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2015년 보내고 2016년 맞이한 이야기

by 이우기, yiwoogi 2016. 1. 1.

연말연시에 큰형 아파트에 모여 떠들고 논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아버지 계실 때부터였으니 예닐곱 번은 되지 않을까.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며칠 전부터 어디서 모일까, 밖에서 모일까, 안에서 모일까, 언제 모일까, 연말에 모일까, 연초에 모일까, 무엇무엇 먹을까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올해도 큰형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귀찮을 텐데도 온식구들에게 집을 통째로 내어주는 큰형과 형수님이 고맙다. 날짜는 1231일이 좋았다. 창원 사는 작은형 가족은 사업 관계로 못 오게 되었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1박 준비물을 챙겨 어머니 모시러 옥봉으로 갔다. 예전에는 너거끼리 놀아라.”며 싫다 하시던 어머니는 요즘은 두말없이 따라 나선다. 초전동 푸르지오로 가려면 말티고개를 넘어야 할 것인데 뒤벼리로 간다. 자유시장 근처 막썰어횟집에 큰형이 주문해 놓은 회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3만 원짜리 2개와 매운탕거리를 챙겨오라는 큰형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연말이라 차는 많았고 신호는 짧았다.

 

610분쯤 도착하니 배가 고픈 큰형과 다행스럽게 일찍 일을 마친 형수가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 형수는 시장에서 과메기를 사왔다. 과메기와 딸려온 미역, , 마늘, 고추, 초고추장을 벌이고, 회와 같이 온 초장과 상추, 된장, 고추냉이를 펼친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얻어왔다는 겨울배추도 씻는다. 조카는 젓가락을 놓고 나는 소줏병과 소줏잔을 나른다. 아내는 큰형이 사 놓은 닭을 닭매운탕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주물럭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다들 실력발휘하는 날이다.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정신없다. 연말 마감 때문에 늦는 동생이 오려면 더 기다려야겠는데, 어머니도 형님도 나도 배가 고파 먼저 한잔하기로 한다. 동생 식구 몫으로 과메기와 반찬, 회와 반찬을 조금씩 덜어놓는다. 소주를 한잔씩 부어 건배한다. 대학생인 큰조카도 당당하게 소줏잔을 받는다. 그사이 들어온 작은조카도 소주에 맥주를 탄다. 나는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타서 작은 잔에 부어 먹는다. 형수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소주든 맥주든 주는 대로 먹겠다하고 폼을 잡는다. 다들 젓가락도 바쁘고 술잔도 바쁘고 입도 바쁘다. 웃고 떠들고 먹고 또 웃는다.

 

조카는 막내숙모에게 전화하여 사이다나 콜라나 아무튼 탄산음료를 사오라 한다. 동생가족이 도착한 듯하다.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도 한 단지 사온다. 올 사람 다 모였으니 다같이 건배를 한다. 작은형 가족 4명 빼고 12명이 모두 모였다. 12일 제대할 군인인 작은조카도, 22일경 소집 해제당할 큰조카도 모였다. 12월에 스페인까지 축구 연수를 갔다온 동생의 큰아들도 왔다. 밥상이 비좁고 자리도 좀 비좁다. 그사이 준비된 닭매운탕이 나오고 돼지고기 주물럭도 나온다. 맵다면서도 젓가락을 놓지 못하고 벌써 배부르다면서도 숟가락을 잡고 있다. 겨울배추가 고소해서 먹는다 하고 소맥이 시원해서 마신다 하고 배부르다며 뒤로 나앉았던 아들도 다시 붙어 앉는다.

 

중구난방으로 떠들기만 하면 뭐가 남겠나 싶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가 사회를 맡는다. 손뼉을 !’ 한 번 치고 눈과 귀를 불러모은 다음 큰형님부터 한 해 보낸 이야기, 새해 맞이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게 한다. 마지막엔 꼭 건배사를 하도록 한다. 그렇게 시작하여 큰형수, 어머니, , 동생, 아내, 제수씨를 거쳐 조카들까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송구영신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건강을 위하여는 가장 중요한 건배사이고 어머니는 ‘우리 며느리들 최고다라고 외친다. 아들은 전화기 바꿔달라는 말을 하고 축구스타 조카는 국가대표를 위하여라고 외친다. 막내의 막내, 그러니까 우리 집안의 가장 막내 초등 6년짜리 공주는 아빠, 담배 끊으세요라고 애교를 떤다. 어머니는 손자손녀들에게 용돈 2만 원씩 준다. 장손은 장손이라서, 둘쨋놈은 내일모레 전역하니까, 내 아들은 이제 고등학생이니, 동생의 아들은 축구 국가대표가 되라며, 막내는 막내라서 똑같이 2만 원씩이다.

 

소주 6, 맥주 3병 사놓은 게 턱없이 모자라 가까운 마트에 술을 더 배달시킨다. 안마의자에 순서 없이 앉아 10분씩 등과 허리 안마를 한다. 다음날 새벽 4시쯤 일을 나가야 하는 큰형수는 언제부터인지 안 보인다. 아들 방에 몸을 뉜 것이다. 내일 떡국에 넣을 것이라며 큰형이 꿩을 한 마리 장만해 왔는데 동생은 고기 덩어리가 너무 크다며 칼질을 하고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간장과 마늘 같은 양념으로 장조림을 한다.

 

군인 조카는 귀대 하루 전, 전역 이틀 전 밤을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옷을 갈아입고 나머지 조카들은 안방으로 들어가 카드놀이를 하고 며느리들은 연말 연예대상 시상식을 본다. 아들들은 좀더 가까이 모여앉아 술을 몇 잔 더 들이켠다. 아버지 산소 돌볼 이야기, 조카들 공부하는 데 도움 줄 이야기 들을 두서없이 한다. 잠시 정치 이야기도 나왔다가 다시 집안 이야기로 돌아온다. 1130분을 넘었고, 술은 취하고, 잠도 오고... 그렇지만, 다시 달걀말이를 하고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국으로 만들어 한잔 더 걸친다. 끓고 있는 꿩 장조림도 간 본다는 핑계로 몇 국자 떠서 안주로 삼는다. 냉장고 안에 있던 좋은데이 됫병도 불려나온다. 불콰하게 취한다.

 

서울 보신각에서 새해 종치는 모습을 본 뒤 하나둘씩 잠자리를 찾는다. 어머니와 큰형은 거실에 나는 소파에 며느리들은 큰방 침대에 자리를 잡고, 조카들은 작은 방 두 개에 제멋대로 나뉘어 들어간다. 내일 일출 보러 가자, 말자 하는 이야기도 한 듯한데 결론은 모르는 채 다들 베개를 붙든다. 아내를 불러 칫솔을 찾아 이만 닦고 소파에 누우니 오후 5시부터 예닐곱 시간이 꿈처럼 물처럼 흘러간 듯하다. 행복의 강물이 서서히 흘러간 듯하다. 서른여섯 평 아파트에 이 방 저 방 흩어지니 누가 어디에 누웠는지 모를 지경이다. 추억이 곳곳에 드러누워 코를 곤다. 

 

새벽에 큰형수 일 나가는 소리를 들은 듯하다. 누군가 화장실을 들락거린 듯도 하다. 550분에 내 전화기가 나를 깨운다. 잠시 뒤 또 누구의 전화기가 울린다. 또 잠시 후 다른 전화기가 정적을 깨운다. 아들은 잠자리에서 동생의 몸부림에 쫓겨 거실로 나온다. 큰형과 아내는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한 건 맞는 듯한데 네밀락내밀락 하다가 포기한다. 일곱 시가 그렇게 지나고 잠에서 온전히 깨고 보니 여덟 시가 넘어 있다. 해는 중천에 떴고 페이스북엔 전국 방방곡곡 일출의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새해가 되어 버렸다.

 

아내는 떡국 끓일 준비를 한다. 멸치로 국물 맛을 내고 달걀 홍백지단을 부친다. 배고픈 사람은 깨우고 잠이 귀한 조카들은 내버려 둔 채 일차 밥상을 차린다. 김치를 네 접시 펼치고 수저로 앉을 위치를 잡는다. 어머니부터 떡국 국물을 후 불면서 맛을 보고는 맛있다하시고, 큰형도 나도 동생도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떡국이 제대로이다. 웃음과 즐거움과 추억이 양념으로 들어가니 행복이라는 떡국이 만들어진다. 가장 큰 그릇을 내가 맡았고 마지막엔 밥을 말아 먹었다. 눈빛을 잠시 교환한 뒤 해장할래요?”라고 동생이 묻자마자 몇 잔 남은 소줏병이 저절로 걸어온다. 딱 한잔을 털어넣으니 얼굴부터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설거지 마치고 주섬주섬 챙겨 어머니 모셔드리고 집으로 오니 12시가 가깝다.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대문을 나서는데 그 뒤에 아버지가 팔짱을 낀 채 허허 웃고 계신 듯했다. 


 

새해 첫날, 이제 우리끼리 무엇을 먹을까 어디로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다. <응답하라 1988>1회부터 6회까지 잇따라 한단다. 이 연속극이 인기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한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터라, 잠시라도 볼까 생각하고 자세를 잡았다. 2회를 막 시작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저녁 밥 먹을 시간이던 730분까지 <8>에 푹 빠졌다. 웃다가 울다가 짠하다가 또 웃다가 또 울다가 그렇게 새해 첫날을 보내버렸다. 아들은 점심도 먹지 않고 나갔다가 해질녘에 돌아왔고 나는 2회와 3회 중간에 진짬뽕을, 아내는 3회와 4회 중간에 스낵면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렇게 하여서라도 6회까지라도 보게 된 게 참 행복하다 싶다.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일 생각 하지 않고, 오늘 일 내일 일 생각지 아니하고 펑퍼짐하게 퍼질러 앉아, 또는 뒹굴거리며 옛 추억 속으로 여행하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았다. 그 여행길은 차도 막히지 않고 인파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오로지 미소와 눈물이 뒤섞여 추억으로 남았을 뿐이다. 노래도 몇 곡 따라 불렀다. '청춘'은 따라 부르다가 말았다. 목이 메었다. 이런 새해도 좋다. 

 

2015년은 바쁘게 지나갔지만 뜻있는 일이 많았다. 몸이 좀 아프기도 했지만 견딜 만했다. 가족들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왔다.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행복했다. 우리 사회를 보며 분노하기도 했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표출하지는 못했다. 직장일도 바빴지만 바쁘므로 갑자기 쫓겨날 일은 없겠다고 위안했다. 계약직은 가끔씩 일터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꿈에서 만나기도 하니까. 친구를 많이 만났으나 못 만난 친구도 많다. 지난해에 못 만난 친구는 또 올해 만나면 되므로 걱정하지 않는다. 만나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애 태울 일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해도 화나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하여 짜증낼 일도 아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못 견뎌하며 폭발지경까지 간 적이 있지만 돌아보면 바보 같은 일이다. 귀가 순해질 나이는 아직 아닌데.

 

2016년에는 어떻게 보내게 될까. 나와 가족을 더 챙겨야 할 것이다. 어머니도 더 돌아보아야 하고 처갓집에도 챙길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직장 일은 점점 버거워질 것이다. 능력은 짜부라지는데 요구는 많아지고 커질 것이므로. 도망갈 궁리는 계속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하고 버틸 만큼은 버텨보자 다짐한다. 가계 살림살이도 녹록지 않게 될 것이다. 벌이는 거기서 거기인데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돈 나갈 구멍은 더 커지기만 한다. 지출을 줄여야 하고 술을 줄여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글을 계속 쓰지만 돈 되는 글 쓰기는 어렵겠지. 지난해보다 조금 더 정신차리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금 더 정신적 여유를 부리며 살아야겠다. 마음만은 부자로 살아야겠다. 새해니까. 

 

2016. 1. 1.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등학생이 된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0) 2016.03.04
목욕탕에서  (0) 2016.01.16
아침 출근길 작은 소란  (0) 2015.12.28
이런 뷔페  (0) 2015.12.27
200원  (0) 201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