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짜리 작은 아파트라서 주차장이 꽤 좁다. 한 가구에 차 한 대씩도 안 될 때 지은 아파트라서 그렇다.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고 대여섯 대 더 댈 공간을 확보했으나 좁긴 마찬가지다. 출근할 때 보면 이중삼중으로 대놨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나는 늘 차가 빠져나가기 좋은 위치에 대 놓는다. 바쁘기도 하고 그렇다고 곤하게 자는 사람 깨우기도 그러니까. 저녁에 한잔하고 대리 기사가 차를 몰고 와도 다음날 출근할 것을 생각해서 차를 대 달라고 한다.
어제 오후에 차를 쓴 아내가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차를 대놨다. 아침 7시 20분쯤 나오니 두 대가 가로막고 있다.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검은 차 한 대만 빼주면 빠져나갈 만하겠다 싶었다. 바람이 찼다. 마침 아내가 베란다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치에 차를 대놓으면 출근할 때 지장이 있으리라 싶어 걱정됐나 보다. 손짓으로 ‘차를 여기다 대면 어떡하느냐’라며 아내에게 가볍게 항의했다.
빼주었으면 하는 차 운전석에 보니 휴대폰 번호가 있다. 언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 받지 않았다. 다시 눌렀다. 받지 않았다. 세 번째 누를 때쯤 걱정하던 아내가 외투를 대충 걸치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내려왔다. 차를 보더니 옆 라인 차 같다면서 이 집 저 집 두드려 본다. 그런 가운데 계속 번호를 눌렀으나 검은 차 주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처음엔 미안한 마음이던 것이 점점 짜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냥 택시를 탈까 생각했다.
내가 번호를 잘못 눌렀나 싶어 운전석 쪽으로 다시 가보았다. 처음 본 전화번호 옆에 흰 종이에 아무렇게나 쓴 전화번호가 하나 더 보였다. 혹시나 싶어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금방 받는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 올라오던 짜증이 확 사라졌다. 아주머니 한 분이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운전이 서툴렀던지 그 뒤차를 살짝 들이받고서야 겨우 차를 빼주었고, 나는 운전석에 앉아있던 채로 차를 몰아 빠져나왔다. 벌벌 떠는 아내가 주차장에 서 있었지만 길게 인사할 겨를이 없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처음 전화를 안 받던 사람의 번호다. 7시 21분부터 27분 사이에 여섯 번 전화를 걸었었다. “전화하셨습니까?”라고 묻는 그에게 “차를 그 따위로 대놓고 바쁜 아침에 전화를 안 받으면 어쩌냐?”고 고함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짧은 순간 마음을 바꿨다. 그 사람에게 짜증 부려봤자 혈압만 더 오를 것이고, 그 사람도 영문도 모르는 채 기분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예, 차 좀 빼달라고요... 사모님이 나오셔서 이제 됐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얌전히 인사했다. 서로 “예, 예...”하다 전화를 끊었다.
결국 아내에게만 미안하게 됐다. 베란다를 올려다보고 ‘손짓항의’만 하지 않았어도 추운 아침 바람에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벌벌 떨면서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그 미안함을 내 차를 가로막은 차 주인에게라도 좀 풀었어야 했을까, 싶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게 마무리하기 참 잘했다는 것이다, 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2015.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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