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무심코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여성 출연자가 “엣지 있다”는 말을 계속 해대는 것을 들었다. 프로그램 제목을 보니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었다. 남성 요리사 백종원이 나올 때 몇 번 본 적 있다. 재미는 있었지만 프로그램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줄여서 ‘마리텔’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외계어 같기만 했다. 아무튼 여성 출연자는 미용사였는데, 말끝마다 “엣지 있다”는 말을 달고 있었다. 다른 여성 출연자에게 눈 화장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하면 참 엣지 있어요, 저렇게 하면 엣지 있겠지요, 요렇게 하면 엣지가 넘쳐요. 엣지 있어 보이면 좋잖아요.” 이러는 거다. 은근히 부아가 나서 꺼버렸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2009년쯤인가 보다, 어느 방송 연속극에 출연한 김혜수가 “엣지 있게”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이후 유행어가 된 것 같다. 김혜수를 ‘엣지녀’라고 불러준 모양이다. 엣지는 영어 ‘edge’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웹 브라우저 이름이 엣지라고 한다. ‘The Edge’라는 기타 연주자도 있는가 보다. 이 영어의 뜻은 ‘날카로움, 뾰족함, 각이 섬, 모서리, (칼)날’이라고 한다. 또 ‘(길ㆍ종이ㆍ절벽 등의) 가장자리, (국가ㆍ지방ㆍ도시ㆍ삼림 등의) 변두리, 갈다’라는 뜻도 있는가 보다. 탁구 경기 용어이기도 하다.
이 말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얼마나 널리 쓰이는가 하면,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엣지’라는 이름을 쓰는 우리나라 가수가 있다. ‘삼성 갤럭시 노트 엣지’라는 노트북도 있다. ‘엣지’라는 말이 들어간 웹사이트, 상품이 넘쳐난다. 언론 기사를 보면 놀랄 노자다. ‘무작정 굶지 말고 슬림엣지와 함께 다이어트의 엣지를 세워라’, ‘엄○○, 우아한 매력 속 넘치는 고혹이 엣지 있네’, ‘박○○의 섹시함에 엣지 묻은 블랙 셔츠’, ‘엣지 있는 망사 패션’… 끝도 없이 나온다.
이런 상품과 웹사이트와 언론보도들은 엣지를 어떤 뜻으로 쓴 것일까. 가령 ‘다이어트의 엣지를 세워라’라고 했을 때 ‘엣지’는 무슨 말일까. 날카로움일까, 모서리일까, 가장자리일까, 변두리일까. ‘고혹이 엣지 있네’라고 할 때 ‘엣지’는 무슨 뜻일까. 뾰족함일까, 각이 섰다는 말일까, 칼날이라는 말일까. ‘엣지 묻은 블랙 셔츠’에서 ‘엣지’는 또 무슨 말일까. 모르겠다.
시간 여유를 갖고 심호흡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엣지’는 대개 ‘매력 있다’, ‘예쁘다’, ‘완벽하다’, ‘끝부분까지 매력적이다’ 따위의 뜻으로 쓴 것 같다. ‘눈 화장을 이렇게 하면 매력 있어요’,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완벽하게 매력 있는 여성이 되세요’처럼 해석이 가능해진다.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인다. 억지로 끼워 맞춰 보자면, 엣지라는 말이 모서리, 끝부분, 날 등의 뜻을 갖고 있으니 끝부분까지, 모서리까지, 날 끝까지 예쁘거나, 매력 있거나, 완벽하거나 하는 상황을 뜻하는 것 같다. 이러고 있는 내가 좀 구차하다.
말이란 의사소통 수단이다. 도구이다. 방송에 출연한 여성 미용사가 자신이 하는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알고 쓰는 말을 마구 사용할 것이 아니라 누구든 알아듣는 말을 써야 했다. 그래야 의사소통이 잘 될 것이니까. 말과 글에 민족의 문화와 역사가 담기고 어쩌고 하는 말은 오늘은 하지 않으련다. 말이란, 태어나 살다가 죽어가는 생명체와 같다는 말도 오늘은 아끼련다. 아주 단순히 생각해서 의사소통 도구인 말을 잘 활용하려면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쉽게 알아듣는 말을 쓰면 된다. 그렇지 않고 외국어를 제 맘대로 가져다 쓰면, 언뜻 보기엔 있어 보이고 유식해 보일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생각 있는 사람에게 걸리면 무식한 사람의 표본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여성 미용사는 미용 실력은 꽤 알아주는지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보고 있자니 역겹기만 했다.
201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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