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아파트 단지 골목에서 자두와 복숭아를 샀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난 것이다. 수박, 참외, 복숭아, 자두, 바나나, 천도복숭아 들이 이루고 있는 알록달록한 풍경화에 넋을 뺏긴 것이었을까. 자두는 5000원어치이고 복숭아는 1만 원어치이다. 이런 여름 과일을 보면 먼저 침이 고이고 그다음엔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자두를 우리는 풍개라고 불렀다. 풍개는 이맘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과일이었다. 최고의 간식거리였고 영양분이었다. 학교를 파한 뒤 가방을 던져놓고 꼴 베러 가는 게 일상이던 초등학교 시절이다.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우리 밭이 있었고 밭두렁에 풍개나무가 있었다. 이 풍개는 올풍개였다. 올풍개는 6월쯤 발갛게 익어 시큼하고 새콤하고 달콤한 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재 너머 꼴 베러 간다고 하면 그건 거의 풍개 따먹으러 간다는 말이었다. 어쩌다 어머니, 아버지가 밭일 하다가 따오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보면 아랫마을에 위치한 큰집에도 풍개나무가 있었다. 집 옆 담뱃굴에 붙어 있는 텃밭에 풍개나무가 예닐곱 그루 있었는데 이건 늦풍개이다. 늦풍개는 올풍개보다 한 달쯤 뒤인 7월 말에 먹음직스러운 크기와 빛깔로 정체를 드러낸다. 새파란 나뭇잎 사이에 주렁주렁 열린 자줏빛 풍개를 보노라면 저절로 입안이 시고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게 된다. 내 주먹만 하게 커진 풍개 겉껍질에는 하얀 가루도 묻어 있었는데 그건 설탕과 비슷했다. 당분이 묻어난 풍개는 달고 시고…. 아무튼 그랬다. 우리 키 네다섯 배는 되는 풍개나무에 기어 올라가 팔을 뻗어 닿는 대로 따 먹었다. 옷에 풍개물이 드는 줄도 모르고 배가 부르도록 따먹었다. 큰집 텃밭은 우리에게 과일상자였고 보물창고였다. 풍개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이 안 나던 게 신기했다.
요즘은 풍개를 잘 안 먹는다. 너무 시어서(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침을 몇 번이나 삼키는지 모르겠다) 먹기 겁난다. 풍개의 신맛이 잇몸 사이를 감돌아나가면 찌릿찌릿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아 몸서리를 친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내 몸과 마음과 정신은 사십년 전 그 어느 날로 사정없이 내달리곤 한다. 철딱서니 없고 지저분하던 코흘리개의 나와 마주하는 건 추억으로 치장되어 달콤한 장면이긴 하지만, 그사이의 변화와 타락과 늙음을 다 감내하기 어려워진다. 직접 풍개를 산 것은 10년도 더 된 듯하다.
복숭아는, 기억하건대 진주로 이사 온 뒤부터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시골 마을에도 복숭아나무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먹어본 기억은 없다. 중앙시장에서 배추를 다 판 뒤 들어오는 어머니의 왼손에 복숭아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고는 했다. 배추와 복숭아를 맞바꾼 날도 많았으리라. 복숭아는 물컹했다. 한쪽 귀퉁이가 갈색으로 변해 있기도 했다. 어떤 놈은 벌레가 먼저 단맛을 본 뒤이기도 했다. 어쩌다 씨를 벌려 보면 거기서 “누가 내 단잠을 깨우나.” 하며 벌레가 기어 나온다. 우리는 기겁하며 “제발 벌레 안 먹고, 안 상한 것 좀 사 달라.”고 사정했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벌레가 와 먼저 먹었겄노? 다니까 먼저 기 들어가 맛을 본 거 아니가?”라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짓물러져 물컹물컹한 복숭아는 달았다. 벌레 먹은 것도 역시 달디 달았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그것들은 단단하고 발그스름하게 잘 익은 복숭아보다는 좀 쌌을 것이다. 배추를 다 팔고 나면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그때까지 단단함을 유지할 정도의 복숭아는 어쩐지 꺼림칙하기도 했으리라. 아무튼 식구 많은 집안의 어머니가 그나마 한 사람에게 하나씩은 먹이려면 그런 과일을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마저 사랑으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은 과일을 잘 안 먹는 편이다. 가장 큰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가 부실하니 일단 단단한 것은 싫다. 이가 부실하다는 이야기는 이와 잇몸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고, 그건 찬 음식이나 신맛을 좋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안 먹는다’는 말보다는 ‘못 먹는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수박도 소 닭 쳐다보듯 하고 참외나 포도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가지가 휘어지는 풍개나무에 올라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더구나 배불러지는 줄도 모르고 먹어대던 풍개마저 눈에 차지 않는다. 하지만 어젯밤에는 예쁘게 깎은 복숭아 두어 조각과 자두 하나는 먹었다. 눈물이 좀 났다. 2015.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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