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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글을 보는 내 눈

들을수록 기분 나쁜 말 ‘표밭’, ‘집토끼’

by 이우기, yiwoogi 2016. 4. 4.

선거 때만 되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가운데 표밭, 집토끼라는 게 있다. 표밭은, 선거에서 어떤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이 특히 높아, 집중적으로 득표할 수 있는 선거 구역을 통속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표밭갈이, 표밭 다져, 인기 표밭 관리, 표밭 다지기, 표밭 지키기, 표밭 훑기, 총선 표밭을 가다이렇게들 쓴다.


집토끼라는 말은 홍준표-김진태, 집토끼 부르고 산토끼 손잡는 대선전략 성공할까’, ‘등돌린 집토끼애타는 경인 대선주자들’, ‘바른정당, 영남권 경선 토론회집토끼표심경쟁’, ‘유승민·남경필 집토끼공략 양보 없는 설전이렇게 쓴다.


표밭이라는 말과 집토끼라는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란 무엇인가. 그냥 두면 쓸모 없는 황무지가 되었을 땅을 농부가 부지런히 갈고 거름 주고 가꾸고 하여 작물이 자랄 수 있는 곳으로 바뀐 곳이다. 논도 마찬가지다. 보리고추옥수수 따위 작물을 잘 길러내던 밭도 한두 해만 내버려두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작물은 잡초 속에 파묻혀 버린다. 밭이란 이렇다. 가물 때는 물을 주고 때맞춰 지심을 뽑아주고 거름과 비료를 알맞게 주어야 밭의 구실을 다하게 된다. 밭 스스로 잡초를 뽑아내고 물길을 내어 오고 기름지게 하는 건 보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밭의 소중함을 느끼지만 밭의 어쩔 수 없는 수동성도 본다.


선거에서 흔히 쓰는 표밭이라는 말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이 특히 높은 곳을 말한다. 선거에 나선 선량들이 애터지게 정성 들이지 않아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는 지역을 말한다. 처음에는 그러한 지역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표밭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집토끼란 무엇인가. 토끼는 온순하고 약한 동물의 상징이다. 고전소설 <토끼전>에서는 용왕을 속이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온순하고 약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육식동물이 잡아먹으려 달려들면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무리를 지어 대항하지도 않는다. 풀 뜯어 먹으며 깡충깡충 뛰어다니다가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먹히는 신세다. 야생 토끼도 그러할진대 집토끼야 오죽할까. 주인이 가져다 주는 먹이만 열심히 먹다가 때가 되면 죽는 존재다. 그 어떤 가축보다 온순하고 얌전하며 수동적이다. 선거철만 되면 자신의 정당을 지지해 주는 유권자를 집토끼에 비유하는 정치인과 언론이 너무나 많다.


표밭, 집토끼라는 말에서, 정치꾼들이 유권자와 지역민을 아주 수동적인 으로 보고 말 잘 듣는 집토끼로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표밭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는 언론들도 지역주민이자 유권자를 스스로 주인의식권리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수동적인 밭으로 보는 게 아닌가. 밭으로 인식되는 일반 유권자들은 수동적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출마자들이 다가와서 정책을 이야기해 주고 정치를 설명해 주고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어야 비로소 깨도되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다. ‘집토끼라는 말에서 스스로 자기 무리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함과 수동성 같은 것을 읽는다.


이런 말 속에서 정치인들이, 언론들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떤 정치인이, 어떤 언론이 이런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것을 보고 비판 의식 없이 그대로 따라하는 정치인과 언론 때문에 이런 재수 없는 말들이 자꾸 번져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한바탕 선거전을 치르는 동안에는 어쨌든 밭둑을 자주 밟던 선량들이 선거만 끝나고 나면 나몰라라 하고 내팽개쳐 버리는 밭, 묵정밭이 되고 황무지가 되어버리는 밭, 그렇게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농부의 발길만 기다리는 밭, 그 밭이 유권자라는 것 아닌가. 밭이 농부를 부르겠나, 씨앗을 뿌리겠나, 비를 오게 하겠나. 밭은 다시 묵묵히 몇 해 뒤 선거를 기다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토끼 역시 선거만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더 이상 정치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먹이를 주면 열심히 받아 먹고, 잡아 먹으려고 하면 잡아 먹히고 마는 존재로 인식되고 만다.


선거가 다가오면 허리를 숙이고 얼굴엔 미소를 띠며 무엇이든 다 해줄 듯하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배를 쑥 내밀고 헛기침을 하며 상전노릇을 하는 선량들을 본다. 그들이 바라보는 유권자란 4년 또는 5년에 한번씩 뭔가 챙겨주는 척하면 줄래줄래 따라붙는 사람일 뿐이다. 농부가 야산을 개간하여 옥토로 바꾸는 과정의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국민을 생각하고 유권자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역대 선거 투표율을 본다. 이 투표율을 보면 어쩌면 국민들이 이라는 말을 들음 직하다는 생각도 든다. 국회의원 선거를 보면, 17대 국회의원 선거(2004)60.6%, 18대 국회의원 선거(2008)46.1%, 19대 국회의원 선거(2012)54.2%였다. 전국동시지방선거(도지사시장군수 뽑는 선거)도 본다. 2006년 선거에서는 51.6%였다가 2010년 선거에서는 54.5%, 2014년 선거에서는 56.8%로 높아졌다. 아주 희미하지만 희망을 본다고 할까. 그렇지만 이런 정도의 정치 참여도를 보여주는 유권자, 국민이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표밭, 집토끼같은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며 무시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투표율이 얼마나 되어야 만족할 만한 수준의 정치 참여율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 지역주민, 유권자들이 정치꾼으로부터 또는 언론으로부터 표밭, 집토끼라고 비아냥당하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정치 참여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선거가 끝난 뒤 나몰라라 하고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내팽개치는 정치꾼들은 주민소환을 통하여 바꿔버릴 수 있어야 한다. 선거 기간에 했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는 배신자에 대해서도 유권자의 이름으로, 국민의 마음으로 배지를 뺏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해나갈 때 유권자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감히 표밭이나 집토끼에 비유하는 버르장머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6.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