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라는 말이 있다. 영어다. 지금은 외래어라고 해야겠지. ‘어떤 분야의 전문가 몇 명이 특정한 과제에 대해 행하는 연수회나 강습회’를 세미나라고 한다. ‘대학 등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공동으로 토론하고 연구하는 교육 방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물 좀 먹은 사람 치고 ‘세미나’라는 말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포지엄’이라는 말도 있다. 역시 영어라고 생각한다. 외래어가 되었음직 하다. ‘어떤 논제에 대하여 다른 의견을 가진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각각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토론회’를 말한다. 세미나가 전문가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라면 심포지엄에는 ‘일반’ 참석자가 있다는 게 다른 점인 듯하다. 역시 대학이나 연구기관, 정부기관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주 쓰는 말이다.
‘포럼’이라는 말도 쓴다. ‘토의의 한 방식으로서 사회자의 지도 아래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간략한 연설을 한 다음, 청중이 그 내용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세미나와 심포지엄과 다른 듯하면서도 딱히 어떻게 다른지 조금 궁금해진다. 포럼은 이런 종류의 행사를 가리키기도 하고 어떤 정치적ㆍ학술적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로도 곧잘 쓴다. ‘남강포럼’, ‘미래포럼’ 이런 모임을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컬로퀴엄’이라는 말도 아주 간혹 듣는다. ‘발제자가 주제에 대해 발표한 다음 여러 참여자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는 연구 모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점점 어려워진다. 말 뜻을 듣고 보니 머릿속에 대강의 그림이 그려지긴 하는데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과 어떻게 다른지는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를 ‘콜로키엄’이라고들 말해왔는데, 정확한 표기는 ‘컬로퀴엄’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퍼실리테이션’이라는 말도 있다. ‘회의 진행자가 그룹토의를 이끌어가는 토론의 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말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다. 이 말은 들어보거나 읽어본 사람보다 난생 처음 본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 말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이나 학술단체 들에서는 이 말을 더러 쓴다.
‘워크숍’은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서 학자나 교사의 상호 연수를 위하여 열리는 합동 연구 모임’이다. ‘콘퍼런스’는 ‘어떤 화제에 관해 협의하는 사람들의 모임 또는 회의’라고 한다. 과학이나 학계에서 연구자들이 연구 활동과 성과, 공동 연구, 연구 결과 등을 발표하는 공식적인 회의는 아카데믹 콘퍼런스라고 하고, 사업이나 기업 관련 문제에 대한 토론과 회의는 비즈니스 콘퍼런스라고들 하는가 보다.
이런 말들을 무조건 우리말로 바꿔 쓰자고 하긴 어렵겠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딴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 보고 배운 토론ㆍ발표 등의 한 방식을 우리나라에서 따라 해 보는데, 그 나라에서 쓰던 말을 갖고 오긴 쉬워도 이것을 우리말로 뭐라고 할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 컬로퀴엄, 펄실리테이션, 워크숍, 콘퍼런스 같은 행사를 주관하는 분들은 과연 그 개념 차이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제 우리말을 찾아볼 차례다.
먼저 ‘토론회’는 ‘어떤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한다. 꼭 옳고 그름을 논의하기 위한다기보다 어떤 문제의 대안을 찾아가기 위한 자리라고 보는 게 낫겠다. ‘설명회’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관하여 잘 알 수 있도록 모인 사람들에게 밝히어 말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발표회’는 ‘연구 또는 창작의 결과 따위를 여러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거나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다. ‘공청회’는 ‘국회나 행정 기관, 공공 단체가 중요한 정책의 결정이나 법령 등의 제정 또는 개정안을 심의하기 이전에 이해 관계자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공식 석상에서 의견을 듣는 제도’라고 한다. ‘연수회’는 ‘학업이나 직무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거나 훈련하기 위한 모임’이다. 잘 쓰지는 않는 말이지만 ‘집담회’라는 것도 있다. 우리말이라고 했는데 누군가는 “이게 우리말이냐?”며 따질 만하다.
이 몇 가지 개념을 놓고 살을 붙여본다. 토론회, 발표회는 정책 또는 학술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설명회, 공청회는 정책이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토론회와 발표회는 여러 기관ㆍ단체의 참가자들을 경쟁시킬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토론대회, 발표대회가 된다. 학술적인 것으로 겨루면 학술토론대회, 학술발표대회가 되겠지. 연수회는 토론회, 발표회, 설명회, 공청회와 조금 다른 것 같다. 주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즉, 공부만 할 것 같다.
이 몇 가지 개념만 있으면 어지간한 행사는 다 갈음할 수 있다고 본다.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세부적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한 명이 먼저 발표하고 난 다음에 여러 참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든, 여러 명이 연이어 발표한 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든 그것은 곁가지일 뿐이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엽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구분하여 새로운 개념을 들이대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는가 싶다.
다시 맨앞에 언급한 외래어들의 뜻을 읽어 본다.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 컬로퀴엄, 퍼실리테이션, 콘퍼런스의 뜻풀이에는 모두 설명, 토론, 발표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이런 행사들은 모두 설명회, 토론회, 발표회인데 그 진행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굳이 알아듣기 어렵고 개념도 흐릿한 외국말을 가져다 쓰기보다, 상대적으로 더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것이다.
2016.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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