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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하고 소소한 일상

결혼한 지 17년 되는 날, 그저 고맙다

by 이우기, yiwoogi 2015. 6. 14.

1998614일 일요일 낮 1230분 진주 원예농협 하나로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했다.

안산에서 온 장인, 장모, 처남, 처제와 친인척 들은 폐백도 하지 않고 바쁜 일정을 재촉했다.

2000년 아들 하나 낳았는데 2002년 월드컵 때는 방에 아들을 뉘어놓고 음소거 응원을 했다.

처가엔 한 해 서너 번 가고 한 해 한두 번 정도 처가 식구들이 진주나들이를 한다.

옛말에 처가와 화장실은 먼 게 좋다 했는데, 요즘 아파트 화장실을 보면 그건 틀린 말이다.

물도 말도 입맛까지, 어느 것 하나 맞지 않은 곳에 시집와 이해하며 살아온 아내가 고맙다.

나 한 사람밖에 모르던 여리디 여린 아내가 몸이 두 개였으면 할 정도로 바빠진 게 고맙다.

크게 아프지 않고 말썽 피우지 않고 또래와 비슷하게 커가고 있는 아들도 한없이 고맙다.

17년이면 긴 세월이다 할 수 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

맞는 건 맞으니까 좋고 잘 안 맞아도 맞추기 어렵지 않았고 아예 안 맞는 것도 더러 있었다.

적은 가족이지만 일이 많았고 본가에도 크고 작은 일이 있었으며 처가도 그렇게 살아간다.

두 사람이 만났지만 두 가족이 만났고 두 가풍이 연결됐으며 두 지역이 이어졌다.

한 번도 위기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늘 행복했다고 해도 그건 위선일 것이다.

오늘 뒤돌아보니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사랑이고, 그리하여 그것이 행복인 줄 알겠다.

예식장에서 눈물 흘리던 아내는 씩씩하고 섬세하고 다정한 40대 중년부인으로 변했다.

3 아들은 철없는 듯 보이지만 부모의 사랑을 알 만한 나이가 됐고, 키도 마음도 많이 컸다.

이마 더 넓어졌고 머리카락 더 하얘졌으며 배 더 불룩해졌으니 확실히 삶의 반환점은 돌았다.

마주 앉아 고기 안주 삼아 소주 한 병 비우고 들어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싶고 다르게 살려 해도 별 수 있었을까 싶어진다. 그저 고맙다.

 

2015. 6. 14.

결혼기념일 생각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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