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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

소소책방에 가다

by 이우기, yiwoogi 2016. 2. 10.

헌책서점 소소책방에 갔다. 닷새 연휴 마지막 날을 뜻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아니다. 아내와 광명곱창에서 먹은 생대구탕 소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건너편에 있다가 귀빈예식장 옆 골목 안으로 이사를 했다 하여 위치라도 알아놓자 싶어 간 것이라고 해둘까. 집 거실에 차고 넘치는 책 가운데 미처 읽지 못한 책이 대부분인데 책을 더 사서 어쩌려는가 싶은 생각을 자주 하는 터에, 마지막 쉬는 날 오후에 책방이라니, 그것도 헌책방.

 

귀빈예식장에서 경남문화예술회관 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좁은 골목으로 꺾어들자 소소책방이 보인다. 거기쯤에 있으려니 하고 작정하고 찾아갔기에 망정이지 길눈이 어두운 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싶도록 눈에 띄지 않는 모양새다. 그래도 거기에 소소책방이 새로운 터전을 잡고 앉아 있는 게 반갑고 신기하다. 고맙기도 하여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가면 콧수염쟁이 쥔장의 웃음과 옅게 번져 나오는 커피 냄새, 그리고 곳곳에 묻어 있는 헌책 먼지 냄새가 정겹던 곳.

 

책은 많이 줄었다. 듣자 하니 이전에 있던 곳에서 계단까지 점령하고 있던 책들 중 대부분 처리했다고 한다. 버린 것도 있고 그사이에 새 주인을 찾아간 책도 많단다. 옮긴 서점이 좁아 뒤편 창고에 쌓아 놓은 것도 더러 있다. 전에는 소소에 가면 내가 찾는 책 대부분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소소에 가면 헌책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기다리는 좋은 책이 있겠구나.’ 싶어진다. 그러니까 내부 공간은 많이 좁아졌는데 그만큼 책의 양은 줄었고 질은 높아진 것이다. 주인은 이를 발전이라고 말하고 싶은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변화로 받아들인다.

 

헌책뿐만 아니라 몇몇 종류의 책은 새 책도 취급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가령 사진, , 서점과 관련한 종류라고 하는데 아직은 갖춰놓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이전개업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커피 한 잔에 2500원 한다. 아내와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씩 들고 이리저리 오가며 책 구경을 한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몇 권을 산다. 촘스키 저작 선집 한 권과 양귀자 소설 한 권과 일본어 교재 한 권이다. 3만 원 남짓이다.

 

소소책방 일지는 멀지 않아 둘째 권이 나올 모양이다. 어떤 내용으로 언제쯤 나올지는 모르겠다. 대강 설명을 들었지만 내가 밝힐 일은 아니다. 다만 잔뜩 기대를 하고 있어도 전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뚜렷하다. 손바닥 소설 모임은 좀 다른 형태로 전환한 모양이다. 이 또한 궁금하던 부분이긴 하지만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것은 아니다. 다만 얇은 두 번째 책이 소소책방 한가운데서 눈 밝은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분명하다좁은 공간이지만 스무 명 남짓 모여 토론하거나 강의하거나 하여튼 그런 모임도 추진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소소책방은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봄에는 모든 게 새로워지고 설레고 부풀어 오르고 뛰어다니게 되니까. 봄에는 조금 느려도 괜찮고 조금 앞서가도 나무라지 않으며 모른 척하고 낮잠을 자도 아무렇지 않으니까. 소소책방이 기다리는 봄은, 지금쯤 촉석루에서 바람으로 불고 있고 건너편 대밭에서 설렘으로 흔들리고 있고 남강물 위에서 기다림으로 하늘하늘 나부끼고 있는 듯하다.

 

손님은 이어진다. 우리가 갔을 때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있었고 우리가 나오려고 할 때 대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 낮은 소리로 떠들고 커피를 시켜 먹고 애들에게 책 구경을 하게 하고, 그러고들 논다. 햇살 포근한 연휴 마지막 날 오후 소소책방에서 아련하면서도 구체적인 꿈같은 것을 보고 왔다. 느끼고 왔다. 고맙다.


주인장 조경국 씨. 나는 그의 웃음이 참 맑다고 생각한다. 저런 맑음으로 어두운 세상을 어찌 살아나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오랜만에 소소책방에 가서 책 세 권을 샀다. 두 권은 내 것이고, 한 권은 아내 것이다.


다음에 가면 임종국 선생님의 책 <친일문학론>을 살 것이다. 찜 해둔다. 


또 다음에 가면 <유대인 이야기>도 사고 싶다. 궁금증이 일어난다.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