉 찼다. 이제 더 놓을 곳도 없다. 책은 사무실에서도 짬짬이 읽긴 하지만 집중하기 어렵다.
잠이 오지 않을 때 거실에 홀로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진다. 탁자에 앉아서 읽다가 걸상에 걸터앉아 읽다가 화장실 변기에 올라앉아 읽다가 때로는 바닥에 엎드려 읽기도 한다. 왼팔로 머리를 받치고 비스듬히 누운 채 다리를 꼬고서는 조금 불안불안한 자세로 책 보는 것도 즐긴다. 그러고 있으면 아내는 따뜻한 차 한 잔 끓여주며 “고생한다”는 말로 위로한다. 그래서 책읽는 시간은 더욱 행복한 순간이 된다.
얼마 전에 책걸상 위치를 바꾸고 컴퓨터를 옮기고 나니 천장 형광등을 등지고 책을 읽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옅은 빛에 의지하여 읽게 된 셈이다. 책상등(스탠드)을 켜기도 했는데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좁은 책상에 컴퓨터와 책꽂이와 책상등을 가지런하게 정돈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좀더 작은, 그러니까 컴퓨터 화면 귀퉁이에 붙이거나 꽂아서 씀직한 등이 필요하였다. 또 생각해 낸 게 알라딘 누리집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물건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알라딘으로 갔다.
내가 찾는 등의 이름은 책 읽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니 ‘독서등’일 것이었다. 검색어로 ‘독서등’을 찾았다.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까. 좀 고민하다가 언뜻 ‘북라이트’라는 말을 본 듯하여 이 말로 검색해 보았다. 몇 가지 그림이 좌르륵 나왔다. ‘북램프’라는 말도 덩달아 알게 되었다. 책걸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 또는 안방에서 드러누워 책을 읽을 때, 또는 침대에서 등을 기대고 누워 편안하게 책을 읽을 때 책만 밝게 비춰주는 자그마한 등의 이름이 ‘북라이트’, ‘북램프’라는 것이다.
이 북라이트를 이용하면 우선 먼저 잠든 가족들의 잠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으며, 좀더 호들갑을 뜰자면 앙증맞은 게 보기에도 꽤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리는 그러한 쓰임새를 연구하기보다는 ‘북라이트’라는 말에 머물러 있었다. ‘북라이트’라... ‘북램프’라... 그냥 ‘독서등’이라고 하면 안 되나? 하여, 이번에는 간혹 이용하곤 하는 ‘옥션’으로 가 보았다. 옥션에서는 ‘독서등’으로 검색하거나 ‘북라이트’로 검색해도 똑같은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알라딘에 북라이트, 북램프라는 말보다는 독서등이라고 써달라고 하거나, 그게 싫으면 두 가지 말을 다 사용해 달라고 말해볼까.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알라딘을 좀더 돌아다니다가 또 하나 깜짝 놀랄 말을 발견했다. 알라딘에서는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북라이트를 비롯하여 독서, 책, 읽기, 쓰기 등과 관련한 잡동사니들을 몇 가지 더 팔고 있는데 그 장터 이름이 ‘알라딘굿즈’이다. 이건 무슨 말일까. ‘굿즈’라... ‘goods’이겠지. 이건 ‘상품, 물건’이라는 말이렷다. 아무튼 그런 까닭으로, 알라딘굿즈에서 파는 물건은 독서등이 아니라 북라이트가 되었던 것이고, 책꽂이에 세워둔 책이 쓰러지지 않도록 맨 끝에 세우는 물건은 북앤드가 되었던 것이고, 책을 넣어다니도록 헝겊으로 만든 물건은 책가방이나 책보따리가 아니라 북파우치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 굳이 영어로 하려면 ‘북라이트’라고 하기보다는 ‘리딩라이트’라고 하는 게 더 맞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지금 한쪽에서는 북라이트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리딩라이트라고 하는 모양인데, 책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읽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면 리딩라이트가 맞을 것 같다. 이렇게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간단하게 ‘독서등’이라고 하면 되겠다.
201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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