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어’라는 말이 몹쓸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퍼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를 ‘이미 점령했다’고 하려다가 적어도 나는 아직 이 말을 한번도 하지 않았으니 ‘퍼지고 있다’고 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나날살이에서 ‘케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몹쓸 전염병’이라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이 말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온다. 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검색을 해 보면 왕거미 똥구멍에서 거미줄 나오듯 쏟아진다. 건강과 관련 있거나 음식과 관련 있는 상품, 화장품 들에 ‘케어’가 넘친다. 사회복지 관련 업체의 이름에도 이 말은 흔하게 쓰인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80세 이상 노인을 케어하다’, ‘눈가 주름, 낮과 밤을 나눠 케어하다’, ‘봄 화이트닝 케어를 시작해’, ‘블루베리, 젊음을 싱글케어하다’, ‘나에게 맞는 두피 케어로 탈모 고민 벗어나자’, ‘임플란트 환자의 마음까지 케어하다’, ‘초미세먼지 경보…먼지케어 가전 인기’, ‘고객의 가치를 높이고 고객을 케어하는 직원을 존중하게 되고’, ‘나만의 피부 케어 꿀팁도 갖고 있어’, ‘○○케어서비스, 비데렌탈 티켓몬스터 오픈’, ‘예민하고 메마른 피부, 완벽한 케어에 도전’, ‘희귀난치성질환자의 일상생활까지 케어하다’, ‘스마트케어 새로운 광고 선보여’, ‘케어캠프, 알츠하이어 치매 진단’, ‘동물 보호 케어’, ‘셀프 홈 케어’ 끝없이 나온다.
‘케어’는 무슨 뜻일까. 이런 말에서 ‘케어’는 어떤 뜻으로 쓰였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케어’(care)는 마음쓰다, 보살피다, 돌보다, 관리하다, 상관하다라는 뜻이다. 명사로 쓰일 때는 걱정, 근심, 불안, 우려, 심려, 걱정거리, 돌봄, 간호, 보호, 시중듦, 감독이라는 뜻이다. 손질, 유지 관리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 뜻을 보니 ‘케어’가 대강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80세 이상 노인을 케어하다’에서 ‘케어’는 ‘보살피다, 돌보다’는 뜻이다. ‘두피 케어’, ‘피부 케어’에서는 ‘손질, 관리하다’에 가깝고, ‘고객을 케어하는’에서는 ‘마음쓰다, 관리하다’에 가깝다. ‘마음까지 케어하다’에서는 ‘마음쓰다, 보살피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에 걸맞은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어하다’보다는 우리말이 더 뜻이 정확하고 분명하다. 그만큼 쉽다.
잘 모르겠는 것도 있다. ‘먼지케어’에서는 어떤 뜻일까. 설마 먼지를 보살피고 관리하지는 않겠지. 먼지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는 뜻일 텐데 쓰임이 맞는지 모르겠다. ‘케어캠프’는 어떤 캠프일까. ‘스마트케어’는 무슨 말일까. 알 듯 말 듯하다. 많은 보기글 가운데 대부분은 뜻을 알겠는데 몇 가지는 알쏭달쏭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잘들 말하고 잘들 알아듣는가 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케어’는 왜 ‘몹쓸 전염병’이 되었는가. 첫째 멀쩡하게 있는 우리말을 자꾸 밀어내기 때문이다. 케어가 널리 쓰일수록 우리말 마음쓰다, 보살피다, 돌보다, 관리하다, 상관하다가 사라지게 된다. 이대로 간다면 이런 우리말이 모두 ‘케어하다’ 하나에 잠식당할지 모른다. 나는 그런 것을 걱정하는 편이다. 둘째 많은 사람이 뜻도 모르고 어룽어룽한 짐작만 가지고 말을 하게 된다.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마음을 쓰는 정도로 하겠다는 것인지,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모른 채 뭉뚱거려서 케어하겠다고 하면 서로 알아듣고 넘어가게 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셋째 ‘케어’라는 말을 늘상 쓰면서 사는 사람과 거의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 벽이 생긴다. 마치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이 처음 만난 듯이, 마치 고구려 시대 사람이 현대 사람을 처음 만난 듯이 마주 이야기가 되지 않게 된다. 이 또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말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이런 경우에 씀 직하다. 나는 ‘말의 민주화’라는 개념에 대하여 자세히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왜곡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 오늘 한 말이 내일 다른 뜻으로 해석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오랜 세월이 흐르면 뜻이 바뀌기도 하겠지만),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나 적게 한 사람이 쉽게 마주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들이라고 생각한다. ‘말의 독립’도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한쪽에서는 ‘말의 세계화’도 주장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겠다.
‘케어’라는 말을 버릴 수 있을까. 이미 늦지 않았을까. 나 같은 사람은 ‘케어’라는 말이 귓가에서 모기처럼 자꾸 엥엥거리고 입안에서 모래처럼 버석거리는데 다른 많은 사람은 달달하고 미끈하게 잘 받아들여질까. 이 말을 쓰지 말자고 하면 그에 마땅한 우리말을 찾지 못해 외려 허둥대지나 않을까. 우리말이 몹쓸 전염병에 걸렸다. 마음쓰고 보호하고 관리해 줄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케어’로는 절대 안 된다.
2016.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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