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텐’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4와 10이라는 뜻일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무슨 뜻일까. ‘포텐 터진다’는 말도 자주 보인다. 40이 터졌다는 말일까. 아닌 것 같다. 포텐은 무슨 말일까. 저렇게 자주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나는 우리나라 교육을 정상적으로 받고 사회로 배출된 사람일까. 포텐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포텐이라….
고1 아들과 함께 어느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가 ‘포텐’이라는 말을 보고는 이때다 싶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너는 저 포텐이라는 말을 아니?” 물으면서도 ‘설마 모르겠지. 나도 모르는데….’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들은 “포텐이요?”라고 되묻는다. 아는지 모르는지 가늠이 안 된다. 잠시 후 “아버지, 그건 포텐셜이라는 영어에서 온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녀석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친다. 나는 조금 더 당황스러워졌다. “그럼 포텐셜은 무슨 말이니?”라고 묻지 않을 수 있겠나. 나의 영어 실력에…. “예, 그건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이라는 말이에요.”란다. 그렇구나. 요즘 고등학교 1학년쯤 되면 이런 말은 다들 알고 있나 보구나.
다시 물었다. “그럼 영어에서도 포텐이라고 쓰니?” 아들은 대답을 못한다. 원래 ‘잠재적인’이라는 뜻의 영어가 ‘포텐셜’(potential)이라면 그대로 갖다 쓰는 게 더 올바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의 절반은 뚝 잘라 내다버리고 앞 부분만 갖다 쓰고 있는 꼴 아닌가. 이건 바람직한가. 그렇게 하여 우리나라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말을 만든 건 바람직한가. 나는 이게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말과 글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 아닌가. 포텐이 영어에서 왔다고 알고 있다가 미국 사람에게 이 말을 써대면 미국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싶기는 하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있을까.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영어를 가져다 쓰는 태도가 문제다. 그것도 반토막 영어라니. 생각없이 가져다 쓰는 외국어 때문에 멀쩡한 우리말이 하나둘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또는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은 그런 고민까지는 하지 않겠지. 나는 고민을 많이 하는 쪽이다. 고민을 하고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런 현상은, 아예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고 그것 또한 완전하게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두 번째 문제는 ‘포텐’이라는 말에다가 ‘터지다’를 붙여서 ‘포텐 터지다’라고들 많이 쓰는데 나중에는 ‘포텐 터지다’가 신조어 대접을 받다가 결국에는 우리말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 만들어지는 것도 죄다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막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무조건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이란 이렇게도 만들어지고 저렇게도 만들어져서 언중으로부터 인정받고 널리 쓰이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반대하는 쪽이다. 누구나 쉽게 알고 있는 말을 이리저리 떼고 붙여서 만드는 것과 몇몇 사람만 아는 말을 쪼개고 붙여서 만드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마무시하다’는 ‘어마어마하다’와 ‘무시무시하다’를 합하여 만든 말이다. 들으면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심쿵’이라는 말은 처음엔 잘 모르던 사람도 한번만 설명을 들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나 ‘포텐 터지다’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나는 도대체 손짓 발짓을 얼마나 해야 할까.
우리말 가운데 ‘알심’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대학 다닐 때 만든 학회의 이름을 ‘알심’이라고 지었다. ‘보기보다는 속에 든 야무진 힘’이라는 말이다. 즉, 가능성, 잠재적인 힘이라는 말이다. ‘포텐 터지다’라는 말을 ‘잠재성 터지다’, ‘가능성 터지다’로 바꾸자고 하면 말이 입안에서 버스럭거리겠지만, ‘알심 터지다’라고 하자면 조금은 바삭바삭 맛깔스럽지 않을까 싶어진다. 외모나 노래 솜씨나 말 솜씨나 그림 솜씨나 속에 들어 있는 재주가 어느 계기를 만나 바깥으로 활짝 피어나는 장면을 보고 “야, 알심이 터졌네!”, “알심 터지는구나!”, “마침내 터지는 알심”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는 ‘포텐’이 말하고자 했던 원래 뜻을 찾아서 써주어도 좋지 않을까. ‘매력 터졌다’, ‘미모 터졌다’(미모가 터진다니 좀 이상하지만), ‘손재주 발산’, ‘노래 솜씨 맘껏 발산’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상큼’ 포텐 터졌다! 2차 티저 공개’라는 신문 제목은 ‘상큼한 매력 터졌다!’라고 쓸 수 있겠다. ‘연기 포텐 터진 유이’라는 제목은 ‘연기 실력 터진 유이’라고 써도 되지 않겠나. 이때는 ‘연기 알심 터진 유이’라고 해도 되겠고 또는 ‘연기 내공 터진 유이’라고도 쓸 수 있겠다. ‘홍수아, 청순미 포텐’은 ‘청순미 발산’이라고 해도 되겠지.
이런 식으로 쉽게 알아들을 수도 있고 그 뜻도 좀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있는데도 해괴한 말 ‘포텐’ 하나에 뭉뚱그려 쓰는 것은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이상하다. 바보 짓 같다. 바보 짓을 따라하는 사람이 자꾸 늘어나면 ‘포텐’은 살아남을 것이고, 바보이기를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말은 한때의 유행어로 머물고 말 것이다.
2016.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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