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주기적으로 혈액을 온몸으로 순환시키는 기관’이다. 우리 몸의 피가 온몸을 돌 수 있도록 펌프 역할을 하는 순환계의 중심 기관이다. 피를 온몸으로 순환시키지 못하면 사람은 죽는다. 그만큼 심장은 중요한 기관이다. 그래서 ‘심장’은 사물의 중심이 되는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된다. ‘도서관은 대학의 심장이다’라고 쓰고, ‘수도 서울은 대한민국의 심장이다’라고 쓰기도 한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일을 당하였을 때 또는 중요한 일을 겪었을 때 쓰는 표현에 ‘심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그만큼 심장이 우리 몸에서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심장이 멈춘 듯하다’고 하면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만하다. 곧 죽을 듯하다는 말이다. 매우 크게 놀랄 만한 일이 눈앞에서 갑자기 벌어진 것 같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적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장이 벌렁벌렁하다’는 말은 어떤가. 놀라운 일이 지나고 난 뒤에도 미처 안정되지 않아 심장이 계속 세게 뛰는 상황이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도 있다. 역시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보통 자기 주먹 크기만 하다고 하는 심장은 가슴 속에 잘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이게 뚝 떨어져 내려앉는다면 사람은 어찌 되겠는가. 죽고 말지. 졸지에 횡사할 정도로 놀랄 만한 일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일이다. 요즘은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라는 말도 쓴다. ‘쫄깃하다’는 ‘씹히는 맛이 매우 차지고 질긴 듯하다’라는 말인데, 설마 심장을 씹어먹기야 하겠는가마는, 아무튼 이 표현도 아슬아슬하거나 조마조마한 상황을 잘 표현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심장이 쫄깃하다’는 좀 별로다.
‘심장이 바들바들 떨린다’는 말도 한다. 화가 많이 났을 때 쓰는 말이다. 분노를 삭이지 못해 눈에 핏대를 세우는 상황에 씀 직하다. “확, 저 놈을 어찌 해 버릴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 들어앉게 되면 심장이 바들바들 떨릴까. 누명을 써서 억울함이 머리끝까지 가득 찬다면 심장이 바들바들 떨릴까. 잘 모르겠지만,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어야 한다. 너무 빨리 뛰어도 위험하고 너무 천천히 뛰어도 문제다. 그런 심장이 바들바들 떨리면 큰일난다. 자동심장박동기(심장제세동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황청심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까.
‘심장’과 관련한 여러 말들 가운데 ‘심쿵’이라는 말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유행어로 쓰였다가 어느 가수가 ‘심쿵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는가 보다. 그래서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는 말이다. 콩닥콩닥 뛰어야 할 심장이 ‘쿵쿵쿵쿵’ 뛴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심장은 가슴 속에 대롱대롱 잘 매달려 있으면서 규칙적으로 박동해야 하는데 이것이 감나무 홍시 떨어지듯이 쿵 떨어져버리면 사람은 속절없이 죽고 만다. 심장이 가슴뼈를 뚫고 나올 정도로 쿵쿵대면 사람은 어찌 될 것인가. 그런 정도로 놀랄 만한 일, 갑작스런 일, 당황스러운 일, 황당한 일, 긴장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 마음이 설레는 것도 심장이 쿵쿵대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심쿵거리다’라는 말도 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심쿵에 대하여 ‘사전에 ‘심쿵’이 등재되어 있지 않아 표준어로 보기 어렵다. 이러한 표현의 경우 일종의 유행어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밝혔다. ‘심쿵’은 아직 표준어의 자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계속 널리 번지다 보면 몇 해 뒤에는 표준어 자격을 얻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심장과 관련한 표현들은 대부분 두 낱말 이상이 결합하여 특정한 뜻을 나타내는 ‘관용어’인데 이 ‘심쿵’은 한 낱말이다. ‘심장이 쫄깃하다’고 하여 ‘심쫄’이라고 쓰지 않고,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하여 ‘심벌’이라고 하지 않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하여 ‘심철’이라고 쓰지 않는데, ‘심장이 쿵쿵대다’에서는 ‘심쿵’이 생겨났다. 이런 걸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심쿵해’라는 노래를 찾아보니 영어로 ‘Heart Attack’이라고 써놨다. ‘Heart Attack’을 찾아보니, ‘심장 발작’ 또는 ‘심장마비’ 또는 ‘심근 경색’으로 나온다. 놀랍다. 우리가 흔히 ‘심장이 멎는다’거나 ‘심장이 벌렁거린다’, ‘심장이 쫄깃거린다’라고 할 때 그것은 심장 발작, 심장마비, 심근 경색을 직접 가리키지는 않는다. ‘심쿵해’도 물론 심장 발작 같은 것을 직접 가리키지는 않는다. 영어로 뒤쳐놓고 보니 뜻이 영 엉뚱한 데로 가버렸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은 우리말을 비틀고 목 조르고 하여 해괴망측한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외계어 같은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멀쩡한 말을 줄여 말하거나 외국어와 우리말을 접붙이거나 하여 유행어를 ‘창조’해 낸다. 어떤 말은 황당하고 당혹스럽지만 어떤 말은 꽤 잘 만든 것 같다. 그렇게 만든 말이 언중 사이에서 널리 쓰이면 끝내 살아남아 마침내 표준어의 자격을 얻어 사전에 오르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말은 얼마 가지 않아 우리들의 기억에서마저 사라지고 만다. 그런 가운데 ‘심쿵’, ‘심쿵해’는 비교적 잘 만든 말인 것 같다.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이 말을 직접 해 본 적이 아직 없다. ‘심쿵’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 두고볼 일이다.
2016.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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