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는 즐거움

남경태의 가장 독창적인 역사 읽기 <종횡무진 한국사>

by 이우기, yiwoogi 2015. 8. 18.


작가 남경태는 <개념어사전>(들녘, 2006)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고, 엠비시 라디오에서 주말에 하던 <타박타박 세계사>를 통하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2007년부터 2014년 입원 직전까지 진행했다). 1960년에 태어났으니 나보다 일곱 살 많은데, 작년 1223일 병으로 타계했다. 53년을 살면서 3539권의 저서와 99106권의 번역서를 펴냈다. 실제 글 쓴 기간은 30년 남짓 되지 않을까. 우선 양만 보더라도 대단하다는 말이 나옴직하다.

 

먼저 그는 정말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동서고금 모르는 일이 없어보였다.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는 남경태를 가리켜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달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비교 사관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역사를 전달한다.”고 했다. 다른 데서는 그를 종합지식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가 쓴 종횡무진시리즈 5권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종횡무진 시리즈는 <종횡무진 한국사> 두 권, <종횡무진 동양사> 한 권, <종횡무진 서양사> 두 권이다. 나는 <종횡무진 한국사>(휴머니스트, 2015) 1권과 2권만 읽었는데도 그가 역사의 달인이라는 데 대해 백 퍼센트 공감하게 되었다.

 

<종횡무진 한국사> 두 권을 읽으면서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삼국지>, <임꺽정>을 읽는 것 같은 흥분이 가슴에 차올랐다. 한 권에 536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팔이 아프도록 들고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고조선에서부터 광복 후 남북분단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숨 쉴 틈 없이 들려준다. 한국사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간혹 서양사, 동양사를 들려주며 비교하고 분석하여 준다. 수백년 전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2010년대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이다. 외워서 시험 볼 게 아니라서 더 신나게 읽은 것 같다.

 

출판사에서 쓴 책 소개글이다. ‘한국사를 한민족이라는 단일민족의 역사로만 보지 않고, 한반도라는 지역적 틀에서 서술했다. 비판적 한국사의 입장에서 전 시대를 관통하며 우리 역사의 뒤틀린 부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종횡무진이라는 표제처럼 좌충우돌하며 자유분방하게 역사를 서술하면서도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수용하려 애썼다.” ‘종횡무진시리즈는 번역서를 합쳐 무려 145권을 저술한 남경태가 생전에 가장 애착을 보였던 저술이라고 한다.

 

남경태는 책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론 과거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과정이 바로 혁명인데, 우리 역사에서는 혁명이 없었기 때문에 참된 역사적 교훈을 얻은 적이 없다.” 가슴 섬뜩하게 와 닿는 말이다. “역사에는 지름길은 있을 수 있어도 비약이나 생략은 없다.”는 말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혁명으로 모순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원죄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올바른 역사의 비판이 행해질 때 그 걸림돌의 높이는 낮아질 것이며, 마침내 제거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남경태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 책에 실린 원고들을 다듬고 직접 머리말을 썼다고 한다. 그는 머리말에서 지금까지 인문학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많은 책을 번역했다. 무엇보다 종횡무진 시리즈만큼 애정과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인 책은 없다. 분량만도 전부 합쳐 원고지 1만 매에 달하는 데다 다루는 주제도 통사이기 때문에 많고 넓다. 앞으로도 이런 거대한 주제를 방대한 분량으로 엮어내는 작업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교열을 거쳐 한꺼번에 출간하는 것을 이 종횡무진 시리즈의 최종판으로 삼고자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를 통틀어도 동양사, 서양사, 한국사를 한 사람의 저자가 책으로 엮어낸 사례는 드물 것이다.”



 2015.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