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 쓸 때는 잘 몰랐거나 예사로 생각했는데 다시 천천히 교정을 보다 보니 내 글에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요 며칠 사이에 그런 것들이 보인다. 부끄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먼저 문장에서 보면, ‘대개’, ‘밑도 끝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이러저러한’, ‘여차저차하여’, ‘아무튼’, ‘그랬다 치자’, ‘무슨무슨’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모르겠다’는 말도 자주 보인다. 무엇을 설명하다가 굳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 쓴 말이기도 하고, 정말 잘 모를 때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쓴 말이기도 하다.
문장 끝을 ‘다’로 끝내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까’로 끝내는 것도 아주 많다. 단정 지어 말하기보다 조금은 의문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글 읽는 사람도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좀 비겁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독자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지’로 끝나는 문장도 수두룩하다. ‘귀대하는 장병들이 갖고 오는 통닭 한 마리 나눠 먹으며 모두들 군생활의 피로를 좀 풀기도 하겠지.’하는 식이다. ‘지’로 문장이 끝나는 데서는 맥이 좀 풀린다. 맥이 풀린다고 하면 정말 맥이 풀리는 것 같지만, 긴장이 풀린다고 하면 좀 있어 보인다. 글을 잘 이어가 놓고 ‘다, 고 생각한다’ 또는 ‘다, 싶은 것이다’로 끝맺는 것도 많다. 주로 글의 맨 끝에서 나타난다. 책임에서 좀 벗어나려는 투다. 이런 것도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한 문장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나열하여 점점 강조하거나 점점 힘을 빼는 수사법을 자주 쓴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단어나 어구를 몇 가지 나열하여 뜻을 강조하기도 한다. 가령 ‘마취된다고 할까 세뇌된다고 할까’, ‘막걸리 힘인지, 여성 가수의 분내 탓인지, 정말 문화의 힘 덕분인지’ 이런 식이다.
‘○○라는 말이 있다’로 시작하는 글도 많다. ‘‘봉쇄’라는 말이 있다’, ‘‘단배식’이란 말이 있다’ 이런 식이다. 읽는 사람에게 개념부터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려는 배려인데, 좀 낡은 수법이고 재미가 없다. 혹시 처음 보는 낱말이라고 하면 그나마 호기심을 끌겠지만 그런 경우는 없다. 마치 나 말고 아무도 모르는 말인 양 짐짓 시치미를 뗀다.
내용을 보면, 대개 내 어린 시절 이야기이고 우리 가족들 삶을 이야기하는 게 많다. 주인공은 대부분 아버지, 어머니이다. 아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다음 많은 게 음식과 관련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끼리 음식 먹은 이야기, 내가 무슨 반찬을 직접 만들어 가족들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가 대종을 이룬다. 그러니 수필 중에서도 가벼운 수필이다. 신변잡기가 아주 많다.
간혹 사회 문제에 대한 발언도 있는데,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기보다는 변죽만 울리다가 만다. 고민이 적다는 것이고,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조금 급하게 썼다는 말이다. 간혹 하나마나한 소리를 딴에는 꽤 진지하게 쓰기도 했는데, 이번 교정 과정에서 모두 버릴 것이다, 라고 다짐해 둔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생각을 적은 글에서는 결기가 느껴진다. 말과 글을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심하게 나무라는 투다. 설득하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면 지레 훈계조다. 스스로 내면적 성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 글을 읽는 단 몇 명이라도 내 생각에 동조하겠지’ 하는 자만이 흐르고 있다. 그런 것이 이제 보인다. 많이 부끄럽다.
어디에 발표한 글은 비교적 오탈자가 없고 문장도 꽤 신경 써서 다듬은 흔적이 역력하다. 반면 그냥 블로그나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은 다시 보니 오탈자가 많다. 문장도 애매하거나 마지막까지 붙들고 고민하지 않고 대충 마쳐버린 것 같다. 부지불식간에 신문이나 잡지 같은 데 발표할 글과 그렇지 않은 것을 차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오타마저 잡지 못했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변명할 말이 없다.
이런저런 글 버릇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꼭 바꿔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글에서 더 높은 인격이 묻어나도록 해야겠다는 것이고, 글 한 편에서 같은 단어를 되도록 줄이면 좋겠다는 것이고, 뜻이나 문장이 분명하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을 일부러 길게 쓸 게 아니라면 되도록 짧게 쓰는 게 좋겠고, 필요 없는 ‘의’, ‘을/를’을 줄여야겠다는 것이다. 신변잡기가 아니라면 좀더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한 뒤에 써야겠고, 썼다면 읽는 사람이 무릎을 칠 정도로 촌철살인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라기보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기왕 시작한 작업을 끝까지 밀고 가 본다. 처음 한두 권 인쇄하여 제본만 해두려던 생각에 조금 금이 갔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건지, 그 까닭이 무엇인지는 아직 말하지 않으련다.
2015.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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