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마지막 날 김해공항에 갈 일이 생겼다. 잘 안 깨는 간밤 술기운을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떨어내고 겨우 길을 나섰다. 몇 해 전 우리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는 일본인 친구 밤비(본명은 카오루 사토)가 이번에는 대구에 머물다 김해공항을 거쳐 제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이나 보자하며 달려간 것이다. 길이 넓어져서 참 좋았다. 가는 길에 진영휴게소에서 들러 경상대 학생이 청년창업을 한 ‘꾸이꾸이 토스트’에서 점심 겸 간식을 먹었다. 맛있고 배불렀다.
국내선 출발하는 공항 2층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로비 한 가운데 웬 커다란 파란 사람이 드러누워 하늘을 향하여 손짓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좀 놀랐고 다음에는 좀 반가웠고 그다음엔 다시 놀라웠다. 변대용이라는 작가의 작품 ‘누워있는 사람’이다. 우레탄에다 페인트를 칠했는데, 크기는 가로 205, 세로 701, 높이 303cm이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하는 ‘2015 찾아가는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시의 제목은 '아웃 오브 블루(Out of the BLUE)'이다. 7월 21일에 시작하여 8월 23일까지 하는가 보다.
작가의 말을 옮겨본다. “어떤 곳을 가게 되더라도 개인이 속한 단체나 조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본인이 속한 위치와 자리를 가지게 된다. 누워 있는 사람은 몸이 여러 덩어리로 분절된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한 인간의 모습으로 연결된 형태를 하나의 국가나 사회로 본다면 각각의 덩어리들은 그것을 이루는 조직이나 집단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또 말한다. “머리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면 발로 뛰며 일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분절된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의 간극을 통해서 이 시대의 소통에 대한 표현을 하고자 했다. 간극이 벌어질수록 소통의 부재가 생기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필요에 따라 멀어지기도 하고 가까워지는 우리의 모습을 혹은 나의 모습을 표현했다.” 무슨 뜻인지는 대강 알겠는데 말은 좀 어렵다.
원래 작품은 머리와 팔, 몸통, 다리 들이 떨어져 있었던가 보다. 하지만 김해공항에 전시 중인 작품은 떨어져 있어야 할 몸의 부분 부분들이 붙어 있다. 이런저런 역할을 맡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잘 된다고 판단하여 일부러 붙여 놓았는지 모르겠다. 그 옆에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작품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냥 지나치면 그것이 미술작품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이다. 아이들이 작품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예쁘다.
길을 떠나는 곳, 떠나는 사람의 등을 보며 손 흔드는 곳, 길 떠난 사람이 돌아오는 곳, 돌아오는 사람의 얼굴 마주보며 웃음 짓는 곳. 그곳이 공항이다. 잠시 헤어졌을 때 그리워하고 더 사랑하게 되고 그와 나눈 이야기와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어 보며 감정을 다스리던 사람이 마침내 다시 만나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곳이 공항이다. 같은 길에서 한 곳을 향하여 걸어갈 사람들이 다짐과 약속을 기억의 저장소에 새겨 넣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곳, 그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곳이 공항이다.
거기에 드러누워 천장을 향하여 손짓하는 커다란 설치미술 작품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미래의 어디쯤이겠지. 하늘 저 끝일 수도 있고 깊은 땅 속 어디쯤일 수도 있겠지.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무엇이 그리워 길을 떠나고 무엇을 찾으러 여행을 가는 것일까. 저 손가락 끝에 매달려 궁리나 한번 해볼까. ‘블루’는 지구이고 청춘이고 바다이고 탄생이고 진리일 것 같다.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우리들이 머물 곳은 어디일까. 하늘 저 끝일까, 땅 속 깊은 곳 어디일까. ‘아웃 오브 블루’라….
201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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