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책을 내는 일이 잦다. 책을 낸 뒤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여는 행사가 ‘출판기념회’이다. 출판기념회는 출판사에서 책 홍보 목적으로 여는 경우가 많고, 더러 저자 자신이 마련하는 수도 있다. 가끔 가보는 편이다. 책을 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출판기념회에는 격려, 칭찬, 자랑, 박수, 노래, 축하의 말이 넘쳐난다. ‘기념회’라고 하면 좀 엄숙하고 딱딱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웃음과 즐거움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보아왔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출판기념회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더 좋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여 주기 위하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한다. 이름하여 ‘북 콘서트’라고들 한다. 콘서트란 보통 청중을 대상으로 음악을 상연하는 실시간 공연을 말한다. 그러니까 북 콘서트란 ‘책 출판을 기념하여 독자들과 만나 음악 공연을 배경으로 책을 소개하며 작가와 책에 관해 궁금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소통하는 자리’라고 할 만하다. ‘개그 콘서트’, ‘토크 콘서트’라는 것도 있고, 이외에도 무슨무슨 콘서트가 더러 열리는 세상이다.
북 콘서트가 ‘출판기념회’, ‘작가와의 대화’, ‘작가 낭독회’ 등과 다른 점은 음악 공연이 들어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책과 저자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와 음악이 어우러진 문화행사라고 해도 되겠다. 북 콘서트를 마련하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며 준비할 것이고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10년 전쯤의 일인 것 같다. 처음 ‘북 콘서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큰북, 작은북을 두들기며 노는 전통문화예술 공연을 떠올렸다. 그런 북과 콘서트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북은 북(鼓)이 아니라 북(book)이었다. 조금 놀랐고 부끄러웠다. 그런 기억이 있다. 요즘은 하도 듣고 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좀 이상하다.
출판기념회라고 하든 북 콘서트라고 하든 사실 똑같은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출판기념회에서도 얼마든지 음악을 가미할 수 있겠고 북 콘서트라고 해 놓고도 음악보다는 책과 저자에 집중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열린 홍창신 선생님의 ‘<인생역경대학> 출판기념회’도 내용으로 보자면 북 콘서트였으나(저자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은 10분 정도였고 나머지 긴 시간은 축하 노래와 춤 등으로 채워졌으니) 공식 행사 이름은 출판기념회였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왜 북 콘서트를 하면서 출판기념회라고 적어 놓았느냐’며 따지지 않았다.(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없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북 콘서트라고 하면 어쩐지 뭔가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조금 해본다. 우리말로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딱딱해 보이고 촌스럽게 보이지만 북 콘서트라고 하면 유식해 보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해 본다. 출판기념회라고 해 놓고 그 안에서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악기를 연주하든 그것은 출판기념회이다. 무대에 저자와 사회자가 올라앉아 책에 대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어도 그것은 출판기념회다. 그런 내용의 차이 때문에 자꾸 다른 말을 지어낼 필요가 있을까 고민해 본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본다. 책을 낸 것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행사를 가리키는 말로는 ‘출판기념회’ 하나로 충분하다. 이 출판기념회를 음악회(콘서트)처럼 할 것인가, 시낭송회처럼 할 것인가, (저자의) 강연회처럼 할 것인가, (저자와 사회자가 하는) 토론회처럼 할 것인가 하는 건, 출판기념회 ‘내용’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가령 <인생역경대학> 출판기념회는 저자의 친구들이 마련한 축하 노래와 춤의 잔치였다. 출판기념잔치였다. 출판기념한마당이었다. 출판축하잔치, 출판축하한마당이라고 해도 되겠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북 콘서트’라는 말을 버리자.”
2016.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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