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면 들을수록 한심한 말이 있다. ‘품절남’, ‘품절녀’가 그것이다. 주로 연예인들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최효종 결혼, 드디어 품절남…7년 열애 끝 마침표 “행복하다”
-이중문, 7세 연하 미모의 연인과 결혼 ‘품절남 대열 합류’
-대한항공 최석기, 5년 열애 끝 30일 품절남 된다
-안재현, ‘예비 품절남’인데도 여심 홀리는 ‘훈남’
-‘품절남 합류’ 김태홍 “책임감 가질 것”
-허영란 품절녀 대열 합류…연극배우와 스몰 웨딩
-배우 이미도-개그우먼 정지민, 오늘 ‘품절녀’ 된다
-김정은, ‘품절녀’ 합류 “질투날 정도로 행복하렴”
-이희준과 결혼 이혜정, ‘품절녀’ 인증샷?
-아나운서 전주리, 품절녀된다... 상대는 훈남 한의사
나는 이 말을 보면서 좀 이상한 생각을 한다. 품절이란 무슨 말인가. ‘물건이 다 팔리고 없다’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무엇을 팔고 있었던가. 결혼을 함으로써 더 이상 팔 수 없게 된 그것은 무엇인가. 결혼한 뒤에도 연기를 계속할 것이므로 ‘연기력’이나 ‘이미지’나 ‘얼굴’은 아닐 것이다.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 고유하게 갖고 있는 ‘성’인가. 에이, 그것을 팔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팔고 있었던가. 무엇을 팔다가 다 팔았기에 품절남, 품절녀가 되었는가.
반대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연예인에게서 무엇을 사고 있었는가. 가령 희극배우 최효종에게서 나는 무엇을 샀는가. 시청료 내고 ‘개그콘서트’를 봤으니 그의 우스갯소리를 샀는가. 억지로 끼워 맞추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최효종은 결혼을 한 뒤 그 우스갯소리를 그만 팔 것인가. 그건 아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늘게 생겼으니 오히려 더 많이 팔려고 할 것이다. 품절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품절남, 품절녀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최효종이 총각일 때는 이 여자도 그에게 접근해 볼 수 있고, 저 여자도 그를 만나볼 수 있고, 또 다른 여자도 그와 사귀어 볼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한 이상 이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일까. 마치 소비자가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놓고 만져도 보고 들어도 보고 물건값을 흥정도 해 볼 수 있었는데, 다 팔리고 나니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게 된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자, 그러면 그런 물건 취급을 당하는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까. 나라면 불같이 화를 낼 것 같다. 이 여자도 만나보고 저 여자도 사귀어보는 그런 사람으로 취급받으면 기분이 좋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이 왜 유행하게 된 것일까. 모르겠다. 그냥 기혼남, 기혼녀라고 해도 되고 유부남, 유부녀라고 해도 된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남진아비’가 있다. ‘핫아비’도 같은 말이다. 반대로 남편이 있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남진어미’도 있다. 당연히 ‘핫어미’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을 좀 살려쓰면 어떨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이미 제짝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가리키는 말로서 품절남, 품절녀는 아주 잘못 붙여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만 하면 되었을까.
이 품절남, 품절녀라는 말이 유행하니 재고남, 재고녀라는 말도 생겨난 것 같다. 재고남은 ‘품절남’의 반대말로서, 어떤 상품이 인기 없으면 재고가 남게 되듯이, 남자도 인기가 없어 재고가 남는다는 의미를 비유해서 쓰인 신조어라고 한다. 참 별의별 말도 다 만들어낸다. 여기서 끝일까. 그러면 얼마나 다행일까. 결혼했다가 이혼한 남자와 여자를 이르는 말로 반품남, 반품녀가 있단다. 짐짝 다룰 때 쓰는 말을 사람에게 마구 들이댄다. 요즘은 돌싱남, 돌싱녀라는 말도 생겼단다. 이혼남, 이혼녀라고 말하려니까 어쩐지 꺼려지는 게 있어서 이런 말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이혼’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은 정상이고 ‘이혼’은 비정상이라는 관념이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신조어를 만들어 퍼뜨리고 그것이 한때 유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막을 도리가 없다. 막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만든 말 가운데 어떤 말은 표준어가 되기도 한다. 표준어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그 말들은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어떤 면을 보여주는 잣대나 거울이 되기도 한다. 말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렇지만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듯이 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품절, 재고, 반품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될 말 아닌가. 그런데도 스스로 품절남이니 품절녀이니 하는 것을 하면, 좀 한심해 보이지 않는가. 내 눈에는 아주 많이 한심해 보인다.
2016.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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