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한우협회’라는 단체가 있다. 이 단체 회원 300여 명이 8월 10일 국회로 갔다. 국회에서 전국한우협회가 주관한 ‘김영란법 대토론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내년 9월 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 하는 「부정청탁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 시행령에 한우 등 국내 농축수산물은 금품 수수 금지품목에서 빼달라는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절박한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항상 뜬금없고 개념 없기로 소문이 자자한 나는 이 ‘전국한우협회’라는 명칭에 눈길이 머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우협회’라…. 협회란,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설립하여 유지해 나가는 모임이다. 그러니까 협회란 사람이 하는 모임이고 일이다. 사람 아닌 그 무엇, 즉 동물이나 식물이나 건물이나 다리나 도로 들이 협회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전국한우협회라….
이 명칭대로라면 한우들끼리, 즉 누렁소들끼리 모여 협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럴 리가 있겠나. 한우를 키우는 축산(농업)인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겠지.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오해하거나 시비 걸지 않는다. 당연히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고 따져보면, 뭔가 잘못 만들어진 명칭 같다.
대한한돈협회라는 명칭의 단체도 있다. 한돈(韓豚)은 한국돼지이니 명칭대로라면 한국돼지들이 협회를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대한양계협회도 있고, 한국육계협회도 있다. 한국오리협회도 있고 한국사슴협회도 있다. 나는 아무리 봐도 이런 단체 이름들이 이상하게 보인다. 왜 이 이름들이 이상하게 보이는가 하면, 거기에 ‘사람’이 빠졌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가 보다. 이런 명칭의 단체가 계속 생겨나고 또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전국한우협회를 전국한우농가협회 또는 전국한우농업인협회라고 하고 대한한돈협회는 대한한돈농가협회라고 하면 좋겠다. 대한양계협회는 대한양계농가협회라고 하고, 한국육계협회도 한국육계농업인협회라고 해야 뜻이 제대로 되겠다. ‘농업인’이라는 말이 길다고 느껴지면 그냥 ‘인’만 넣어도 뜻이 확연해지겠다. 양계협회와 육계협회가 양계를 하고 육계를 하는 사람, 즉 농업인(또는 ‘축산인’이라고 해도 되겠다)들의 모임이지, 닭들의 모임은 아니니까. 한국오리협회는 오리들의 모임이 아니고, 한국사슴협회는 사슴들의 모임이 아니다. (사)한국염소축산업협회는 염소를 기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니 제대로 된 이름 같은데, 한국흑염소협회는 또 아니다. 이렇다. 찾아보니 제대로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모임을 만들어 우리나라 농축수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드높이며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려는 분들의 순수하고 높은 뜻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다만 모임의 이름을 만들 때는 뜻도 좋아야 하지만 ‘말이 되도록’ 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나에게 따져 묻는다면, 해줄 말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참 개념 없이 단체의 명칭을 지었다는 생각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김영란법 제정과 관련하여 “농업은 국민의 안전 먹거리 생산과 생명을 담보하는 생명산업으로서 보호 육성돼야 한다. 우리 농축산물을 일정 가격대 이상을 일괄해 부정한 금품으로 규정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하는 이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있다. 국회와 정부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눈여겨보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농민ㆍ어민ㆍ축산인ㆍ도시빈민ㆍ장애인 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 우리 국회와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두고 본다.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분들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하다. (2015.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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