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이런 하루는 참 힘들다

by 이우기, yiwoogi 2016. 5. 16.

2016516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성년의 날 기념 전통 관례계례 시연 행사가 예절교육관에서 열린다. 남자 성년에게 하는 관례의식과 여자 성년에게 하는 계례의식 둘 다 사진을 찍어야 했다. 총장님께서 학생들에게 자()를 직접 수여하는 행사도 그림을 찍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경남지역연합회에서 개최하는 ‘2016년 미래융합포럼은 오후 240분에 항공우주산학협력관 대강의실에서 시작한다. 개회식 몇 장면의 사진이 필요했다. 오후 3시에는 진주시약사회에서 약학대학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금 전달식이 약학대학 체육대회 현장에서 열린다. 역시 사진이 필요했다. 사진이 없으면 보도 가치가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행사들이다. 잔머리를 굴렸다.


<성년의 날 기념 전통 관례.계례 시연 중 남자 성인에 대한 관례 모습>

 

예절교육관에서 항공우주산학협력관까지는 우리 대학 캠퍼스의 끝에서 끝이지만 자동차로 이동하면 3분 정도 걸린다. 항공우주산학협력관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대운동장까지도 역시 끝에서 끝까지인데 3분 걸린다. 대운동장은 예절교육관에서는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나는 예절교육관에서 남자들의 관례의식 첫 장면을 찍은 뒤 항공우주산학협력관으로 달려가서 개회식 몇 장면을 찍고 곧장 대운동장으로 달려가면 장학금 전달식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예절교육관으로 가면 계례의식도 끝부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오가는 길에 시속 30km를 조금 넘길 것을 각오하였다. 정녕 급하면 빵빵소리도 낼 생각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한국과총 쪽과 약학대학 쪽에는 자체적으로 사진 촬영을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하지만 그들이 찍어보내는 사진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필요한 시각보다 한참 늦은 뒷북일 위험성이 꽤 높았다.


<경남과총은 '무인기'를 주제로 미래융합포럼을 개최했다.>

 

오늘따라 민방위 훈련을 오후 2시에 하는 바람에 관례계례식을 5분 정도 늦게 시작하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사진을 235분쯤 담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항공우주산학협력관으로 달렸다. 사회자가 참석인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경남지역연합회장님의 인사말씀, 경남테크노파크 원장님의 인사말씀이 이어졌다. 몇 장 찍고서는 쫓아나오는데, 협회쪽 팀장이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붙들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차를 몰아 대운동장으로 갔다. 257분쯤이었다. 예측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차를 세우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보라색 과점퍼를 입고 있어야 할 약학대학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다른 운동장에서 행사를 하는가 싶어 수의과대학 쪽으로 차를 달리면서 약학과로 전화하니 받지 않았다. 단과대학 행정실로 전화하여 행사장을 물으니 학군단 연병장이라고 한다. 학군단 연병장은 항공우주산학협력관에서 1분 거리에 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다. 달렸다.

 

<여성 성인에 대한 계례의식은 관례보다 간단하게 짧게 진행되지만 그림이 참 예쁘게 나온다.>


학군단 연병장에 도착하니 오후 33분쯤 되었는데 그냥 체육대회를 하고 있을 뿐 장학금 전달식을 하는 것같지 않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아는 학생이 달려오더니 인사를 꾸벅한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오늘 장학금 전달식 하지 않느냐?” 물으니, “진주시약사회에서 오후 4시에 오기로 했습니다.”라고 착하게 말한다. 생각해 보니 체육대회 장소도 일러주지 않았고(작년에 대운동장에서 했으니 올해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시간이 늦춰진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화가 났다(하긴, 갈지 못 갈지 모른다고 했으니). 하지만 거기서 화를 내고 있을 틈이 어디 있나. 예절교육관으로 달렸다. 가면서 총장 수행비서에게 전화하니 지금 막 학생들에게 자() 수여식을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사진 몇 장을 건졌다.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예절교육관 마루에 앉아 한숨 돌렸다. 이윽고 이어진 여성 성년에 대한 계례의식도 찍었다. 330분쯤 되었다.

 

사무실로 들어와서 관례, 계례, 미래융합포럼 사진을 정리하여 언론사에 보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약학대학 장학금 전달식 사진도 함께 보내어야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그다지 큰 행사도 아니고 중요한 행사도 아닌, 즉 언론사 입장에서는 보도하여도 되지만 보도하지 않아도 되는 연례행사일 뿐인 것의 사진을 오후 330분쯤 보내는 것은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늦었군!”하며 버릴 수도 있고, 때로는 지금 사진을 보내면 어떡하느냐?” 따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 도리는 다하자 싶었다. 잠시 짬이 생겼다. 4시에 예정되어 있는 약학대학 행사에 갈지 말지 고민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장소도 시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행사를 왜 챙겨야 하는지 싶었다.

 

<진주시 약사회에서 장학금 200만 원, 진주시 약사회장 개인이 장학금 100만 원을 전달했다.>


넋을 놓고 있다가 진주시약사회장이 고등학교 동기 친구라는 넋두리를 들은 동료 선생님이 그래도 가 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조심스레 말하기에, 그 말에 힘을 얻어 학군단 연병장으로 달려갔다. 358분쯤이었다. 운동장에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약학대학장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진주시약사회장님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였다. 장학금 전달식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몇 장 찍었다. 전체 학생과 교수님과 약사회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목청껏 파이팅외치는 장면도 담았다. 목소리가 우렁차서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한 언론사에서 왜 약학대학 사진은 함께 보내지 않느냐?” 묻는 전화가 온다.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묵음 상태였다. 얼렁뚱땅 정리하여 보내준다. 그러고 나서 약학대학 사진은 약학대학 조교 선생님께, 경남과총 사진은 회장님이신 교수님께 보내준다. 관례계례 사진은 저들끼리 알아서 잘 찍으므로 따로 보내줄 필요는 없다.

 

생각해 보면 행사장마다 달려가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다. 행사를 주관하는 쪽에서 찍어 보내주는 것을 받아 처리하여도 된다. 큰 문제는 없다. 스마트폰으로 찍어 카톡으로 보내주어도 된다. 일반 카메라보다 화질도 좋고 속도도 빠르다. 굳이 내가 무거운 카메라 들고 동분서주하면서 달려갈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찍어보내는 사진은 마음에 차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무엇보다 마감시간이 무엇인지, 왜 서둘러야 하는지, 아무리 이야기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굼뜬 동작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사진을 잘 찍어서 최대한 일찍 보내주어도 신문에 실어 줄까 말까 한데 오늘 행사 사진을 내일 보내면서 게재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속성을 뻔히 알면서 사무실에 앉아 카톡과 이메일만 열었다 닫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말 가꿈이 들이 세종대왕 탄신일(5월15일)을 맞이하여 홍보활동을 하였다. 이 사진은 정말 아쉽다.>


오후 5시쯤 손을 털고 나니 아차!” 싶은 생각이 뒷머리를 때렸다. 어제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국어문화원에서 운영하는 경상남도 우리말 가꿈이들이 시내 차없는 거리에서 우리말 홍보활동을 했다. 사진을 늦어도 4시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집에서 받아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진은 오후 6시 넘어 보내왔다. 이 사진도 오늘 여러 행사에 묶어서 한번에 언론사로 보낼 생각이었다. 사진도 마음에 들게 잘 찍어왔다. 하지만 나는 우왕좌왕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이 사진을 놓치고 말았다. 홈페이지에는 올려 놓았지만, 언론사에는 보내지 못하였다. 까맣게 잊어먹은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내일 화요일에, 일요일 치른 행사 사진을 보내어 자그맣게라도 실어달라고 하면 과연 뭐라고 할까. 꼭 변명을 대자면, “예절교육관항공우주산학협력관대운동장수의대운동장학군단 연병장예절교육관홍보실학군단 연병장뺑뺑이 돌고 나니 하늘이 좀 노랗더라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서글퍼질까 봐 참아야겠지. , 이런 하루는 정말 싫다. 참 힘들다.

 

2016. 5. 16.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든 말든  (0) 2016.05.22
해낸 일, 못한 일  (0) 2016.05.21
조심 조심 살자  (0) 2016.05.11
피곤한 밤 잠들지 못하는 까닭은  (0) 2016.05.10
누가 나를 물었을까  (0)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