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커피점에 가서 이것저것 주문하니, 점원이 “테이크 아웃 하실래요?”라고 묻는다. “아니오”라고 답하니 “그럼 머그잔으로 드릴게요”라고 말한다. ‘머그잔’이라는 말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참는다. 오늘은 ‘테이크 아웃’에 대해 시비를 걸어본다.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본 동영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서울 명동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중심가 아닐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또는 순수 국산 토종 커피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고 당연히 테이크 아웃으로 먹고 마실 것들을 팔고 사고 있을 것이다. 얇은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하나씩 꽂은 채 쪽쪽 빨아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커피를 쪽쪽 빨아대며 연인과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마는, 다 마시고 난 빈 컵을 버릴 데가 없으니 아무데나 휙 던져버리고 가는 청춘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아무데나 버리는 놈들은 양심에 털 난 놈들이라고 욕을 해주고 싶고, 어떤 양심 있는 척하는 젊은이들은 가로수 밑에, 남의 집 간판 밑에, 계단 구석에 얌전하게 내려놓고 총총 사라지기도 하는가 보다. 똑같이 욕들을 일이다. 생수 병이나 음료수 깡통도 굴러다닌다.
테이크 아웃을 하는 식당이나 커피점이 늘어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의 학생들도 예외일 수 없다. 민망하게도 학생들은 자기가 들고 다니던 컵의 내용물을 다 먹고 나면 아무 생각없이 즉석에서 그것을 처리하곤 한다. 곳곳에 쓰레기가 넘친다. 가장 나쁜 경우는 남은 커피 찌꺼기가 흘러넘치도록 컵을 길 바닥에 자빠뜨려 놓는 것이고 다음 나쁜 경우는 빽빽한 관목(灌木)들 틈에 보이지 않도록 끼워놓고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아무튼 테이크 아웃이 성업하는 만큼 거리는 더러워지고 사람들의 의식도 후진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테이크 아웃이라는 제도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테이크 아웃(take-out)은 레스토랑의 한 종류로, 고객이 음식을 매장에서 먹지 않고 매장 밖에서 먹는 형태의 음식점 시스템이다. 또한 그 음식을 뜻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테이크 어웨이(take-away)라고 하는가 보다. 업종분류상으로는 외식(식당에서 먹는다)도 내식(가정에서 조리해 먹는다)도 아닌 중간영역에 자리하게 되므로 중식사업이라고도 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벅스ㆍ카페베네 등 주로 커피점들이 테이크 아웃을 많이 도입하여 성업 중이고, 맥도날드ㆍ롯데리아 등 패스트 푸드점들도 테이크 아웃을 많이 한다. 길거리 포장마차도 엄밀히 따지면 테이크 아웃을 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사는 먹거리도 대부분 바깥에서 먹게 된다.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에 잘 맞춘 듯하지만, 거꾸로 보면 그런 식으로 먹거리를 팔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먹고살게 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다. 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현대인들은 늘 바빴지만 테이크 아웃이 없어도 잘 먹고 잘 살았음을 나는 기억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테이크 아웃을 ‘포장판매’ 또는 ‘포장구매’라고 다듬어 쓰자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포장판매 또는 포장구매가 테이크 아웃과 싸워 이기리라고 보기 어렵다. 테이크 아웃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비교적 영어와 친숙한 젊은이들이고, 이들은 하루에 한두 번은 테이크 아웃을 이용하고 있다. 그 말이 널리 쓰인다는 뜻이다. 반대로 포장판매와 포장구매라는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사람은 대체로 40~60대쯤 될 것 같은데 이들은 테이크 아웃을 이용할 확률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있을까 싶다. 따라서 테이크 아웃을 가장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말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는 ‘사 가기’라는 말로 순화하자고 주장하는 것 같다. 얼핏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사 가기는 가게에서 음식을 사서는 집에까지 갖고 가서 먹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반면 테이크 아웃은 길거리를 거닐면서, 혹은 길거리 긴의자에 앉아 쪽쪽 빨아먹고 씹어먹는 음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조금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금 차이 난다고 하여 굳이 말을 세분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말의 경제성을 따져보면 그렇다. 그렇다면 사 가기라고 하지 못할 까닭은 없지 않을까 싶다.
테이크 아웃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테이크 아웃을 자주 쓰는 사람은 젊고 패스트 푸드를 자주 사 먹고 커피 값이 밥값보다 비싸더라도 개념치 않을 것 같다. 영어나 중국어나 일본어 같은 외국말에 익숙해 있거나 익숙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별로 거부감을 갖지 않을 것 같다. 여유가 생기면 해외 여행도 쉽사리 떠날 것 같고 스마트 폰을 비롯한 첨단 통신기기에 대단히 익숙해 있을 것 같다. 반면, 테이크 아웃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일까.
서울 명동에서나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나 테이크 아웃을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 테이크 아웃 이용자들이 지나다니는 길목 중간중간에 쓰레기통이라도 더 많이 만들어 놓을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테이크 아웃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좀 책임지고 가게로부터 반지름 300~500m 이내에는 쓰레기통을 몇 개씩 세워 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테이크 아웃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가 먹은 음식물의 쓰레기를 아무 생각없이 버리는 몇몇 놈들을 위하여 시청이나 대학에서 비싼 세금 들여 쓰레기통을 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보다 앞서 그런 정도로 공중도덕 의식이 없는 이라면 아예 테이크 아웃을 이용할 자격이 없다고 봐야 옳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이것이다. “너는 테이크 아웃 하지 마!”
2016. 5. 11.
'너는 테이크 아웃 하지마' 동영상 보기: https://goo.gl/UJxF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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