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고등학생이 된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by 이우기, yiwoogi 2016. 3. 4.

아버지, 어머니보다 키가 큰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흐뭇하고 대견하다. 무얼 먹고 저렇게 자랐나 싶을 정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뭘 잘 먹지 않은 듯한데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고맙기도 하다. 그 큰 키로 주변을 한번 둘러보렴. 추운 겨울은 저만치 달아나고 따뜻한 봄바람이 우리 곁에 불고 있다. 아직 꽃샘추위가 한두 번 다가오기는 하겠지만 삼라만상에 봄기운이 가득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3월이다. 그러니 새 교복 입고 새 명찰 달고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우선 축하한다. 기나긴 인생을 놓고 보면 한 단계 더 도약한 것이니 축하해야 마땅하겠지.

 

다을아, 고등학교는 무엇하는 곳일까. 현실적으로는 대학을 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곳이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등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곳이다. 특히 진주지역 인문계 고등학교의 첫째 목표는 대학 진학이다. 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은 처음 목표로 정한 대학보다 조금 위에 있다고 여기는 대학에 입학하려고 3년 동안 피땀 흘려 노력한다. 어쩌면 전국 모든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일로매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혹 대안학교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고등학교를, 대학으로 가기 위하여 공부만 하는 곳이라고 말해 놓고 보면 뭔가 서글퍼진다. 열일곱에서 열아홉의 나이는 공부만 하는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를 살아가려면 대학이라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어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내가 고등학교를 다녀야 할 모든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멋지고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도 주변에는 많다. 그래서 고등학교 3년 과정을 좀더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다을아.

고등학교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곳이다.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인격체를 갖춘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은 시험문제로 출제되어 나의 학업능력을 평가하게 되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인류의 역사, 과학, 종교, 신념, 미래, 철학, 논리, 문화, 예술 등을 담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기도 하고 세계관을 열어주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직업도 보일 것이고 따라서 대학 학과 선택도 쉽게 눈에 보일 것이다. 무작정 교과서 외우고 문제집만 풀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바라보고 더 길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속에 미래의 내 모습이 보일 것이다.

 

고등학교는 좋은 친구와 잘 사귀는 시기이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등교하여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생활한다. 같은 반 친구들은 하루 14시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졸고 밥먹고 놀고 다투고 웃고 떠드는 사이다. 하루 세 끼 중 두 끼를 함께 먹는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이고 사촌보다 더 친밀한 존재가 된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평생 간다. 얼핏 보면 모두 대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경쟁자인 듯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한 탓이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경쟁자로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필요없이 많은 사람이 필요없이 높은 학력을 추구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불필요한 사람을 모두 대학에서 받아줄 수 없기 때문에 경쟁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대학을 가려는 고등학생들은 모두 자기의 취향과 적성과 성적에 따라 학과와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에, 굳이 경쟁자라고 하려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경쟁자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이 자기의 경쟁자이다. 그래서 같은 반에 있는 친구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경쟁자로 볼 필요가 없다. 그냥 친구이다. 평생 함께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친구이다. 친구가 무엇이냐. 부모가 다른 형제를 친구라고 한다.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지루하고 피곤하겠느냐. 그때 함께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두 손 잡고 함께 가자며 어깨 두드려 주는 사람이 곧 친구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아버지의 경험에 의하면 정말 오래간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든 3년을 함께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일까 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 현실적인 것보다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믿어볼 만하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바라보고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사람이다. 자기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신뢰감이 생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부정한 것을 용인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것이라도 부당한 힘에 대하여는 대항하는 의지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지.

 

사랑하는 아들아.

고등학교는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나와 이별하는 시기이다. 초등학생, 중학생은 부모님께 많이 의존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많아진다. 물론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모든 결정권을 갖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여 실천하여야 하는 시기가 고등학생이다. 행동도 마찬가지이다. 초, 중학생이 어리광을 부리고 게임에 몰두하며 늦잠을 자도 되는 시기였다면 고등학생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때이다. 아침 시간에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한번 부르면 일어나야 하고, 컴퓨터 게임과는 3년 동안 이별하여야 한다. 스마트폰도 반드시 필요한 통화와 문자이용 이외에는 갖고 놀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주중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국어교과서에 작품을 실은 작가의 시와 소설, 수필을 찾아 읽고 현재 베스트셀러로 읽히는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 고전도 읽어야 한다. 아니, 학교에서 추천하는 도서는 되도록 읽도록 하거라. 아마 많은 책은 이미 집에 있을 것이고, 없는 책이라면 즉시 사줄 준비를 하고 있을게. 어렵겠지만 한번 버릇 들이고 나면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사랑하는 다을아.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공부를 잘하여 우등상을 받는 학생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 다을이가 봉사활동을 많이 하여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는 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책을 많이 읽어 상상력이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잘 쓰는 학생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나중에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기보다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기보다는 지혜롭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사람이 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준비운동을 하는 곳이 고등학교이다. 잘 생각해 보거라.

 

학교에는 선생님이 많이 계실 것이다. 모든 선생님으로부터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는 어렵다. 어떤 선생님은 단지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이실 것이고, 어떤 선생님은 1년 동안 동고동락하는 담임선생님이 되실 것이다. 어떤 선생님이든 하시는 모든 말씀을 열심히 새겨 듣기를 바란다. 그러한 말씀 중에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가르침이 있으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여 보거라. 이 세상 모든 선생님은 제자들이 좀더 반듯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그 반대이기를 바라는 선생님은 없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또는 다른 단체 활동 시간에 해주시는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겨 실천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의 이야기는 뒤죽박죽이다. 두서가 없다. 그래도 잘 가려 읽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버지 이야기는 늘 좀 길다. 그것도 이해해 주겠지. 고등학생이 된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에게 아버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왕 시작한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보람 있고 즐겁게 지내주길 바란다. 그 속에서 아버지가 말한 것의 뜻을 새겨보고 실천하면서 청춘의 시절을 보냈으면 한다. 아들을 응원한다. 힘~!

 

2016. 3. 3.

아버지 쓰다.

'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점심시간의 나들이  (0) 2016.03.21
어젯밤 일기  (0) 2016.03.15
목욕탕에서  (0) 2016.01.16
2015년 보내고 2016년 맞이한 이야기  (0) 2016.01.01
아침 출근길 작은 소란  (0)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