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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인생역경대학

by 이우기, yiwoogi 2016. 3. 19.



홍창신이라는 분이 있다. 진주참여연대 감사, <진주신문> 이사,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과 이사장을 지냈다. 본인은 이런 경력에 대하여 시민운동 근처에도 얼쩡거렸다고 말한다. 홍창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라고 여기겠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은 겸손함도 갖춘 훌륭한 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홍창신은 또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고 강좌 영화로 보는 세상을 잠시 열었고 2011년부터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일러 홍창신’, ‘홍창신 씨’, ‘홍창신 선생님이렇게들 부르나 보다. 나는 개인적 친분은 없다. 마주앉아 서너 잔 권커니 잣거니 해야 친하다 할 것인데 그럴 만한 인연은 아니었고, 감히 마주앉아 술잔을 들 처지도 못 되었다. 그냥 진주에 그런 어른 한 분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옛적 <진주신문>에 또는 요즘 <경남도민일보>에 싣는 칼럼을 읽는 정도였다. 나는 그를 홍창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불러왔다.

 

홍창신 선생님이 칼럼집을 내었다. 제목은 <인생역경대학>이다. 인생역경대학이 무엇이냐 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홍창신 선생님의 책에서 잠시 인용해 본다. 이 책 제목은 여기에서 따왔다.

 

샘 존스라는 사람이 저명인사 몇 명과 만나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초기 호텔에는 방명록이 있어 자기 이름을 적는 것이 관습이었단다. 모두 자기 이름 뒤에 신학박사’, ‘철학박사등의 시장 가격을 덧붙여 적었던바, 샘이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머뭇거리다 이름 뒤에 ‘L.L.L’이라 적어 넣었단다. 옆에서 지켜보던 신학박사가 말했다. “잠깐, , 잘못 쓴 것 같은데, 자넨 대학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잖나?” 그러자 샘이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 난 이래 봬도 인생의 역경이란 대학에 다닌 몸이오. 우리 대학의 색깔은 시퍼렇게 멍든 색이고, 구호는 아얏!’이지.” “그럼 'L. L. L'은 뭔가?” “그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운다(Learning, Learning, Learning)는 뜻이네.”(88~89)

 

홍창신 선생님은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20079월 이 글을 썼다. 신정아의 학력위조 논란으로 촉발된 이 일은 유명 연예인들에게로 번져갔다. 이창하, 강석, 윤석화, 심형래, 오미희, 이현세, 주영훈 등이 논란에 휩싸였다. 휩싸였다기보다 오랫동안 침묵해 온 자신의 학력의 비밀을 공개하여 언론에 보도되었다. 홍창신 선생님은 그들이 보여준 재능의 탁월함을 통해 얻은 즐거움으로 치자면 그들이 지닌 능력과 실력은 어느 족보 있는 학력과 맞장뜨더라도 뒤처지지 않는 것”(90쪽)이라며 인생역경대학을 졸업했음을 부끄러워하지 마라”(91쪽)고 다독인다. 홍창신 선생님의 글은 이런 식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은 영화배우 고 장자연 씨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처음 사건이 터졌다가 잠잠해진 지 몇 해 뒤에 어느 방송국에서 장자연의 편지를 발견했다며 떠들썩하게 보도하였고, 그 보도의 중심에 선 어느 일간신문에서 전면전을 선포하며 난리법석을 떨던 시기인 것 같다. 20114월이다. 홍창신 선생님은 한 사람이 모욕감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과 원인인 매니저와 31명의 명단을 주민번호를 쓰고 지문을 찍어가며 유서를 남겼다. 이건 남은 자들이 밝히고 바로잡아 달라는 목숨을 건 청원이 아닌가. 그 처절한 애원에 답하는 한국 사회의 상식에 절망한다. 지난해 유행처럼 회자하던 정의란 무엇인가? 약하고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힘 있는 자의 아랫도리를 덮어주는 것인가?”(104)라고 일갈하고 있다.

 

진주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라는 글은 201112월 쓴 글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시 여당 후보이던 나경원 현 국회의원을 당선시킬 목적으로 젊은 진주사람 몇몇이 작당하여 투표 당일 아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하여 직장을 출근하는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방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데 그 선거를 총괄하는 기관의 업무를 마비시키려 한 것이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 연루된 젊은 진주 사람은 당시 진주지역 어느 국회의원의 비서 또는 보좌관들이었다. 하여, 전국의 언론들은 날 밝으면 진주를 들먹였고, 어두워지면 다시 진주를 들먹였다.

 

홍창신 선생님은 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산 하나 넘고 골짝 하나 비껴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말 부림과 어조의 야릿한 변화가 사투리의 본색이다. 그 비서라는 청년이 뱉었다는 때리삐까예라는 영락없는 동향인의 묵은 냄새가 밴 어투를 보면서 가슴이 아릿했다. 몰상식의 극치를 달리는 이 시절을 견디는 99%의 대중도 그렇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은 진주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투표, 꼭 해야 하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교훈, 가슴에 담았을 것이다.”(122)

 

홍창신 선생님은 진주의료원 폐업과 관련하여서는 명색이 도민의 의료복지를 위한다며 만든 기관이 이윤창출에 매달려야 하느냐의 문제는 별도로 치자. 폐업 결정의 사유가 부채누적과 적자운영의 결과라 말한다면 최소한 관계된 종사자와 타 분석기관의 진단과 근사치라도 어울려야 납득할 일이 아닌가.”(157)라고 묻는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여직원이 인터넷에 댓글 공작을 벌인 사건을 보면서도 홍창신 선생님은 흥분하지 않고 찬찬히 조목조목 따져 물은 뒤 싸움은 불가피한 듯하다.”고 결론짓는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당은 이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을 향하여 그럼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인가라며 적반하장의 몽둥이를 들 태세이고 그 기세에 야당은 주눅 들고 말았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홍창신 선생님은 진주라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 살면서, 그 도시, 즉 진주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건을 놓치지 않고 그 속살과 이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중앙정계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협잡과 속임수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강준만과 김어준을 이야기하다가 창원 성산아트홀을 화제로 올린다. 택배 이야기라는 글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어느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의 문제점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기도 하고 김두관 지사의 출마를 반대한다며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정치평론을 하기도 한다. 진주시의 무장애 도시 선언에 대하여서도, 홍창신 선생님 스스로 장애인인 만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간다. 지난해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유료화하면서 가림막으로 축제장을 막은 진주시의 문화행정을 비판하는 글도 몇 꼭지 보인다. 이런저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특히 세월호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을 향한 쓴소리도 거침없이 토해낸다.

 

홍창신 선생님의 글은 신문의 칼럼으로 쓰였기 때문에 한 꼭지가 그리 길지 않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주장이 분명한데도 그다지 길지 않다. 그만큼 글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넘친다. 홍창신 선생님은 자신만의 분명한 문체가 있는데, 처음 선생님의 글을 대하면 약간 꺽꺽한 느낌이랄까 딱딱한 느낌이랄까 쉽게 읽히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한 편 두 편 읽다보면 홍창신 선생님 특유의 말맛과 글맛에 누구나 쉽게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한 말맛 글맛은 특히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1나의 진주 이야기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홍창신 선생님이 어릴 때부터 청년시절까지 보낸 진주의 모습과 풍경이 감칠맛 나는 표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가매못, 너우니, 뒤벼리, 제일극장, 진주극장을 비롯하여 솔티, 다솔사 등 선생님이 인생의 길을 찾아 바장이던 곳곳에 묻어 있는 추억을 들추어내는데, 우리는 그냥 선생님의 눈길과 발길을 부지런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2016318일 금요일 저녁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아트홀에서 <인생역경대학>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평소 선생님을 존경하던 친구들이 주최하였다. 출판기념회는 연예공연 같기도 했고 축제 같기도 했지만, 그 내면에 흐르는 저자와 관객의 가슴속 느그림(느낌의 그림자)은 진지하고 뜨거웠다. 보통 출판기념회에 가면 책을 한두 권 사게 되거나, 책값보다 두둑하게 봉투를 건네는 게 관례이다. 책을 내면서 많은 돈을 썼을 터이니 십시일반 보태라는 뜻일 수도 있고, 좋은 책을 내어 주어서 고맙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일부 정치권의 출판기념회를 제외하면 이런 장면은 미풍양속이다. 그러나 홍창신 선생님은 출판기념회에 온 모든 친구들에게 책을 그냥 선물하였다. 돈을 떠나서 홍창신 선생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어서 더욱 감사하였다. 나는 미리 책을 산 터여서 선생님의 사인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다가, 나중에 나올 때 주위에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건네주려고 한 권 더 가져 왔다.

 


이제 이 책 <인생역경대학>을 읽어야 할 사람을 거론해 볼 차례다.

먼저, 홍창신 선생님을 아는 사람은 꼭 사 볼 것을 권한다. 책을 읽다 보면, 겉으로 알고 있던 선생님과 사뭇 다른 강단지고 해학 넘치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홍창신 선생님이 거론하는 지역 또는 중앙의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에 대하여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생각이 달라지게 된 이유를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다른 생각을 어떤 논리와 근거로 설파하는지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다음, 홍창신 선생님과 생각이 같은 사람도 읽어야 한다.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도 때로는 에둘러치기도 하고 때로는 직격탄을 날리기도 하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결코 가벼이 넘기지 않는 홍 선생님의 치밀함을 배워야 할 것 아닌가. 다음, 스스로 인생역경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이 책을 사 읽어야 한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인생역경대학의 설립자는 누구이고 학생은 누구인지, 그 학생이 학점을 따는 방식은 어떠한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인생역경대학을 졸업한 우리가 서울대, 하버드대 나온 사람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읽어내어야 할 것 아닌가. 다음,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따위 망령 깃든 신조어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은 읽어야 한다. 홍창신 선생님께서 말하셨듯 죽창이 투표로 대체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의당 선거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데 대해 동의한다면 오는 413일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인생역경대학>을 읽어야 한다. 다음, 이 모든 게 다 귀찮고 세상 살기도 만사 귀찮은 사람도 한 두 편의 글만이라도 읽기를 권해 본다. 혹시 알겠는가.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게 될지.

 

홍창신 선생님은 출판기념회에서 말했다. “나는 그냥 궁시렁거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궁시렁거리면 그 궁시렁거림은 함성이 된다.”

 

사족. 어쩌다 이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먼저 교정을 보는 영광을 얻었다. 처음엔 빨간색 볼펜을 들고 두 눈 부릅뜨고 교정을 보려고 달려들었는데 하다 보니 내용에 빠져들어 흥미진진하게 마치 무협지를 읽듯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냉정을 되찾으려 했으나 시일이 넉넉지 않아 아쉬웠다. 이렇게라도 변명 몇 마디를 덧붙여 놓아야 할 것 같다.

 

2016.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