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있는 텔레비전 연속극 한 편이 온 국민의 말투를 버려놨다. 정치하는 분들도, 가정주부도, 학생들도 모두 이 연속극에 나오는 ‘대화체’를 따라하느라 정신이 없다. 유행이다. 유행의 정도를 넘어 아예 집단적으로 큰병에 걸린 것 같다. 바로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군인 말투인 ‘~지 말입니다’가 그것이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고, 읽을 때마다 눈이 따가운데 많은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은가 보다.
1989년 군대 갔을 때 훈련 조교들이 “군대에서는 다, 나, 까만 쓴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주로 상급자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다, 나, 까’로 끝맺으라는 뜻이었다. 사회에서 흔히 쓰는 ‘했어요’, ‘했는데요’와 같은 말을 군대에서는 쓰지 말라는 것이다. 엄격한 규율과 규칙, 기강에 의하여 움직이고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군대의 특성상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미리 완전한 문장을 머릿속에 써 놓고 대화할 때는 ‘다, 나, 까’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응겁결에 말해야 하는 상황은 뜻밖에 자주 생겨났다. 나도 모르게 “~했는데요”라고 말했다가 면박을 당하거나 꾸지람을 들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말을 ‘다, 나, 까’로 끝맺는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골똘히 생각해 본 적도 있다. 1991년 제대한 뒤에도 이 말투가 한동안 귀찮게 따라다녔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희한하다고 생각한 건, 분명 “했습니다”로 말할 수 있는데도 “했지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가령 “이 상병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을 “이 상병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지 말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 이런 말투를 들었을 때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도 이번 훈련에 참가하겠습니다”라고 할 것을 “저도 이번 훈련에 참가해야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참가하는 게 자기의 뜻인지 아닌지 애매해졌다. 높임말인지 반말인지도 불분명하다.
지금 많은 국민들이 연속극 ‘태양의 후예’ 한 편을 보고 이 ‘말입니다병’에 빠져 있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 가지 않은 사람, 군대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여성들까지 ‘말입니다’를 쓰느라 정신이 없다. 덩달아 텔레비전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렇고, 신문의 기사 제목에서도 따라 쓰느라 아주 혼이 빠졌다. 유행을 넘어 정신병 같다고 말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꽃청춘’ 4인방 어린시절 모습 공개…깜찍하지 말입니다(스포츠동아), 성인 70%, 숨막히는 군대 문화 “아직도 남아있지 말입니다”(경향신문), 유라, 서준이와 깜찍셀카 “사랑이지 말입니다”(일간스포츠), 서강준X서프라이즈, 여심저격이지 말입니다(스포츠동아), ‘한류스타’ 송중기, 참 피곤하지 말입니다(스포츠서울), “서천 주꾸미 축제 45만명 왔지 말입니다”(백제 뉴스), 상무가 우승했지 말입니다(스포츠동아), 내가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이지 말입니다~(아시아경제)
정치꾼들이 만든 포스터에도 이런 말투는 넘쳐난다. ‘○○○ 잡을 저격수 ○○○지 말입니다’, ‘비박 잡는 저격수, ○○○지 말입니다’ 이런 식이다. 그냥 ‘○○○입니다’라고 하면 간단명료한 말을 저렇게 비트는 건, 텔레비전 연속극 하나가 인기를 끄니까 거기서 쓰는 말투를 흉내내어 관심을 좀 끌어보자는 꼼수 아니겠나 싶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먹혀드는지 모르지만, 다른 일부 사람들에겐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특히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신 나간, 얼빠진 사람으로 욕 듣기 딱 좋게 생겼다.
‘깜찍하지 말입니다’는 ‘깜찍합니다’ 또는 ‘깜찍하네요’ 또는 ‘깜찍하군요’라고 하면 된다. “아직도 남아 있지 말입니다”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또는 “아직도 남아 있네요”라고 하면 된다. “사랑이지 말입니다”는 “사랑입니다” 또는 “사랑하는 사이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참 피곤하지 말입니다’는 ‘참 피곤합니다’ 또는 ‘참 피곤하군요’라고 하면 된다. “45만 명 왔지 말입니다”는 “45만 명이나 왔습니다” 또는 “45만 명 왔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우승했지 말입니다’는 ‘우승했습니다’ 또는 ‘우승했답니다’라고 해도 된다. ‘주인공이지 말입니다’는 ‘주인공입니다’라고 하면 된다. 바꿔 말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훨씬 부드럽다. 훨씬 우리말답다.
아무 생각없이 ‘~지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어법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일반 사회에서는 내버려도 될 ‘군사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침 군대에서도 ‘~요’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하지 않는가. 국방부는 경직된 병영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 나, 까 말투 개선 지침’을 일선 부대에 내려보냈다고 올 2월 24일 밝혔다. 국방부는 다, 나, 까란 군기를 세우기 위해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정중한 높임말을 사용하도록 한 데서 생겨난 독특한 말투라면서 “기계적인 다, 나, 까 말투를 상황과 어법에 맞게 개선해 사용하도록 교육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생활관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비공식 자리에서는 ‘~요’로 말을 맺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연속극이 인기를 끌면서 이상한 말투가 온 나라에 퍼져버렸다. 제발 말을 쉽고 편하게 하자. “나는 밥을 먹었습니다”라고 말하면 될 것을 “나는 밥을 먹었지 말입니다”라고 하지 말자. “아버지, 저 돈 필요해요. 용돈 좀 주세요”라고 말할 것을 “아버지, 저 돈 필요하지 말입니다. 용돈 좀 주시지 말입니다”라고 하지 말자. ‘~지 말입니다’가 한때 유행이겠거니 싶어 두고 보려다가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어 한마디 해 둔다. 모두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2016.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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