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본다’. 어떤 기사나 칼럼, 사진은 ‘읽는다’. 나는 주로 오피니언 또는 여론 난에 실린 칼럼 또는 사설(社說)을 읽는 편이다. 사무실에서 신문을 펴놓고 있으면 꼭 노는 것 같다. 내 직업의 특성을 보면, 하루 종일 신문 보고 텔레비전 보고 있어도 노는 게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오피니언 칼럼과 사설들은 주로 화장실에서 읽는다. 하루에 한 편, 또는 두 편, 과음한 다음날은 세 편도 읽는다. 읽다 보면, 속이 시원해지는 촌철살인이 있고 동서고금의 정보도 보인다. 우리 시대 정치와 사회, 문화의 현상을 망라하고 정리하여 들려주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정치, 사회면에 보도된 기사만으로는 전후맥락을 잘 모르겠는데 사설을 읽으면 행간과 배경을 알게 되고, 칼럼을 읽으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설과 칼럼은 신문의 색깔, 즉 보수 또는 진보의 정도를 드러내주기 때문에 한 종류 신문만 보면 그 신문의 논조에 끌려가기 쉽다. 나는 지방지, 중앙지 가리지 않고 열대여섯 종류의 신문을 보고, 그 가운데 두세 개의 신문은 읽는다. 애써 균형감각을 가지고 골고루 읽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같은 종류의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나를 보곤 한다.
사설(辭說)이 길었다. 오늘 읽은 ‘경향신문’ 칼럼은 명쾌하고 통쾌하였다. 제목, 이야기 전개, 결론, 말하고자 하는 내용, 문장 모두 마음에 들었다. 특히 경쾌하게 끊어지는 문장은 이 분 글의 특징인데 본받고 싶다. 화장실에서 “이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무릎을 쳤다. 나는 이 분 글을 처음 보았다. 오늘 처음 글을 실은 게 아닐 텐데, 여태 내 눈을 벗어나 있었던가 보다. (‘경향신문’에는 1월 7일에 이어 두 번째 실었는가 보다.) 김경집. 이름이 낯설다. 사무실로 와서 잠시 짬을 내어 검색해 본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이 분이 이 세상에 내어 놓은 책이 35종이라고 한다. 책들의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정의가 밥 먹여 주나요?> <고장난 저울> <나이듦의 즐거움> <생각의 융합> <엄마 인문학> <청춘의 고전> <인문학은 밥이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대강 이렇다. 신문에는 그냥 ‘인문학자’라고 써 놓았는데, 알라딘에서는 ‘자신의 삶을 세 등분으로 나눠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 쓰며 살기를 꿈꾸고 있다. 현재 충청남도 해미에 있는 작업실 수연재(樹然齋)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삶의 세 번째 단계를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다.’고 소개한다. 느닷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분 책을 좀 사 읽고 싶어졌다. 일단 ‘경향신문’ 칼럼 이름이기도 한 <고장난 저울>을 장바구니에 넣어 둔다. 고장난 저울이 몰고 올 풍파와 시비와 오해를 잠시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장난 저울을 들고 서로 제가 옳다고 따따부따하고 있는 것이다, 싶다.
‘경향신문’ 김경집의 고장난 저울 읽기: http://goo.gl/GyZ2Li
알라딘 <고장난 저울> 소개글 보기: http://goo.gl/nj93HS
2016.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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