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아웃도어’는 처음부터 알아들었다. 아웃은 야구에서 ‘삼진아웃’ 할 때 나오는 ‘out’일 것이다. 몇 해 전 거리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은 ‘MB OUT’이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혹시 외신에 기사가 나더라도 알아보라는 친절한 배려이다. ‘아웃’은 ‘나가다’, ‘바깥’이라는 말 아니겠는가. ‘도어’는 그것이 한자어라면 몰라도(경남도[道]의 물고기[魚]를 도어라고 한다) 영어라면 십중팔구 ‘door’일 것이다. ‘문’이라는 것쯤은 자다가 일어나서도 알아본다. 아웃도어는 문밖이라는 뜻이다. 생각보다 쉽다. 중고등학교 6년과 대학 1학년 합하여 7년 동안 영어를 배운 덕분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문밖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문밖에 누가 왔는가. 아웃도어가 어떻다는 뜻일까. 궁금하여 사전을 찾아봤다. ‘outdoor’는 ‘①옥외의 ②야외의 ③(구빈원(救貧院)ㆍ병원 등의) 시설 밖의 ④의사당 밖의 ⑤원외의’라는 뜻이란다. 옥외, 야외는 현관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야 하니, 그곳이 곧 아웃도어이다. 다음(DAUM) 백과사전에서는 ‘야외 또는 옥외를 뜻하는 말로, 국내에서는 주로 등산 및 캠핑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고 해놨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왜 우리나라에서는 등산갈 때 입는 옷을 굳이 ‘아웃도어’라고 하느냐이다. 주말이나 휴일에 가까운 산에 가보면 눈알이 빙빙 돌 지경이다. 꽃과 나무만으로도 충분히 알록달록 울긋불긋하여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등산객, 나들이객들의 옷 또한 봄꽃 못지않게 화려하다. 화려한 정도로 치면 등산복 패션쇼라고 해도 되겠고, 저마다 제 옷 자랑하려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참 예쁘게 잘 만들었고 참 잘들 갖춰 입었다. 옷 구경하려 근교산을 찾는다 해도 될 만하다.
등산객이 입는 옷을 주로 가리켜 ‘아웃도어’라고 한다는 것을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알았다. 텔레비전 홈쇼핑을 보면 이른바 ‘아웃도어 브랜드’ 들을 계절에 맞춰 출시하는데 그럴 때마다 쇼핑을 진행하는 사람은 ‘아웃도어’라는 말을 수백, 수천 번 해댄다. 아웃도어가 등산복을 가리킨다는 것을 그즈음 알았다. 아웃도어가 문밖, 야외, 바깥이라는 말이면 등산복뿐만 아니라 등산 신발, 배낭, 텐트, 침낭 같은 등산용품을 가리키는 것을 포함하여 집 바깥에서 소용되는 모든 것(옷이든 아니든)을 가리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양복 정장도 집 안에서 입고 있을 리 없으니 아웃도어 아닌가. 양복 정장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주로 입으니 아웃도어라고 하기 어려운가. 면바지나 스웨터도 나깥 나들이할 때 곧잘 입는 옷이니 아웃도어 아닌가. 공사장에서 막일 하는 사람이 입음직 한 청바지나 셔츠 종류도 아웃도어 아닌가. 생각은 자꾸만 그렇게 번져간다. 또한, ‘아웃도어’가 있으면 ‘인도어’도 있음직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도어라... 인도에서 쓰는 말 말고 ‘indoor’. 그러니까 주로 집 안에서만 입는 옷도 있을 것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이야 집에서는 허름하고 꾀죄죄한 운동복을 입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집에서만 입는 옷을 따로 사 놓고 요일별로, 날씨별로 골라 입지 않을까. 그런 옷이 있다면 그것은 인도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옷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먼저 언제 입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계절별로는 봄옷, 여름옷, 가을옷, 겨울옷이 있다. 봄과 가을에는 비슷한 옷을 입는데 유식한 말로 춘추복이라 한다. 여름옷은 하복, 겨울옷은 동복이라고 한다. 등산할 때 입으면 등산복, 일할 때 입으면 일복/일옷, 운전을 하든 요리를 하든 타자를 치든 일할 때 입는 옷인데 좀 색다르게 단체로 맞춰 입으면 근무복(유니폼)이라고 하면 되겠다. 수영복, 야구복, 교복은 자연스러운데 자전거옷은 좀 어색하다. 입는 위치를 따지자면 속옷, 겉옷, 윗옷, 아래옷이 있겠다. 외투도 있군. 옷을 만든 소재를 기준으로 나눠볼 수도 있겠는데 그것까지는 지식이 모자라서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입는 옷을 갈래짓는 데 어려움이 없다.
등산복을 아웃도어라고 해 놓으니 사람들은 등산할 때 말고도 아무데서나 입고 다닌다. 나도 그런 편이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아무 생각없이 입고 출근한다. 나도 그렇다. 아웃도어는 그냥 바깥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기 집만 벗어나면 그곳이 강이든 산이든 바다이든 사무실이든 식당이든 극장이든 야구장이든 어디든 아웃도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두고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아무래도 어색하고 뭔가 안 맞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등산복 한 벌 값이 100만 원도 웃도는 상표가 허다하다 하니 어쩌면 그런 옷을 입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려고 입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아웃도어라는 말은 아무래도 잘못 쓰고 있는 것 같다. 외국어로서 착실히 대접받아야 할 아웃도어라는 말이 나에게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보인다. 참 이상한 말이 되어 버렸다. 원래 뜻을 잃어버리고 등산복이나 가리키는 말로 전락해 버렸다. 아주 간혹 그냥 바깥, 야외를 가리키는 일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새발의 피만큼이어서 간에 기별도 오지 않는다. 영어를 쓰는 나라 사람들은 ‘아웃도어’를 옷으로 생각지 않는단다. 즉 콩글리시이다. 이 ‘아웃도어’를 어찌해야 할까. 이상한 말이 되어버린 아웃도어는 원래 제 뜻대로 쓰게 해방시켜 주고, 지금 우리가 아웃도어라고 부르는 옷들은 쉽게 등산복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그럼 캠핑할 때 입는 옷은... 결론이 흐리마리하다.
2016.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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