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금) 저녁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막걸리 추렴이 열리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고 김광석의 노래다. 매우 인기 있는 곡이다. 이 노래의 전주(前奏)만 나와도 고개를 흔들흔들 하거나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게 된다. 가사는 맑고 경쾌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라는 대목만 들어도 즐거운데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까지 들으면 심장이 벌렁벌렁하게 된다.
진주시 신안동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술집이 있다. 막걸리 전문점이다. 왜 막걸리 전문점이냐 하면 김해 봉하 막걸리,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고성 하이 막걸리, 단성 막걸리, 진주 막걸리 이렇게 다섯 종류나 파는데다 안주도 대부분 막걸리와 어울리는 것을 판다. 모듬전, 땡초전, 도토리묵, 두부김치 같은 게 주를 이루고 있다. 좋아하는 멸치와 고추장이 기본반찬으로 나오는데 내가 먹어치운 멸치는 몇 마리일까. 물론 손님의 취향을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어 맥주도 팔고 소주도 판다. 사이다도 있지. 쥔장 내외도 꼭 막걸리처럼 생겼다, 내가 보기엔.
술집 이름도, 특히 막걸리 집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김광석을 좋아하거나 그의 노래를 좋아할 만한 세대의 술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므로 김광석 노래를 자주 틀어 준다. 김광석 노래가 아니라도 그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통기타 노래 또는 팝송을 틀어 준다. 그러니까 술맛이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김해 봉하 막걸리를 좋아한다. 까닭이 있다. 맛있으니까 좋아한다.
이 집 쥔장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가게를 그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잘 몰랐는데 알게 모르게 힘들었던가 보다. 세상에서 남의 돈 벌어먹는 게 어디 쉬운 게 있을까 마는 아무튼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어 일단 가게를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새로 넘겨받는 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인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오랫동안 우리의 아지트였던 곳에 이런 사정이 생겼다 하니 마음이 좀 쓸쓸해진다.
쥔장은 힘들거나 말거나 손님은 손님이니 좀 더 자주 가서 술을 퍼 마실 것을 하는 후회도 좀 되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외상이라도 잔뜩 그어 놓아 그걸 다 받기 전에는 가게를 넘길 수 없도록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해도 가을바람에 실려 불어오는 소식 치고는 씁쓸한 게 아닐 수 없다. 엊그제 가서 손님 역할을 맡은 네 사람과 쥔장 내외가 둘러앉아 봉하 막걸리를 다 비우고 고성 막걸리 두어 병을 비우고 많이 취하여 돌아왔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것, 초로인생(草露人生), 행운유수(行雲流水), 이따위 말들이 귓가에 입가에 맴돌았다. 그래도 그 이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하는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다. 새로 가게를 맡을 이도 아는 분이니 발길이 저절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여기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렇지 뭐...
10월 2일 금요일 저녁에 이 소식을 듣고 막걸리 한잔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히히덕거리며 놀기로 했다. 뭐, 거창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는 건 아닌, 그런 희한한 모임을 열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인데다 유등축제를 하는 기간이고 추석 연휴 바로 뒤여서 다들 정신이 없을 시기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몇이라도 모여 그냥 조금은 쓸쓸한 노래 부르고 들으며, 조금은 공허한 웃음을 날리며 맞으며, 그렇게 깊어가는 가을밤의 낭만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어설 힘도 생기겠지. 그렇게 취하고 나면 다시 환하게 웃을 여유도 생기겠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기간 동안 신안성당 앞 길모퉁이를 지키며 막걸리에 사랑과 낭만을 실어온 쥔장들에게 막걸리 한잔 부어주며 씩 웃어주고 싶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한번 모여보기로 했다. 그냥 그렇다.
2015.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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