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려던 일 가운데 몇 가지는 ‘해냈고’ 몇 가지는 못했다.
백년만에 세차를 했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아니다. 2만 2000원 주니 손으로 세차해 주었다. 바퀴도 유리도 깨끗해졌고, 무엇보다 차 안이 깔끔해졌다. 아내를 향해 어깨 힘 좀 주게 생겼다. 오전 11시에 맡겼다가 오후 2시 넘어 찾아왔다.
그 사이 오후 2시에 열린 결혼식에 버스 타고 다녀왔다. 꼭 직접 가서 축하의 말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자리였다. 위층 뷔페에 가서 밥부터 먹었다. 혼자 앉은 사람 앞에 나 또한 혼자 앉았는데, 옆에 앉은 부부 가운데 남편 되는 이가 좋은데이를 권한다. 나의 이성은 사양하라고 하였지만 손은 벌써 잔을 들고 있었다. 한잔하고 싶어도 혼자 한 병을 다 먹지 못하면 손대기 어려운 일인지라, 그 분의 배려가 반갑기도 하였다. 어젯밤 심하게 달렸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날은 더웠고 손님은 많았다.
오전에는 원고 하나를 다듬었다. 내 글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열 번 정도 읽으며 문장을 다듬고 오타를 수정하였다. 원고지 11장 분량이다. 엊저녁 마신 소맥 탓에 아파진 머리가 가장 힘겨운 고비를 넘길 때, 글 고치는 작업을 해낸 것이다. 전자우편으로 회신하면서 마지막 '보내기'를 누른 뒤 뒤로 넘어갔다. 그 일을 마친 뒤 비로소 세차할 생각도, 결혼식장 갈 용기도 짜내게 된 듯하다.
조금 전에는 아들의 힘을 빌려 거실에 있던 꺼꾸리를 방으로 옮기고 방에 있던 탁자를 거실로 내왔다. 이 또한 2-3달 전부터 벼르던 일이다. 거실바닥에서 앉은뱅이 탁자 위에 컴퓨터를 놓고 일과 놀이를 하니 어깨와 허리가 더욱 아프던 것이다. 나도 그렇고, 요즘 늦은 밤까지 컴퓨터 화면과 씨름하는 아내 또한 그러했다. 집에서 묵새기고 있는 덕분에 묵은 숙제를 해냈다. 스스로 대견하다.
오후 6시에 학교 앞에서 열리는 학교 방송국 졸업생들의 모임에는 못 가게 되었다. 가면 반가운 얼굴이 한둘이 아닐 텐데... 내일 오전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 사진 찍으러 가려면 뱃속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생각과, 주말이라 집에 있는 아들에게 뭐라도 해 먹이려면 내가 집을 지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좀 미안한 행각이 든다. 하지만 소주 몇 잔에 혀 꼬부라지며 꼬꾸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덜 미안하다고 위안 삼는다.
석갑산 올라볼 생각도 접었다. 어제 오후 갑작스런 술자리가 생기기 전에는 반드시 석갑산 한 바퀴 하리라 생각했는데 포기했다. 내려오는 길에 '숙자네'에서 국수 한 그릇 할 생각에 군침도 흘렸는데, 할 수 없다. 올라가다 화장실 급하여 되돌아 쫓아내려올지 모른다 싶으니 도무지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내일 오후를 도모해볼까 여기며...
큰형은 원래 오늘 아버지 산소 성묘하러 갈 것이라 하였다. 어떡하든 따라붙으려 했는데 그것도 삐끄러졌다. 내일 간다 하니, 어쩔 수 없다. 일을 마치고 오후에라도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마 어려울 것이다. 토요일 하루는 이렇게 길고도 짧다.
2016.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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