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집 나간 책>은 책 리뷰 모음이다. 리뷰와 서평은 좀 다르다. 페이스북 친구 중 이종현이 언젠가 구별하여 정리해 놓은 것을 봤는데 못 찾겠다. 리뷰는 전체를 대강 살펴보거나 중요한 내용이나 줄거리를 대강 추려내는 것이다. 영어말을 써서 그렇지 독후감과 가깝다. 독후감이 주관적인 느낌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개인적인 글인 반면, 서평은 이러한 감상을 객관화하여 사회ㆍ문화적 맥락에서 공론화하는 글이므로 더 체계적이다. 이 책은 독후감 모음이다.
모두 쉰세 권을 소개했는데 나도 읽은 책은 네 권이다. 서민의 리뷰를 읽고 사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 책은 열두 권이다. 종류는 다양하다. 시집은 없다. 역사 관련 책도 안 보인다. 그외 국내외 소설, 에세이 들이다. 그의 독서 취향은 잡학다식 같다. 누군들 이 책에 소개된 쉰세 권 가운데 한두 권은 읽었을 것이고 두세 권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 책만 골랐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썼다. 서민이 기생충 학자인 줄로만 알았던 나 같은 사람은 그가 얼마나 지적이고 유머러스하며 또한 이성적인 사람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진보적 또는 좌파적이기도 하다.
책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얼마나 따분할까. 자기 어릴 적 이야기,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 자기 외모 콤플렉스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들을 하기도 하고 우리 정치이야기도 자주 한다. 정치이야기에서는 주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두 분이 욕을 듣는다. 평소 이 두 대통령을 존경해온 사람이라면 어리둥절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우리 정치 이야긴 왜 하는 거지?”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두 대통령이 우리 정치와 경제에, 특히 서민(庶民)들의 삶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이라면 그의 적절하고도 유쾌한 비유와 비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서민은 책머리에서 밝혀 놓았다. 읽다가 “이 자식 좌파잖아!”라며 부르르 떨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시라고.
다 읽고 나서, 서민이 소개한 책들 가운데 열두 권을 찾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든 건 다행일까. 집에 읽지 않은 책을 쌓아놓고도 다음에 뭘 읽을까 고민하며 ‘진주문고’나 ‘알라딘’을 기웃거리는 사람으로서는 퍽 다행한 일이겠다. 그렇지만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생충학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지만, 어쩐지 그의 책을 읽으면 관심이 생겨날 것 같고 평소 내가 기생충에 대해 조금씩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책은 3개 장으로 나뉜다. 사회-무지에서 살아남기, 일상-편견에서 살아남기, 학문-오해에서 살아남기. 무지와 오해와 편견에서 살아남는다면 누구든 훌륭한 인격인, 합리적ㆍ이성적인 지식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온갖 편법ㆍ불법ㆍ탈법ㆍ위법이 난무하고 차별ㆍ조롱ㆍ저주가 판을 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렷다. 중3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사막에서 살아남기, 빙하에서 살아남기, 정글에서 살아남기 등 살아남기 시리즈를 수십 번도 더 읽었다(만화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대체로 건강하게 잘 살아남아 있다. 우리도 무지, 편견, 오해에서 벗어나 정신이라도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고백하고 있지만 서민은 못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현관에 있던 대형 거울 앞에 선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왜? “어린 마음에 내가 아니기를 바랐으니까” 그런 그가 가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일간 신문에 칼럼도 쓴다. 칼럼을 읽으며, 정년을 앞둔 교수이겠거니 생각했다. 못생기고 나이도 많지만 글은 참 젊게 재미있게 쓴다 싶었다. 실제 얼굴을 봐도 그렇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검색해보니 그는 1967년 2월 4일생이다. 양띠다. 나? 나도 1967년 10월 20일생 양띠다. 거울 속 나를 보니, 벗겨진 이마와 흰색이 더 많아진 머리털... 이게 서민의 <집 나간 책>을 읽은 나의 리뷰다.
사 읽고 싶어진 책은 다음과 같다. 혹시 내 결혼기념일(6.14.)이나 생일(음력 10. 20.)에 선물을 주려면 이 책들 중 골라주면 좋겠다. 그전에 혹시 읽었는지부터 물어보면 더 고맙겠다. ^^
-고종석 <해피 패밀리> (문학동네, 2013)
-남경태 <종횡무진 한국사> (휴머니스타, 2015)
-니컬러스 애플리, 박인균 옮김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 (을유문화사, 2014)
-로라 힐렌브랜드, 신승미 옮김 <언브로큰> (21세기북스, 2014)
-안데슈 루슬룬드ㆍ버리에 헬스트럼, 이승재 옮김 <리뎀션> (검은숲, 2013)
-안정효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모멘토, 2006)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2013)
-이은조 <수박> (작가정신, 2014)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교양인, 2014)
-조승연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김영사, 2013)
-조준현 <19금 경제학> (인물과사상사, 2009)
-재키 마슨, 정영은 옮김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월컴퍼니, 2014)
2015. 5. 16.
5·16 군사 정변(쿠데타)은 1961년 5월 16일 새벽 3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소장 박정희, 중령 김종필, 소령 이낙선 등을 비롯한 육군사관학교 8기, 9기 출신 일부 장교들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과 사회의 혼란’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제6군단 포병여단, 해병대, 제1공수특전단 등을 동원해 청와대를 장악,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현대사 최대ㆍ최악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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